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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에서 마무리, 다시 선발로. 스몰츠의 ‘낭만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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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LG 트윈스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손주영의 마무리 투수 전환입니다. 기존 마무리 투수 유영찬이 13경기에서 0.7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11세이브를 쌓는 등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예고했는데 팔꿈치 수술을 받게 돼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마무리 투수 경험이 있는 장현식에게 잠시 기대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미국에서 활약 중인 고우석과의 면담까지 거친 끝에, WBC 대회 도중 부상으로 이탈했던 손주영이 복귀하면서 마무리 투수를 맡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손주영은 1군 합류 후 다섯 차례 연속 세이브를 기록해 대안으로의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다만 손주영은 본인조차 예상치 못한 마무리 투수 전환 이후, 경기 준비와 운동법에서 달라진 과정에 적응하는데 애를 썼다고 했습니다. 코칭스태프와 유영찬의 조언도 많이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선수들이 체감하는 선발 투수와 구원 투수의 접근법은 차이가 큽니다. 그래서 실패 사례도 많습니다.

 

70년대부터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진의 분업화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면서 세이브라는 기록이 정착되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시대가 흐를수록 선발 투수가 더 강한 공을 뿌리면서 이닝 소화력이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마무리 투수의 가치도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냉정하게 볼 때, 마무리 투수가 선발 투수의 위상을 넘어서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선발 투수로 한계에 부딪힌 선수들이 마무리 투수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LA 다저스의 에드윈 디아스 역시 시애틀 입단 후 마이너리그에서 선발 투수 수업을 받았지만, 강력한 구위에 비해 변화구 장착에 어려움을 겪고 결국 마무리 투수로 역할을 바꿔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84회 연속 세이브 성공 기록을 보유한 2003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에릭 가니에 역시 선발 투수로 정착하지 못해 마무리 투수가 된 경우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이영상을 수상한 선발 투수가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바꿔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했다면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입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존 스몰츠입니다. 박찬호의 미국행으로 우리에게 메이저리그가 크게 주목받던 당시, 매덕스-글래빈-스몰츠 등 애틀랜타의 선발 3인방은 컴퓨터 게임에서나 볼 법한 위용으로 국내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매덕스가 투심 패스트볼의 무브먼트와 제구력을 절묘하게 결합한 고차원의 두뇌 투구를 펼쳤다면, 글래빈은 오른손 타자의 바깥쪽을 활용한 완급 조절과 경기 운영 능력으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반면 스몰츠는 셋 중 가장 강력한 구위를 지녀, 말 그대로 윽박지르는파워 피칭을 선보였습니다. 91년 월드시리즈에서 미네소타의 잭 모리스와 펼친 전설적인 투수전은 스몰츠를 상징하는 경기였습니다. 각각 다른 유형의 세 투수를 동시대에 감상할 수 있던 것은 돌아보면 축복이었습니다.

 

선발 3인방이 버티던 90년대 중반, 애틀랜타의 마무리 투수는 마크 월러스였습니다. 월러스는 당시 보기 드문 시속 100마일의 광속구를 앞세워 95년 애틀랜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끝낸 정상급 마무리 투수였습니다. 하지만 96년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의 짐 레이리츠에게 결정적인 홈런을 얻어맞았고, 팀도 끝내 정상에 서지 못하면서 트라우마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97년을 마지막으로 주전 마무리 투수에서 물러났습니다. 월러스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겪으면서 98년에는 20.1이닝 동안 볼넷을 33개나 내줄 정도로 무너졌습니다. 애틀랜타는 이후 마무리 투수 공백을 케리 라이텐버그, 존 로커 등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확실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공교롭게 2000년 시즌을 앞두고 스몰츠는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됩니다. 스몰츠는 이미 수술을 받기 전부터 인대가 손상된 채로 많은 투구를 해왔다고 했습니다. 다만 투구가 가능한 상태라면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굳이 외부에 설명하지 않고 견뎠습니다. 결국 강력한 투구에 따른 부담이 누적돼 수술대에 오른 스몰츠는 2000년 시즌을 통째로 날렸습니다.

 

2001년 복귀 후 몇 차례 선발 등판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남긴 스몰츠는 고심 끝에 바비 콕스 감독에게 요청해 마이너리그행을 택했습니다. 당장 선발 투수로 긴 이닝을 소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스몰츠가 구원 투수로 변신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었습니다. 구단 역시 스몰츠의 팔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기에 그 결정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식이든 팀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스몰츠의 의지가 가장 컸습니다.

 

잠시의 조정 기간을 거친 뒤 빅리그에 복귀한 스몰츠는 7회와 8회에 마운드에 오르면서 여러 상황을 경험했고, 결국 샌프란시스코를 상대로 2이닝 동안 삼진 4개를 잡아내며 생애 첫 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전문 마무리 투수로 변신한 스몰츠는 2002년 무려 55세이브를 올려 당시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우며 단숨에 역대급 마무리로 변신했습니다.

 

선발 투수로 20승과 50세이브를 모두 경험한 선수는 스몰츠와 데니스 에커슬리가 전부입니다. 이대로 흘러가도 스몰츠는 충분히 레전드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몰츠는 에커슬리와 또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압도적인 마무리 투수로 3년 반 동안 154세이브를 거두고도 다시 선발 투수로 복귀한 겁니다.

