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포수 마이크 피아자와 모국 이탈리아
1996년 박찬호가 풀타임 빅리거 투수로 발을 내디딜 무렵 피아자는 이미 스타플레이어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긴 마이너 시절을 거쳐 1992년 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피아자는 1993시즌 35홈런, 112타점, 타율 .318을 기록하며 만장일치 내셔널리그 신인왕(Rookie of the Year)을 수상하며 미국 야구계를 강타했습니다.
이후 다저스의 주전 안방마님으로 활약하며 1996년과 1997년 2년 연속 내셔널리그 MVP 투표 2위에 오르는 등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타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1997시즌에는 201안타를 기록해, 포수로는 유일무이하게 단일 시즌 200안타 고지를 밟기도 했습니다.
1998년 다저스와 연장 계약 실패 후 잠시 플로리다를 거쳐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된 후, 미국 서부 끝 LA에서만큼이나 동부 끝의 뉴욕에서도 큰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메츠를 이끌고 1999년과 2000년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고, 특히 2000년에는 뉴욕 양키즈와 서브웨이 시리즈(월드시리즈)에서 활약했습니다
메츠 이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2006년)와 오클랜드 에이스(2007년)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피아자의 통산 성적은 16시즌 동안 타율 .308, 2,127안타, 427홈런, 1,335타점으로 화려했습니다.
올스타에 12번 선정됐고, 포수 부문 실버슬러거 10년 연속 수상했는데, 이는 역대 포수 최다 및 전 포지션 최다 연속 수상 기록입니다.
통산 427개의 홈런 중 무려 396개를 포수 출전 경기에서 기록, MLB 역사상 '포수 최다 홈런' 부동의 1위 기록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공격형 포수였지만 수비력은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박찬호 팬들에게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습니다. ^^
그런데 다저스를 오래 취재하면서 종종 이야기를 나눴던 피아자는 비교적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타격 능력, 특히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배트 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흔히 보는 떠벌이에 소란한 유형의 포수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피아자는 2016년, MLB 야구기자단 투표에서 8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다저스가 드래프트에서 맨 마지막 62라운드(요즘엔 이런 라운드조차 없습니다)에 전체 1390번째로 뽑았던 선수. 그나마 그의 아버지 빈스 피아자의 친구이던 토미 라소다 감독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뽑았던 선수 피아자는 4년여의 마이너 시절을 이겨내고 당대를 호령하는 최고의 포수로 성장했고, 놀라운 야구 여정으로 명전 멤버가 되는 대단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한때 동성애자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피아자는 플레이보이 잡지 모델 출신인 앨리시아 릭터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은퇴 후 피아자는 할아버지의 나라인 이탈리아를 제2의 조국으로 받아들이면서 야구의 전도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의 수많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에게는 진작부터 영웅이었지만, 조국 이탈리아와 나아가 유럽에 야구를 전도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은퇴 후에 꾸준히 이어집니다.
1968년생인 마이크 피아자는 미국 팬실베니아 주 노리스타운이 고향이지만 그의 고조할아버지는 시칠리아섬의 스키아차라는 소도시 출신입니다.
이민 3세였기에 그저 자신이 이탈리아계라는 정도만 알고 있던 피아자는 지난 2002년 처음 이탈리아를 찾았다가 조국의 소중함에 눈을 떴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야구관계자들과 만나면서 야구 발전에 힘쓰는 그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6의 제1회 WBC 대회에서 모국에 대한 애정은 더욱 커졌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이탈리아 국기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뛴 피아자는 제2, 3회 대회에서는 타격 코치로 이탈리아 대표팀 후배들을 지도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말, 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의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이후 WBC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지휘했습니다.
그러면서 축구의 나라 이탈리아에 야구를 널리 전파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꾸준히 야구 클리닉을 열어 어린 선수들을 지도했고, IBAF 야구 월드컵의 홍보에도 앞장섰습니다. (그는 축구팬이기도 해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등도 관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MLB 사상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빅리거는 총 6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이탈리아 태생 빅리거는 레노 베르토리아로 1953년부터 10년간 타이거스와 세네터스에서 뛰었습니다. 그를 끝으로 이탈리아 태생 빅리거의 명맥은 끊겼습니다.
하지만 피아자를 비롯한 이탈리아 야구계의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와 노력 속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자란 선수가 마침내 MLB 무대에 다시 진입하는 역사적인 성과도 이뤘습니다.
몇 명의 야수들이 마이너에서 좌절한 끝에 사무엘 알데게리(Samuel Aldegheri)라는 이탈리아 베로나 출신의 좌완 투수가 지난 2024년 만 22세에 LA 에인절스 소속으로 빅리그에 데뷔했고, 첫 시즌에 승리 투수가 되는 감격도 이탈리아 야구계에 알렸습니다.
올시즌까지 3년째 에엔절스 소속으로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활약 중입니다.
©️이탈리아 대표팀을 WBC 8강으로 이끈 피아자 감독
드래프트에서 꼴찌로 지명됐지만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대선수로 성장했던 피아자.
그는 모국 이탈리아 야구팀을 2023 WBC에서 본선 8강 진출이라는 역대 최고 성적 타이기록으로 이끌었습니다.
이후 2025년 초 MLB 후배이자 이탈리아팀 코치였던 프란시스코 체르벨리(Francisco Cervelli)에게 대표팀 감독직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매년 상당 기간 이탈리아 현지에 거주하며 유소년 야구 시스템 정비, 미국 대학 및 메이저리그 구단들과의 네트워크 구축 등 모국의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다방면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