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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재 : 카드로 보는 MLB Story ②] ‘유니폼이 가장 더러웠던 남자’ 리키 헨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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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리키 헨더슨(MLB.com)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못된 친구들이 왕따포레스트(톰 행크스 分)를 괴롭히려고 쫓아오자 그의 단짝제니(로빈 라이트 分)는 포레스트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Run! Forrest! Run!” 제니의 말에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던 포레스트. 그때 포레스트의 다리를 감싸고 있던 보조장치가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포레스트는 이후 자신이 달리기에 재능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덕분에 약간 모자랐던(?) 포레스트는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 미식축구 선수가 되고, 군인이 되어 베트남戰에도 참전합니다. 제니의 외침이 포레스트의 터닝포인트였던 셈이죠.

 

 

©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메이저리그에도 포레스트 검프만큼 빨랐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한 시즌 최다 도루 타이틀(130), ▲통산 도루 1,406(전체 1), ▲도루왕 타이틀 12(전체 1) 등 발로 만들 수 있는 기록은 모두 석권하다시피 한 우리 시대의 대도(大盜), 리키 헨더슨이 그 주인공입니다.

 

헨더슨19581225일 시카고 일리노이州, 더 구체적으로는 부모님의 쉐보레 차량 뒷좌석에서 태어났습니다. 리키 헨더슨(Rickey Nelson Henley Henderson)’의 이름에도 재밌는 일화가 숨어 있습니다. ‘리키는 당시 ‘10대 여자 아이들의 우상이었던 가수 겸 배우 리키 넬슨(Rickey Nelson)’에서, ‘헨더슨2살 때 가족의 곁을 떠난 친부의 빈자리를 대신해준 새아버지 폴 헨더슨(Paul Henderson)’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훗날 이 이름이 포레스트 검프만큼 유명해질 것이라고 그의 어머니 바비 헨더슨(Bobbie Henderson)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A three-sport star in high school, Henderson didn't choose to pursue baseball; his mother Bobbie did.

"I loved football; I thought I could be an All-America, but she thought baseball was better for me," he said. "I gave her the choice to make and she chose baseball." It turns out mother does know best.

 

학창 시절 헨더슨은 야구보다 풋볼과 농구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너의 신체조건(178cm)으로는 NCAANFL에서 선수들과의 신체 접촉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며 회유했다고 합니다. 훗날 헨더슨의 어머니는 어느 인터뷰를 통해 사실 헨더슨에게 야구를 시킨 이유는 내가 야구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고, 야구가 더 안전한 직업이 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헨더슨2019년 어느 샌프란시스코 일간지 인터뷰를 통해 아마 자식이 다치길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엔 화가 났지만 어머니는 현명했다, 어머니가 올바른 결정을 한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 1980 Topps #482 Rickey Henderson(ROOKIE CARD)

 

 

 

헨더슨, 그 위대한 여정의 시작

헨더슨은 1976년 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 A’s)의 지명을 받고 입단했으며, 1979년 빅리그 데뷔 이후 2003LA 다저스에서 커리어의 마침표를 찍기까지 메이저리그에서만 25시즌을 보냈습니다. 헨더슨1970년부터 2000년대까지를 모두 경험한 선수인 것입니다. 투수가 아닌 야수가 이렇게 길게 활약한 사례는 역대 MLB를 통틀어(1900년 이후 데뷔 기준) 리키 헨더슨에디 콜린스(Eddie Collins, 1906~1930 : 25)’ 뿐입니다.

