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으로 던진 리베라의 커터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파나마에서 태어난 마리아노 리베라는 어렸을 때부터 배를 탔다. 19살 때는 정어리잡이 배에 올랐다가 난파를 당해, 부서진 조각을 잡고 떠 있다가 다른 배에 구조된 일도 있었다.
유격수였던 리베라는 어느날 자원해서 마운드에 올랐고, 우연히 그 모습을 양키스의 스카우트가 지켜봤다.
1990년 리베라는 스무 살이라는 정말 늦은 나이에 양키스와 계약했다. 계약금은 2000달러였다. 이듬해 양키스는 1순위 지명 선수인 브라이언 테일러에게 155만달러를 줬지만, 테일러는 데뷔하지 못했다.
리베라는 1992년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강속구를 잃었다. 플로리다 말린스와 콜로라도 로키스를 위한 확장 드래프트가 열렸지만, 양키스는 리베라를 보호하지 않았고, 말린스와 로키스도 뽑아가지 않았다.
1995년 양키스는 디트로이트에서 데이빗 웰스를 데려오기로 했다. 양키스가 보내는 명단에는 리베라의 이름도 있었다.
트레이드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어느날, 진 마이클 단장에게 중요한 보고가 올라왔다. 트리플A에 있는 리베라가 갑자기 강속구를 던지기 시작했다는 것. 양키스는 리베라를 빼겠다고 했고, 트레이드는 결렬됐다.
1996년 리베라는 셋업맨으로 사이영 3위에 올랐다. 1997년에는 양키스의 마무리가 됐다. 하지만 마무리가 주는 중압감은 셋업맨과 차원이 달랐다.
1997년 6월의 어느날, 팀 동료이자 고향 친구인 라미로 멘도사와 캐치볼을 하던 리베라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포심이 갑자기 왼쪽으로 휘기 시작했다.
반대 방향으로 휘는 포심은 움직임이 좋았지만 제구를 잡을 수 없었다. 멜 스토틀마이어 투수코치와 함께 무브먼트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코치는 그러지 말고 그 공을 잘 다듬어 실전에서 던져보자고 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단일 구종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나는 커터를 배우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 그건 신이 내려주신 선물이었다. 나는 평소와 똑같이 던졌지만, 공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은 리베라의 커터에 대한 포사다의 회고.
"Mo는 내가 공을 받아본 투수 중 가장 편한 투수였어요. 사인이 필요 없었죠. 내가 고갯짓으로 왼쪽이나 오른쪽을 요구하면, 그도 고개를 끄덕이고 던지면 됐어요.
가끔씩 그는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꾸곤 했는데, 투구하는 도중 고개를 살짝 흔들어 반대쪽이라는 신호를 보냈어요. 포구 위치를 급하게 수정해야 했지만, 워낙 익숙한 사이였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했죠.
그러다가 리베라는 투심을 섞기 시작했어요. 반대 방향으로 휘는 두 가지 구종을 가지게 된 거였죠. 나는 그를 따로 불러서 말했어요.
"Bro, 이제는 어떤 공을 던질 건지 미리 알려줘야 해. 안 그러면 내 손가락 부러질 수도 있다고."
그러자 리베라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아니야 Bro, 너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하나는 안으로 꺾이고, 다른 하나는 바깥으로 꺾이니, 사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죠.
그때부터 나는, 투심을 뜻하는 손가락 두 개 사인을 주기 시작했어요.
리베라는 커터 외에 강력한 두 개의 무기가 더 있었다. 반복성이 뛰어난 매카닉에서 오는 완벽한 제구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멘탈이었다.
담력이 약한 투수는 몸쪽으로 던질 수 없다. 바깥쪽 공은 벗어나면 볼이지만, 몸쪽 공은 타자를 맞힌다. 이를 두려워하면, 공은 가운데로 몰린다. 하지만 리베라는 자신의 제구를 믿었고, 좌타자든, 우타자든, 토니 그윈이든, 배리 본즈든, 커터든, 싱커든, 타자들의 몸쪽을 마구 난도질했다.
데릭 지터가 자신이 경험한 모든 사람을 중에 가장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으로 리베라를 꼽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