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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최초의 은퇴 번호 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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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영구 결번’이라고도 합니다.
미국 야구에서 시작된 스포츠의 중요한 전통 중 하나인 이 제도는 원래 ‘은퇴 번호(Retired Number)’라고 합니다. 특정 선수를 기리기 위해 등번호를 선수와 함께 은퇴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KBO리그도 최동원의 11번을 비롯헤 이승엽의 36번, 송진우의 21번, 선동열의 7번 등 각 구단별로 은퇴 번호, 영구 결번이 있습니다.
키움 히어로즈와 KT 위즈를 제외한 8개 구단에 총 18개의 은퇴 번호가 있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 거의 모든 팀 스포츠에 도입됐고, 선수들이 최고로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영구 결번의 전통은 1939년 처음 시작됐습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당대 미국 야구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양키스타디움에서는 한 선수의 은퇴식이 열렸습니다. 그날 야구팬들의 심금을 울린 “오늘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행운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긴 루 게릭(Lou Gehrig)이 바로 첫 영구 결번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뉴욕 양키즈 4번 타자였던 루 게릭은 커리어 내내 ‘철인(Iron Man)’이라는 별명으로 사랑받았습니다.
1925년 6월 2일을 시작으로 1939년 5월1일까지 14년간 게릭은 2,130경기 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1939년 시즌 들어 게릭의 몸에 이상한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피로를 느꼈고 늘 힘이 빠진 상태가 계속됐습니다. 방망이도 꽉 쥘 수가 없었고, 스윙 스피드도 떨어졌고, 공을 때려도 특유의 총알 같은 라인드라이브성 타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늘 땅을 박차고 질주하던 폭발적인 달리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양키스의 주장이던 게릭은 자신의 계속된 슬럼프가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결국 5월 2일 경기에서 스스로 라인업에서 빠졌습니다. 이전 8경기에서 1할4푼3리(28타수 4안타)로 고전하자, 디트로이트와의 원정 경기에 앞서 그는 조 맥카시 감독에게 “I'm benching myself.”라고 말하며 선발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불멸로 여겨지던 게릭의 연속 경기 출전 기록은 그렇게 중단됐습니다.
그런데 게릭의 부진은 일시적인 슬럼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ALS라는, 이름도 어려운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이라는 희귀 불치병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루게릭병’으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진 이 병은 온몸의 근육이 약해지고 점점 기능을 못하게 되면서 결국 호흡 장애와 음식물 섭취 불가능 등의 증상으로 사망하게 되는 무서운 병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대중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었습니다. 
‘철인’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던 게릭이 그런 병에 걸렸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이 병이 널리 알려지고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루 게릭은 야구 생애의 대부분을 베이브 루스의 그늘에 가려 실력보다 크게 빛을 보지는 못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은 역대급의 엄청난 야구 선수였고, 항상 꾸준하고 다이내믹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공포의 양키즈 타선에서 루스가 3번 게릭이 4번을 쳤는데, 그의 성적을 살펴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게릭은 통산 8,001타수에서 1,888득점을 기록했습니다. 
타수당 거의 네 번에 한 번은 득점했다는 참으로 놀라운 기록입니다. 또한 통산 3할4푼의 타율에 2,721안타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것은 그의 장타력입니다. 
14년 야구 생애 동안(1923년에 13게임, 1924년에 10게임, 1939년에 8게임을 뛰기는 했지만 풀타임으로 활약한 것은 14년이었습니다.) 그가 이룬 기록들은 다른 선수들의 20년 넘게 뛰며 작성한 기록을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게릭은 535개의 2루타를 쳤는데 최다 2루타 기록은 트리스 스피커의 793개입니다. 스피커는 게릭보다 8년이 많은 22년간 현역으로 뛰었습니다. 게릭은 한 시즌 52개 2루타를 치기도 했고, 40개 이상 친 시즌이 7번입니다.
 
게릭은 3루타도 162개를 쳤고, 홈런은 493개로 역대 공동 29위입니다. 은퇴 당시는 그보다 많은 홈런을 친 타자는 베이브 루스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많은 홈런을 친 타자 중에 게릭보다 짧은 야구 생애를 보낸 선수는 물론 한 명도 없습니다. 
 
게릭이 기록한 1190개 장타는 역대 11위입니다.
그러나 장타의 밀도는 역대 최고입니다. 
게릭은 자신이 친 안타 중에 43.7%가 장타였습니다. 755홈런의 행크 애런은 자신의 안타 중에 37.1%가 장타였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자신의 2873안타 중에 2루타 506개, 3루타 136개, 홈런 714개로 47.2%가 장타로 게릭보다 약간 높았습니다.
 
물론 현대 야구에서는 마크 맥과이어나 배리 본즈 같은 거포들이 더 높은 장타 비율을 기록했지만, 야구 자체가 다르고 특히 약물 선수들이라 단순 비교할 가치는 없어 보입니다.
게릭은 또한 4.02타수마다 1타점을 올려 유일하게 루스(3.79타수마다 1타점)에만 뒤지는 타점머신이었습니다. 루스가 앞에서 3번을 쳤으니 타점 기회를 먼저 쓸어간 것도 게릭이 뒤진 한 이유가 됐습니다.
게릭의 장타율 .632는 루스(.690)와 테드 윌리엄스(.634)에 이어 역대 3위입니다.
14년 현역 생활 동안 게릭은 27번이나 다양한 공격 부문에서 1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매년 2개 부문 정도에서는 1위를 차지한 셈입니다.
 
1903년생인 게릭은 36세애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철인이었던 그가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메이저리그 역사의 타격 부문 기록은 상당 부분이 바뀌었을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그가 불치병에 걸리면서 병원에서 많은 검사를 하면서 더욱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졌습니다. 게릭은 손가락, 갈비뼈 등 온몸의 곳곳에 크고 작은 부상 내지 골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X-레이 촬영을 통해 밝혀진 것입니다. 
후대의 기록에 따르면 손가락 골절 흔적, 제대로 붙지 않은 손·손목 부상, 반복적 타박상 후유증. 여러 차례의 뇌진탕 가능성, 척추·신경계 충격 누적 가능성 등이 모두 드러났었다고 합니다.
게릭은 요즘 선수들 같으면 당연히 부상자 명단에 오를 꽤나 심한 부상들을 모두 참아내며 14년간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뛰었던 것입니다.
묵묵히 베이스 루스의 그늘 뒤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켜가던 양키스의 '캡틴 게릭'이 불치병으로 쓰러지자 MLB 명예의 전당 위원회는 특별 투표를 거쳐 은퇴와 동시에 게릭을 명예의 전당에 헌당했습니다. 은퇴 후 5년이 지나야 후보 자격이 생기는 규정을 건너뛴 파격 조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독립기념일인 1939년 7월 4일 그의 가슴 아픈 은퇴식에서 뉴욕 양키스 구단은 게릭의 등번호 4번을 retired number, 영구 결번으로 결정했습니다. 
스포츠 사상 최초의 은퇴 번호는 바로 루 게릭의 4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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