 

헨더슨20대 시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도루와 득점 타이틀을 독식하며, 최고의 리드오프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1982년에는 역대 한 시즌 최다인 130도루를 기록했고, 1980~1986년까지 7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도루왕에 올랐습니다. 1989년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온 헨더슨1990년 타율 0.325, 28홈런, 119득점, 65도루, 출루율 0.439, 장타율 0.577, OPS 1.016의 성적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에 선정되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1993년 시즌 도중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된 헨더슨은 이듬해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왔고, 이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뉴욕 메츠, 시애틀 매리너스, 보스턴 레스삭스, LA 다저스 등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무려 9개 팀의 유니폼을 갈아입었지만, 우리의 기억 속엔 언제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헨더슨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89년 오클랜드, 1993년 토론토에서는 모든 메이저리거들의 꿈인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1998년 오클랜드에서는 66도루를 기록, 역대 최고령 아메리칸 리그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25년간 5번의 득점왕, 12번의 도루왕, 10번의 올스타, 1번의 골드글러브, 3번의 실버슬러거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통산 타율 0.279, ▲통산 3,055안타, ▲통산 2,295득점, ▲통산 1,406도루의 기록을 남긴 그는 은퇴 이후 5, 명예의 전당 입성 자격이 주어지던 첫해(2009) 94.8%의 높은 득표율로 당당히 헌액됐습니다.

 

 

 

 

 

A's와의 경기는 1회부터 ‘1:0’으로 시작하는 불리한 게임

왜 우리 팀에게 항상 1점 어드밴티지를 주고 경기를 시작하지?” 핫도그와 맥주를 사느라 야구장에 조금 늦게 도착하거나 TV를 조금 늦게 켠 애슬레틱스 팬들은 매번 전광판의 1:0 스코어 상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익숙해졌습니다.

 

애슬레틱스 시절 그의 팀메이트였던 미첼 페이지(Mitchell Page)’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It wasn’t until I saw Rickey that I understood what baseball was about.

Rickey Henderson is a run, man. That’s it.

When you see Rickey Henderson, I don’t care when, the score’s already 1:0.

If he’s with you, that’s great. If he’s not, you won’t like it.”

 

1번 타자였던 헨더슨이 첫 타석부터 거의 대부분 안타 또는 볼넷으로 출루했고, 곧바로 2루 베이스를 훔쳤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후속 타자의 적시타로 홈을 밟거나 진루타에 이은 희생플라이로 홈을 밟는 게 거의 애슬레틱스의 ‘득점 공식으로 굳혀졌습니다. 리드오프 홈런(Lead-Off Home Run, 1회 초·말 팀의 1번 타자가 치는 홈런) 역시 헨더슨 81로 역대 1위입니다. 상대팀은 1회부터 1점을 헌납(?)한 채 경기에 임해야 하니 여러모로 곤욕이었습니다. 

 

 

 

 

© 1991 Upper Deck #636 Lou Brock / Rickey Henderson

 

 

 

 

937, 938, 939! 1406! 내가 제일 잘 나가

헨더슨의 커리어에서 199151은 결코 잊지 못할 날일 것입니다. 4회 말 3루 도루(939)에 성공하며, 기존 루 브록(Lou Brock)이 갖고 있던 통산 최다 도루 기록(938)을 경신한 것입니다. 헨더슨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루 브록에 경의을 표한 뒤 오늘만큼은 내가 최고라며 새로운 도루왕의 탄생을 자축했습니다.

 

“Lou Brock was a great base stealer, but today I’m the greatest of all time.”

 

그리고 그날은 위대한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헨더슨은 이후 467개의 도루를 추가하며, MLB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또 한 명의 베이브 루스, 또 한 명의 테드 윌리엄스는 나올 수 있겠지만, 또 한 명의 리키 헨더슨은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세운 뒤 베이스를 뽑아 들고 환호하는 리키 헨더슨(MLB.com)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의 괴짜 헨더슨

헨더슨‘1인칭(나는)’이 아닌 ‘3인칭(리키는)’으로 말하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헨더슨 다음 2번 타자는 늘 덕아웃으로 돌아오며 걱정마 리키, 넌 여전히 최고야 등의 혼잣말을 하는 헨더슨의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기암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는 물론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도 3인칭 화법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경기 전 탈의실의 전신거울 앞에 벌거벗고 서서 리키가 최고야! 리키가 최고야!”라고 말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됐다고 전해집니다.

