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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와 본즈의 생일과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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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선수의 등번호와 얽힌 이야기들은 아주 많습니다.
 
오늘은 선수들이 등번호를 선택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선수들이 특정 등번호를 선택하는 이유는 당연히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자신이 우상으로 삼았던 선수의 번호를 택하는 경우도 많고, 대를 이어 아버지가 달았던 번호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특정 포지션의 선수들에게 인기가 좋은 번호가 있는가 하면, 한때 너클볼 투수들처럼 49번을 전통처럼 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등번호를 선택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생일입니다. 
자신의 생일을 등번호로 정한 가장 유명한 선수는 아마도 피트 로즈와 배리 본즈일 겁니다.
MLB 역사상 가장 많은 안타를 친 타자 로즈는 1941년 4월 14일 생입니다. 그리고 1963년 신시내티 레즈에서 빅리그에 데뷔하며 14번을 달기 시작, 은퇴할 때까지 14번만 달았습니다.
1979년 로즈가 신시내티를 떠났을 때도 구단은 14번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았고, 1984년 복귀하자 다시 14번을 달았습니다.
만약 로즈가 야구계에서 제명되지만 않았더라면 레즈는 진작 그의 번호 14번을 영구 결번시켰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저 아무도 달지 않는 결번으로 남아있습니다.
불법 도박으로 MLB에서 영구 제명된 로즈는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복권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대 가장 많은 홈런을 친 배리 본즈가 피츠버그 시절 24번을 단 것은 자신의 대부인 윌리 메이스를 기리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랍니다.
피츠버그의 장비 담당인 로저 윌슨에 따르면 본즈는 메이스를 기리는 뜻도 있었지만 '하느님이 정해주신 내 생일이 24일이기 때문에 행운이 있을 것이니 그 번호를 달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본즈의 생일은 1964년 7월 24일입니다.
그런데 본즈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한 후에는 24번을 달 수 없었습니다.
다름 아닌 자신의 대부 윌리 메이스의 번호이기에 이미 자이언츠에서는 영구결번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즈는 아버지 바비 본즈가 달았던 25번을 달고 자이언츠에서 활약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월, 일을 등에 모두 달고 선수 생활을 한 행운의 선수도 있었습니다. 
카를로스 메이가 그 주인공입니다. 메이는 1960년대 말부터 9년간 화이트삭스에서 뛰면서 17번을 달았습니다.
메이의 생일은 1948년 5월 17일. 그의 유니폼 등에는 자신의 성인 MAY와 17번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하게도 그의 성인 MAY가 바로 영어로 5월이라는 뜻이므로, 그는 자신의 생일인 5월과 17일을 모두 등에 달고 뛰었던 셈입니다. ^^
자신의 성씨인 'May(5월)'와 등번호 '17'이 합쳐져 완벽하게 본인의 생일을 나타내게 된 그의 유니폼은 야구 카드 수집가들과 유니폼 마니아들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인기이며, 전설적인 퀴즈 소재로도 유행했습니다.
명포수로 이름을 날린 게리 카터는 계약서를 작성할 때 자신의 등번호를 8번으로 한다는 조항을 아예 삽입시켜 계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물론 그의 생일이 8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딕 스튜어트는 10년 선수 생활 동안 9년간을 7번을 달고 뛰었습니다. 선수들에게 가장 인기 좋은 번호인 7번을 그렇게 오래 달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인데, 생일이라고 우기면 동료들이 양보를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뛰었던 돈 머니라는 선수는 특이한 이름(우리말'돈'과 영어 '머니'라는) 때문에 잊을 수가 없는데, 그 역시 16년 선수 생활 중에 11년을 자신의 생일인 7번을 달고 뛰었습니다.
 
7월 10일생인 안드레 도슨은 몬트리올에서 뛰면서 10번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커브스로 옮겨간 후에는 선배 레온 더램이 10번을 달고 있어서 8번으로 번호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1993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다시 이적한 후에 10번을 되찾기도 했습니다.
 
