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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A 10.64에서 명예의 전당으로, 할러데이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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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은 예년에 비해 큰 이슈가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관심을 끈 것은 양대 리그 올스타팀의 선발 투수였습니다. 아메리칸리그를 대표해 토론토의 딜런 시즈가 나섰고, 내셔널리그에서는 필라델피아의 크리스토퍼 산체스가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토론토 소속 투수가 올스타전에 선발로 나선 것은 2009년 로이 할러데이 이후 처음입니다. 필라델피아 투수가 올스타전 선발로 출전한 것 역시 할러데이의 2011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할러데이 이후 올스타전 선발 투수가 없던 두 팀의 주축 투수가 나란히 양대 리그를 대표하게 된 겁니다. 경기 내용과 별개로 할러데이의 잔상이 짙게 느껴지는 매치업이었습니다. (할러데이는 토론토 소속으로 선발 등판한 2009년 올스타전에서 2이닝 3실점 했고,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었던 2011년에는 2이닝 무실점했습니다. 두 차례 선발 등판 포함, 통산 올스타전에는 모두 8번 이름을 올렸습니다.)

 

1998년 토론토에서 데뷔해 통산 203승에 두 차례 사이영상을 수상한 할러데이는 2000년 이후 오랜 기간 빅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였습니다. 특정 구종이나 무시무시한 강속구가 연상되는 투수도 있지만, 할러데이는 에이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닝이터로 리그를 지배했습니다. 단일 시즌 200이닝을 여덟 차례 소화하고, 시즌 최다 이닝도 네 번 기록하는 등 개인적으로 에이스의 요건 중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닝 소화 능력과 내구성에서 당대 최고 수준을 자랑했습니다.

 

 

할러데이의 투구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특유의 스리 쿼터투구폼입니다. 198cm의 거구를 살짝 구부정하게 숙인 상태에서 키킹을 시작해, 무리 없는 전달 과정으로 공을 뿌리는 모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많은 이닝을 던지면서도 큰 부상 없이 마운드를 지킬 수 있던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할러데이의 그 투구 자세는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구를 그만두려 했을 만큼 극심한 부진의 끝에서 주위의 조력자들과 함께 연구해 얻은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이 말 그대로 드라마였습니다.

 

95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된 할러데이는 마이너리그 세 시즌을 보낸 뒤 98년 빅리그에 입성했습니다. 그리고 데뷔 두 번째 경기에서 9회 투아웃까지 노히트 경기를 펼쳤습니다. 아쉽게도 대타로 투입된 바비 히긴슨에게 홈런을 맞아 대기록은 무산됐지만, 1실점 완투승을 거두면서 누가 봐도 될성부른유망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빅리그에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했던 99년 시즌에 87패 평균자책점 3.92의 기록으로 퇴보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더니, 2000년에는 19경기에서 67.2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점이 10.64에 이를 만큼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비판받았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50이닝 이상 던진 투수가 기록한 최악의 평균자책점이었습니다. (20세기 이후 50이닝 이상을 던지고 평균자책점이 10.00이 넘었던 경우는 단 두 번입니다. 할러데이 이외에 1999년 애틀랜타와 시카고 컵스에서 뛴 마이카 보위가 51.0이닝을 버티면서 10.24의 평균자책점을 남겼습니다.)

 

당시 토론토의 감독이자 훗날 해설가로도 큰 발자취를 남긴 벅 마르티네스는 코치진과 함께 할러데이가 부진한 이유를 여러 방면에서 탐구했습니다. 그 결과 피칭 머신처럼 꼿꼿한 오버핸드 투구 자세가 문제라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이른바 디셉션이 없어 상대에게 투구가 읽히는 것은 물론, 97마일의 강속구에 무브먼트가 살아나지 않는 점까지 모두 잘못된 투구 자세 때문인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특급 유망주의 미래를 놓고 고심하던 토론토 구단은 2001년 스프링 트레이닝 도중 할러데이를 무려 싱글A로 강등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실전에서 경쟁하는 동시에 메커니즘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아예 메이저리그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도록 한 것입니다. 마르티네스 감독은 훗날, 이 결정 때문에 할러데이가 자신을 미워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할러데이가 강등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심리적 충격은 컸습니다. 할러데이는 통보를 받자마자 화장실 빈 칸에 들어간 뒤,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이 모두 클럽하우스를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시절 한동안 악몽을 꿨다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처한 상황 자체는 납득하고 있었습니다.