 

반면 호텔에 묵을 때는 늘 자신의 이름이 아닌 수많은 가명을 돌려썼습니다. 그래서 구단 직원은 그가 자주 쓰는 가명을 늘 체크해야 했습니다. 그 외에 한여름에 아이스 팩을 한 채 잠이 들어 동상에 걸린 일, 섬나라인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선수에게 여기 미국에서 너희 나라까지 차로 얼마나 걸리냐고 물은 일화도 헨더슨의 엉뚱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Rickey doesn’t care about them… It’s Rickey time!”

 

 

© 1986 Topps Tiffany #500 Rickey Henderson

 

 

헨더슨이 양키스로 트레이드됐을 당시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과 같은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게 된 소감이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리키는 신경 쓰지 않아요. 디마지오, 맨틀이 뛰는 건 보지도 못했어요. 이제 리키의 시간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헨더슨은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엉뚱했으며, 팬들은 그런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 겸손할 때는 한없이 겸손한 헨더슨이었습니다. 2001년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소속 당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헨더슨은 통산 2,999안타를 기록 중이었습니다. 40대 선수에게는 매 타석이 마지막 타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자신의 커리어가 끝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통산 3,000안타는 명예의 전당 입성의 보증수표와도 같습니다. 헨더슨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경기였지만, 하필 그날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레전드 토니 그윈(Tony Gwynn)의 고별경기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 San Diego Padres VS Colorado Rockies 경기 하이라이트(2001년 10월 7일)

 

 

그래서인지 헨더슨은 스스로 이 경기의 출전을 거부했습니다. 3,000안타를 달성하는 순간 팬들의 시선이 분산돼 그윈의 위대한 마지막 여정에 누()를 끼칠 수도 있다는 염려와 배려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들은 그윈은 그에게 출전을 권유했습니다. 마지못해(?) 출전한 이 경기에서 헨더슨은 1회말 상대 투수 존 톰슨(John Thomson)을 상대로 3,000안타를 달성할 수 있었고, 두 레전드는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3,000안타라는 금자탑은 역대 33명만이 보유한 대기록인데, 이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듯 헨더슨은 꾸준함의 대명사이기도 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인터뷰에서도 “60대 초반이지만 팀에서 기회를 주면 지금도 뛸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인물이었습니다.

 

 

 

 

 

© 2024 Topps Now #761 STEWART / HENDERSON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2010년 그의 등번호 24 영구결번으로 지정했고, 2017년에는 홈구장인 오클랜드 콜리시엄(Oakland Coliseum)의 그라운드를 리키 헨더슨 필드로 명명했으며, 2024년 마지막 홈경기에서는 데이브 스튜어트와 함께 시구를 맡기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도 했습니다.

 

 

 

 

 

 

 

유니폼이 가장 더러웠던 남자

‘1,406라는 통산 도루 숫자가 말해주듯 헨더슨의 유니폼은 항상 지저분한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If my uniform doesn’t get dirty, I haven’t done anything in the baseball game.”

  

헨더슨 나의 유니폼이 더러워지지 않는다면, 나는 야구 경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리키 헨더슨의 서명이 들어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게임 사용 유니폼(1991년)

 

 

 

 

 

이 유니폼은 헨더슨 1991시즌 착용했던 유니폼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1991년은 루 브록에서 리키 헨더슨으로 도루왕 타이틀이 바뀐 기념비적인 해입니다. 당시 선수들은 대부분 홈·어웨이 각각 2벌씩의 유니폼으로 시즌을 치렀는데, 아무리 세탁을 해도 얼룩덜룩한 흙먼지 자국을 지울 수는 없었나 봅니다. 헨더슨은 자발적으로 베이스 앞에서 가장 많이 넘어진 선수입니다. 하늘이 아닌 그라운드 위의 슈퍼맨처럼 승리를 위해 수천 번 넘게 베이스 앞에서 팔을 뻗었을 헨더슨을 떠올리면 숙연한 마음까지 듭니다.