현역 동안 자신의 생일인 26번을 달고 15년을 뛴 아모스 오티스는 코치로 4년을 일할 때도 역시 26번을 달았습니다.
역대 양키스 선수들 중에는 제시 바필드(29번) 지미 키(22번) 팻 켈리(14번) 등이 자신의 생일을 백넘버로 사용했습니다.
 
포수로 명성을 떨친 베니토 산티아고는 9번을 달다가 팀을 옮기면서 9번이 이미 임자가 있자 09번을 달면서까지 자신의 생일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드와이트 구든(64년 11월 16일생)도 메츠에서 11년간 계속 16번을 달았고, 야구 생애 막판에 클리블랜드와 탬파베이, 휴스턴에서 뛸 때도 백넘버는 계속 16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양키즈에서 뛸 때는 16번을 달지 못했습니다. 화이티 포드의 은퇴번호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생일로 등번호를 했다가 다른 번호로 변경했던 선수도 있습니다.
2월 5일이 생일인 행크 애런이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등번호는 5번이었습니다. 그러나 1년 후에는 자신이 원하던 44번으로 교체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니 롬바르디는 17년 선수 생활 동안 무려 9번이나 유니폼 번호를 바꿨는데 마지막에는 결국 자신의 생일인 6번을 달고 은퇴했습니다.
 
생일의 번호를 도저히 얻을 수 없어서 대신 생일의 달이나 연도를 등번호로 단 선수들도 있습니다.
오리올스의 명 3루수 브룩스 로빈슨은 5월생이어서 5번을 달았고, 또 한 명의 유명한 오리올스 스타인 칼 립켄 주니어는 8월생이라 8번을 달고 뛰었습니다. 
 
70년대에 활약한 J.R. 리차드는 1950년 생으로 50번이 자신의 번호였습니다.  
40년대에 카디널스에서 투수와 포수로 활약했던 형제 선수 모트 쿠퍼와 워커 쿠퍼는 각각 13번과 15번을 달고 뛰었습니다. 모트가 1913년생, 워커는 1915년생이었기 때문입니다.
1966년생인 후안 구스만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뛸 때 66번으로 배번을 정했습니다.
지난 2004년 트윈스에서 뛰던 조 로아가 71번을 달고, 같은 해 우게스 어비나가 74번을 단 것도 역시 자신들이 태어난 해를 등번호로 택해서였습니다.
 
생일과 유니폼 번호의 희한한 인연도 많습니다.
1955년부터 8년간 타이거스에서 뛴 챨리 맥스웰은 27년 4월 8일 생으로 자신이 태어난 4월의 4자를 등번호로 달았습니다. 그가 은퇴하고 바로 다음 해에 타이거스로 간 화이디 허조그가 4번을 이어받았는데 그의 생일도 4월 8일이었습니다.
 
등번호와는 상관없이 같은 팀에서 똑같은 생일을 가진 선수들이 함께 뛴 적도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1991년 화이트삭스에는 12월 26일 생이 두 명 있었는데 칼턴 피스크와 에스테반 벨트레가 생일 파티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두 선수의 나이 차이는 스무 살.
그런가하면 1993년 레드삭스에는 1965년 8월 26일에 태어난 카를로스 퀸타나와 제프 리차드슨이 함께 뛰기도 했습니다.
 
1993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는 같은 생일을 가진 선수가 세 명이나 함께 뛰기도 했습니다.
그렉 매덕스와 데이브 저스티스는 똑같이 1966년 4월 14일에 태어났고, 스티브 에이버리는 4년 늦은 1970년 4월 14일이 생일입니다.
그리고 보니 피트 로즈 역시 4월 14일이 생일입니다.
 
유독 징스크가 많은 야구에는 등번호에 얽힌 이야기들도 참 다양하고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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