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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날 500홈런 친 그리피 주니어 현장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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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20일(이하 미국시간)은 미국 ‘아버지 날(Father’s Day)’,
우리와는 달리 미국은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이 따로 있습니다.
그날은 당초 예정에 없던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 경기 취재를 갔습니다.
스포츠조선 특파원 거의 막판 시절, 박찬호와 서재응, 김선우, 김병현 등 MLB의 우리 선수들 위주로 취재를 10년여째 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열린 카디널스와 신시내티 레즈전은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출장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변수가 생겼습니다.

 

시즌 직전 애틀랜타에서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된 봉중근 선수가 6월에 1군에 콜업이 됐고, 6월 20일 세인트루이스전 선발로 나서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적 후 첫 두 경기의 등판 내용은 3.1이닝 9실점과 6이닝 4실점으로 나아지는 상태였고, 이날이 레즈 유니폼을 입고 3번째 선발 등판 경기.
그리고 봉중근이 선발로 나선 이 경기에서 레즈는 켄 그리피 주니어(Ken Griffey Jr.)를 4번 타자로 내세웠습니다.

봉중근은 이날 참 잘 던졌습니다.
토니 워맥을 시작으로 에드가 렌테리아- 전설의 푸홀스- 스캇 롤렌- 짐 에드몬즈- 레지 샌더스- 레이 랭포드- 마이크 마테니로 이어지는 당시 카디널스 타선은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봉중근은 이날 안타 단 3개만 허용하면서 6이닝을 무실점으로 책임졌습니다. 레즈 이적 후 첫 승리를 거둔 날.

 

그리고 6회초 켄 그리피 주니어는 카디널스 선발 맷 모리스가 던진 공을 우측 담장 너머로 넘겨버리며 쐐기포를 터뜨렸습니다.

이 홈런이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은 499홈런 이후 계속 침묵하던 주니어가 드디어 개인 통산 500호 홈런을 터뜨린 순간이었습니다.
직전 홈에서 애틀랜타와 4연전, 그리고 카디널스와 첫 2경기에서도 침묵하던 주니어의 그림 같은 스윙이 작열하며 담장을 넘기는 순간 원정팀, 홈팀 할 것 없이 야구장을 꽉 메웠던 4만5,620명의 팬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로 위대한 좌타자의 대기록을 축하해줬습니다.
당시까지 MLB 역사상 20번째이자, 당시 기준으로 사상 4번째로 어린 나이(34세 212일)에 달성한 개인 통산 500호 홈런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큰 의미가 있던 홈런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날 500홈런을 친 켄 그리피 주니어가 관중석이 아버지 시니어를 찾아 포옹하는 순간을 현장에서 취재한 건 행운이자 감동이었습니다.

팬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내며 역사적인 대기록을 축하하는 동안, 평소와 같이 덤덤하게 베이스를 돌고 홈을 밟은 켄 그리피 주니어는 곧장 좌측 더그아웃 근처 관중석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대기록을 지켜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은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를 발견하고는, 관중석 난간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습니다.
1990년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부자(父子) 백투백 홈런'을 합작했던 전설적인 아버지와 아들. 이번에는 아들의 500호 홈런과 함께 '아버지날' 최고의 드라마를 완성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야구는 감동입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아버지 시니어는 환하게 웃으며 “아들의 500호 홈런은 내 생애 최고의 아버지날 선물”이라고 감격을 표하면서도, “그런데 이걸로 땡! 치고 나한테 다른 파더스데이 선물을 안 주려는 심보인 것 같다.”며 기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클럽하우스 앞에서 만나 ‘한국에서 온 기자인데 아들의 500홈런과 멋진 포옹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자, 정말 밝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고맙다고 말하던 켄 그리피 시니어의 그 빛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직접 본 가장 아름다운 스윙을 지닌, 그리고 천진난만 야구를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을 간직하며, 늘 120% 최선을 다해 몸을 날리던 주니어는, 견줄 자가 없는 진정한 야구 선수였습니다.

‘The Kid’ ‘The Natural’이라는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니어의 630홈런 중에 아마도 톱3에 들어갈 만한 이 홈런의 순간을 함께 했던 것은 제겐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승리 투수가 봉중근 투수였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의미가 큽니다.
봉중근 선발 투수가 승리한 경기에서 주니어가 아버지가 지켜보는 아버지날에 개인 통산 500홈런을 쳤다니, 요즘 유행처럼 말하는 ‘낭만 야구’ 맞네요. ^^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올드 부시스타디움은 MLB에서 유일하게 기자실에 생맥주 뽑는 기계가 있던 또 다른 ‘낭만 구장’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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