 

 

© 2023 Stadium Club #7 Rickey Henderson

 

 

 

그 어떤 위대한 주자도 1루 베이스를 훔칠 수는 없습니다. 도루란 반드시 출루가 선행되어야만 나올 수 있는 기록입니다. 우리는 헨더슨을 단순히 발이 빨랐던 선수로만 기억해선 안 될 것입니다. 헨더슨은 무려 7차례나 한 시즌 100볼넷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선구안과 인내심을 보였습니다.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역대 유니폼(MLB.com)

 

 

참고로 이 유니폼은 원정경기에서만 착용하던 회색 유니폼입니다. 대부분 홈경기에서는 흰색, 원정경기에서는 회색을 입습니다. 흙먼지가 묻어도 티가 덜 나도록 어두운 회색 계열의 유니폼을 입는 것인데, 과거 여건상 원정경기에서는 빨래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Run! Rickey! Run!”

1220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1번 타자를 잃은 날입니다. 20241220, 베이스를 넘어 팬들의 마음까지 훔쳤던 헨더슨이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폐렴 증상으로 오클랜드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천국에서도 야구경기가 열리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천국에서 대주자가 급히 필요했던 걸까요? 그러지 않고서야 한마디 작별 인사 없이 이렇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날 헨더슨이 아닙니다.

 

올해 21일 열린 그의 추모행사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오클랜드 고향 사람들이 그들의 자랑이었던 헨더슨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경기장을 가득 메운 것입니다. 배리 본즈, 켄 그리피 주니어, 더스티 베이커, 호세 칸세코, 데니스 에커슬리, 프랭크 토마스, 데이브 윈필드, 토니 라 루사, 레지 잭슨, 빌리 빈 등 내로라하는 야구계 거물급 인사들도 참석했습니다.

 

켄 그리피 주니어, 데이브 윈필드, 데이브 스튜어트(가수), 게리 페이튼(前 NBA 선수), 샌디 올더슨(A's 단장)은 마이크를 잡고 헨더슨을 추모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 1985 Fleer #629 Henderson / Winfield

그중 윈필드헨더슨은 매일 기쁨, 행복, 에너지, 긍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헨더슨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의 하루도 밝아졌었다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 어린 시절 MC 해머와 행크 에런(MLB.com)

 

 

또 하나 눈길을 끈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래퍼인 MC 해머(MC Hammer)였습니다. MC 해머의 본명은 스탠리 커크 버렐(Stanley Kirk Burrell)’. 1962년 오클랜드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생계를 위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홈구장에서 배트보이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MC 해머는 그때 보여준 춤 실력 덕분에 소소한 인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당시 그의 외모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레전드 행크 에런(Hank Aaron)과 닮아 팬들은 그와 같은 별명인 '해머'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날 MC 해머의 아내인 스테파니 버렐(Stephanie Burrell)Goin’ up Yonder'를 열창하며 행사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MLB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아나운서인 레넬 브룩스 문(Renel Brooks-Moon)도 이날 행사에 참석했는데, 리키 헨더슨은 흑인의 역사다. 리키 헨더슨은 야구의 역사다. 리키 헨더슨은 미국의 역사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Rickey Henderson is Black history. 

Rickey Henderson is Baseball history. 

Rickey Henderson is American history.

 

 

 

 © CBS News

 

 

 

주최 측은 이날 모인 인파를 약 3,000여명으로 추산했습니다. 하늘도 슬퍼 눈물을 흘리는지 종일 많은 가 내렸습니다. 이날 팬들은 하나 되어 “Run! Rickey! Run!”을 외치며, 헨더슨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그날만큼은 모두 포레스트를 응원하는 제니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헨더슨은 또 다른 세상에서도 달리고, 또 달릴 것입니다. 아마 자신의 10번째 팀을 위해 지금도 달리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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