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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빈, 스몰츠, 매덕스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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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 사이영 트리오는 글래빈(1984) 스몰츠(1987) 매덕스(1993) 순으로 애틀랜타에 도착했다.

 

글래빈은 1966년 보스턴 근교에서 태어나 자랐다. 고교 시절의 그는 투수 겸 외야수이자 아이스하키 팀의 센터였다. 졸업반 때는 아이스하키에서 23경기 4747어시스트의 돌풍을 일으켰다.

 

1984년 글래빈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MLB)로부터 47순위(2라운드), LA 킹스(NHL)로부터 69순위 지명을 받았다. 마음은 아이스하키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브레이브스가 훨씬 더 적극적인 구애를 하면서 글래빈은 마음을 바꾸었다. 야구에서 좌완이 가지는 이점, 아이스하키 센터로서는 왜소한 체구, 거친 몸싸움에 대한 부모님의 반대도 야구를 택하게 한 요인이 됐다.

 

스몰츠는 1967년 디트로이트 근교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는 계산기 판매원이었지만 폴카 밴드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했고, 어머니도 아코디언 강사였다. 부모님은 스몰츠가 로렌스 웰크(Lawrence Welk) 같은 유명한 아코디언 연주자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스몰츠의 마음을 훔친 건 아코디언이 아닌 야구공이었다. 스몰츠는 1985년 드래프트에서 22라운드 574순위 지명을 받고 고향 팀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스몰츠의 할아버지는 30년 동안 타이거스타디움의 구장 관리원이었고, 스몰츠의 꿈은 타이거스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타이거스는 데뷔하기도 전인 19878월에 그를 애틀랜타로 보냈다.

 

스몰츠는 글래빈을 한 발 뒤에서 쫓아갔다. 글래빈이 1991년 사이영상을 따내자 큰 자극을 받은 스몰츠는 1996년 수상자가 되면서 글래빈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93년 매덕스가 FA 자격을 얻고 애틀랜타에 입단하면서, 사이영 트리오의 시대가 열렸다. 셋은 1991년부터 1998년까지 8년 간, 매덕스가 4, 글래빈이 2, 스몰츠가 1개로, 도합 7개의 사이영을 차지했다.

 

매덕스, 글래빈, 스몰츠는 모두 골프광이었다. 매덕스가 양키스 대신 애틀랜타를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양키스가 시즌 중 골프를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골프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한 셋은 골프 실력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면서 시즌 중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매덕스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스몰츠의 직접적인 경쟁 대상은 글래빈이었다.

 

투수로서 뛰어난 타격 실력을 가진 글래빈은 마이크 햄튼(5) 다음으로 많은 네 번의 실버슬러거를 차지했는데, 스몰츠는 글래빈이 치는 안타의 대부분이 유격수의 키를 넘기는 운 좋은 안타인 반면, 훨씬 강한 타구를 날리는 본인이 더 뛰어난 타자라고 주장했다. 스몰츠는 통산 타율이 .159.186인 글래빈보다 낮았지만, 통산 5개의 홈런은 하나를 친 글래빈보다 많았다.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4년 연속 디비전 우승이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만든 애틀랜타는, 이때 멤버들인 바비 콕스 감독과 매덕스, 글래빈, 스몰츠, 치퍼 존스와 앤드류 존스가 모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같은 로테이션에서 세 명의 첫 해 입성 투수가 나온 것(매덕스 글래빈 스몰츠), 같은 팀 출신의 세 명이 같은 해에 들어간 것(콕스 매덕스 글래빈), 포수, 선발투수, 내야수, 외야수가 모두 들어간 것은 모두 진기한 기록들이었다.

 

특히 같은 해 들어간 매덕스와 글래빈에 이어 이듬해에 들어간 스몰츠의 입회식 연설은 박장대소 그 자체였다.

 

스몰츠는 매덕스와 글래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가발을 꺼내 머리에 썼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톰! 그렉! 내 머리숱이 풍성하던 시절, 우리 정말 끝내주게 재미있었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작년에 저는 이 두 사람의 연설을 순순히 듣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제 머리 스타일이랑 골프 실력을 아주 가지고 놀더군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내심 속으로는 그 시절 저의 풍성한 머리숱을 부러워했다는 걸 말이죠.

 

두 사람이 어떤 대단한 통산 기록을 세워 이곳 명예의 전당에 왔는지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카메라 뒤에서 제가 평생 잊지 못할 일들을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골프든, 투구든, 심지어 경기가 끝나고 누가 먼저 덕아웃을 빠져나가는지 까지 모든 것을 두고 경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로가 더 뛰어난 투수가 되도록 매일 채찍질했습니다.

 

, 자네의 꾸준함과 강인함은 우리 모두의 기준이 됐어. 한 번도 변명을 대지 않았지. 큰 경기가 열릴 때마다 내가 마운드에 올려 보내고 싶은 투수는 언제나 자네였네.

 

그렉, 자네가 던지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투수라는 예술을 감상하는 것과 같았어. 자네는 마운드 위에서 우리 모두보다 세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지.

 

마지막으로 스몰츠는 이렇게 말했다.

 

"치퍼(존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가 마이크를 가장 마지막에 잡을 테니까요."

 

매덕스와 글래빈이 2라운더인 반면, 22라운더였던 스몰츠는 200승과 150세이브를 달성한 최초의 투수가 됐고, 토미존 수술을 받은 투수로는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고향 팀에서 데뷔하기 전에 애틀랜타로 트레이드돼, 글래빈, 매덕스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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