 

 

스몰츠는 은퇴 후 여러 유튜브 방송을 통해 이 과정에서의 개인적 고민을 상세히 털어놓았습니다. 일단 상황이 세부적이어서 설명이 필요합니다. 때는 2003시즌 중반이었습니다. 스몰츠는 63일과 4, 이틀 연속 텍사스를 상대로 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5일에는 세이브 요건이 아님에도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8회초까지 5 4로 한점 앞선 상황이어서 몸을 풀었는데, 8회말에 팀이 3점을 뽑아 8 4가 됐고 스몰츠는 그대로 출전해 경기를 끝냈습니다.

 

3연투로 불사른 스몰츠는 이동일 하루를 쉬고 7일과 8일에도 이틀 연속 출전해 세이브 두 개를 추가했습니다. 다시 이동일 하루를 보냈고 10일에는 팀이 연장전 끝에 패하면서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경기에서는 봉중근이 연장 11회 등판했다가 패전 투수가 됐습니다.)

 

숨 쉴 틈 없는 등판이 이어지던 가운데, 스몰츠가 문제의식을 갖게 된 11일이 찾아왔습니다. 애틀랜타가 초반 대량 득점했고 9회까지 11 6으로 앞서면서 스몰츠는 사흘 연속 휴식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8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로베르토 에르난데스가 9회 투구 도중 옆구리 근육을 다치는 바람에 더 이상 투구가 어려워졌습니다. 콕스 감독은 예정에 없던 스몰츠에게 등판을 지시했습니다. 5점 차에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하나. 이런 상황에서조차 자신을 지목했다는 사실에 스몰츠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했습니다.

 

스트레칭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등판한 스몰츠는 변화구 없이 직구만 던지기로 하고 에릭 차베스를 상대했습니다. 그리고 공 8개를 던져 경기를 마감했습니다. 믿을 만한 구원 투수가 많지 않았기에 콕스 감독의 결정을 이해하면서도 마음속에서 불덩이가 끓기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 다음날 12일에도 스몰츠는 또 출전해 세이브를 올렸습니다.

 

다음 시리즈인 시애틀 원정에서 스몰츠의 결심이 굳어졌습니다. 3연전 첫 경기인 13일에 팀의 패배로 하루 쉰 스몰츠는 14일에 다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3 0으로 앞선 8회말 위기 상황이었습니다.무사 만루에서 이치로와 브렛 분, 에드가 마르티네스를 상대하다니. 참으로 즐겁지 않은 환경이었다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작은 기억의 오류는 있습니다. 당시 스몰츠는 이치로를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이치로는 이미 주자로 출루한 상태였습니다. '만루에서 이치로 같은 거물을 상대하려니 마무리 투수를 그만두고 싶어졌다'며 이치로를 높게 평가하려다 나온 실수로 보입니다. 어쨌거나 스몰츠는 브렛 분과 에드가 마르티네스, 존 올러루드로 이어지는 시애틀 중심 타자들을 모두 잡아내고 2이닝 세이브를 거뒀습니다.

 

 

9회 투아웃 상황에서 준비조차 못 한 채 긴급 투입된 오클랜드전. 그리고 8회 무사 만루를 감당해야 했던 시애틀전. 두 경기가 스몰츠에게는 상상 이상의 압박감으로 남았습니다. 그때 선발 투수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했습니다. 스몰츠는 은퇴 후에도 시애틀에서의 그 원정 경기만 떠올리면 선발 투수로 복귀하기로 했던 자신의 결단이 뚜렷하게 생각날 정도라고 했습니다. 철저한 루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강조해 온 선수에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던 2003년의 일정은 너무 가혹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막상 마무리 투수를 해보니 선발로 긴 이닝을 던지는 것보다 신체에 더 무리가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습니다.

 

팀 사정상 2004년까지 마무리 투수를 감당한 스몰츠는, 결국 2005년 자신의 바람대로 다시 선발 투수가 됐습니다. 주위의 우려가 컸지만 이후 3년 연속 200이닝을 돌파하며 44승을 쌓아 실력으로 모든 걸 증명했습니다. 가슴 속 열정과 투지에 언행일치를 이루고야 마는 결단력까지 갖춘 스몰츠는 결국 200승과 150세이브를 모두 경험한 유일한 투수로 남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200승 달성 경기는 공교롭게 톰 글래빈과의 선발 맞대결이었습니다.) 순간순간 내적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훗날 스몰츠는 마무리 투수의 경험이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킨 기회였다고 돌아봤습니다.

 

 

스몰츠 이후 지금까지 선발 투수와 마무리 투수를 그만큼 극적으로 오간 사례는 없습니다. 모든 구단의 프런트에서 다양한 분석 작업으로 상식을 무너뜨리기 위한 시도를 거듭하지만, 또다른 스몰츠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수치로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현실 야구에 적용하지 않는 시대가 됐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스몰츠 정도의 선발 투수를 마무리로 전환할 일도 없고, 역대급 마무리로 활약중인 선수를 다시 선발 투수로 되돌릴 일도 없습니다. 굳이 낭만이라는 단어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스몰츠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면 낭만 야구를 잠시 그리워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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