 

 

토론토는 할러데이 개조 작업을 주도할 인물로 멜 퀸 코치를 낙점합니다. 퀸 코치는 현역 시절 내야수였다가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기도 했고, 아예 투수로 전향해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둔 독특한 인물입니다. 96년부터 99년까지 토론토 투수 코치를 맡으면서 팻 헨트겐과 로저 클레멘스의 사이영상 수상에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할러데이를 지도한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업적으로 남을 것이라고는 퀸 코치 본인조차 몰랐을 겁니다. (할러데이 이외에도 크리스 카펜터, 토드 스토틀마이어, 우디 윌리엄스와 데이비드 웰스 등 퀸 코치는 여러 대스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퀸 코치가 마이너리그에서 할러데이와 진행한 작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투구 자세 교정과 그립 조정, 그리고 마운드에서의 정신 자세 개조였습니다. 이 작업이 생각보다 가혹했던 것 같습니다. 퀸 코치는 할러데이에게 너는 멍청한 놈이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지도의 시작이었다고 했습니다. 평생 어떤 선수에게도 그렇게 강압적으로 지도하거나 언어 폭력을 가한 적이 없고, 오직 할러데이에게만 그랬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할러데이가 무작정 강하게 공을 던지려고만 할 뿐,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할러데이에게 인정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퀸 코치는 문제가 된 할러데이의 투구 자세를 오버핸드에서 스리쿼터로 바꿨습니다. 팔 스윙 궤적을 낮춘 것이 차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전체 투구 동작이 한층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의도했던 디셉션도 크게 향상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직구의 무브먼트가 개선됐습니다. 주력 구종도 '포심·커브' 대신 '커터·싱커' 조합으로 수정했습니다. 할러데이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싱커가 자리 잡은 배경입니다. 이때 할러데이는 아내의 추천으로 스포츠 심리학의 전설, 하비 도프먼 박사의 책을 접했습니다. 책의 모든 문장이 자신을 위해 씌여진 것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크게 공감한 할러데이는 곧바로 도프먼 박사와 연락해 꾸준히 심리 훈련을 병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과정에서 짚어야 할 것으로 자기 객관화, 흔히 말하는 메타인지가 아닐까 합니다. 할러데이가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자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면 퀸 코치의 가혹한 교정 작업은 그 자체로 고통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싱글A로 자신을 강등시킨 구단의 의도를 이해한 할러데이는 퀸 코치를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반년 만에 메이저리그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마르티네스 감독도 이 점을 강조했습니다. 마르티네스는 2011NBC와의 인터뷰에서 할러데이가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하고 우리에게 욕을 퍼붓거나, 혹은 내려가더라도 지시 사항을 따르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면서 온갖 고난을 겪은 실패자 신세에서 묵묵히 노력해 개인적인 성취를 이뤄낸 점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달라진 투구 자세와 향상된 무브먼트, 그리고 흔들림없는 정신력까지 갖춘 할러데이는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습니다. 한 차례 완봉승 포함, 53패에 평균자책점 3.16으로 복귀 시즌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2002년 이후 맹렬하게 질주했습니다. 200219, 2003년에는 22승에 사이영상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제구력이 극적으로 안정되면서 이닝 소화력도 크게 향상됐습니다. 자연스럽게 두 시즌 모두 리그 최다 이닝을 해치웠습니다.

 

마이너리그 개조 작업을 경험한 뒤부터 선발 등판할 때마다 냉정하게 루틴을 지킨 할러데이는 토론토에서 148, 필라델피아에서 55승을 거뒀고, 통산 완투 67회와 완봉 20회라는 놀라운 기록을 쌓았습니다여기에 2010년 정규 시즌 퍼펙트 게임과 포스트시즌 노히트 경기를 작성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한 할러데이는 20172월 캐나다 야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행사에 참석한 할러데이는 인터뷰를 통해 멜 퀸 코치와의 추억을 돌아봤습니다. 그때의 엄격한 교육이 자신의 경력을 180도 바꿔놓은 것은 물론, 인생에서도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고 했습니다. 할러데이는 안타깝게 201711월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2019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공식 헌액됐습니다. 유족의 요청에 따라 특정 구단의 로고를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토론토 구단이 드래프트에서 지명하고 육성한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것은 할러데이가 유일합니다. 명예의 전당 측도 할러데이의 경력을 정리하면서 토론토를 주요 팀(Primary Team)’으로 기재했습니다.

 

 

토론토 소속으로 할러데이 이후 처음 올스타전 선발 투수로 나섰던 딜런 시즈는 지난 726일 보스턴 원정 경기에서 1안타 완봉승을 거뒀습니다. 공교롭게 펜웨이파크에서 완봉승을 거둔 마지막 토론토 투수 역시 2009년의 로이 할러데이였습니다. 어떤 식이든 할러데이의 잔상은 여러 형태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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