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블라디미르 게레로와 추억 여행
지난 2001년 코리언 빅리거 최초로 박찬호 선수가 출전했던 시애틀에서 열린 MLB 올스타 게임 취재를 마치고 오클랜드로 이동하는 비행기에서는 채드 크루터를 만났습니다.
박찬호의 전담 포수로 다저스를 취재하면서 종종 이야기를 나눴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정도가 아니라 더 우연히도 바로 옆자리에 배정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은퇴하면 지도자가 되고 싶다던 그 친구는 후에 대학야구 명문인 남가주대학(USC)의 감독이 됐다가, 마이너리그 코치, 감독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그 넓은 미국 땅에서 비행기에서 지인을 만난다는 게 참 큰 우연인데, 2007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LA행 비행기를 탔다가 낯익은 얼굴을 만났습니다.
다름 아닌 당시 제가 취재를 갔던 MLB 올스타게임에서 홈런더비 챔피언에 오른 블라디미르 게레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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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올스타전 마치고 비행기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개래로
요즘 MLB 팬분들에게 블라디미르 게레로 하면 몬트리올의 스타 주니어를 떠올리실 겁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시니어가 원조 '괴물 게레로'였습니다.
저는 아주 이례적으로 그에게 사진을 찍자고 요청을 했습니다. 우리 선수들 말고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은 거의 처음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 그전에 강타자 대럴 스트로베리, 헤비급 복서 에반더 홀리필드를 우연히 만나 사진 찍은 기억은 있습니다.
게레로 시니어는 참 친절하더군요.
그런데 또 잊지 못할 일은 도미니칸공화국 출신의 올스타 게레로는 동행한 일행도 아주 많았습니다. 비교적 작은 미국 국내선 비행기의 1등석을 모두 차지하고도 모자랐습니다. 일행이 적어도 20명쯤은 돼 보였습니다.
비행기가 떠나기 직전에는 농구 스타 게리 페이턴이 타기도 했는데, 1등석 자리가 하나도 없다고 투덜대면서 타던 기억도 납니다.
올스타전은 아주 흥미롭게 진행됐습니다.
양 팀 선수들이 승리에의 투지를 보였고, 자존심 대결을 벌이면서 마지막까지 팬들에게 명승부를 선사했습니다.
우리도 지난 주말 올스타전을 했지만 MLB와 KBO의 올스타전은 약간 성격이 다릅니다. 우리는 갈수록 잔치에 가깝고, 경기 외적인 이벤트 등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MLB는 승부에 아주 정색을 하고, AL과 NL의 대표선수들이 자존심을 걸고 승부에 올인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사안은 아니지만, MLB 최고 스타 플레이어들의 명예를 건 대결은 볼만합니다.
2007년 7월 10일 샌프란시스코의 AT&T파크(당시 이름)에서 열린 78회 올스타전은 치열한 접전 끝에 AL의 5-4 승리로 끝났습니다.
시애틀의 스즈키 이치로가 올스타전 사상 최초의 인사이드 더 파크(그라운드홈런)을 치며 3안타 2타점으로 활약해 MVP가 됐습니다.
그런데 43,965명의 올스타전 관중들은 본경기도 만끽했지만, 완전 열광했던 건 전날 열린 홈런더비였습니다.
한마디로 역대급 명승부였습니다!
명장면들로 가득했는데, 가장 극적인 순간은 블라디미르 게레로 시니어의 1라운드였습니다. 초반에 아웃 카운트 4개가 될 때까지 홈런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며 고전하고 있었는데, 당시 같은 AL 올스타였던 데이비드 오티즈가 건네준 방망이로 교체한 뒤 거짓말처럼 홈런포를 가동하기 시작해 극적으로 2라운드에 진출했습니다.
이후 기세를 탄 게레로는 괴력을 뿜어내며 결승에 올랐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알렉스 리오스를 상대로 치열한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이 대회에서 그가 기록한 503피트(약 153미터)짜리 초대형 타구는 지금도 팬들 사이 회자되는 명품 홈런 중 하나입니다. 끝없이 날아가던 그 타구를 현장에서 지켜보던 충격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당시 홈런더비 출전 선수 면면을 보면 알버트 푸홀스, 프린스 필더, 라이언 하워드, 저스틴 모노, 맷 홀리데이 등 리그를 주름잡던 당대 최고의 거포들이 총출동해 그야말로 화려한 홈런 축제였습니다.
©️2007 올스타전 홈런더비 게레로의 스윙. 153m 짜리 홈런을 치기도.
경기 전 자이언츠의 전설 윌리 메이스를 소개할 때도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자이언츠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내던 배리 본즈가 홈 팬들의 가장 큰 박수갈채와 환영을 받았고요.
그 대회를 마치고 비행기에서 게레로 시니어를 만나는 행운이 있었지만,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그보다 오래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뛰던 시절입니다.
1996년 몬트리올에서 데뷔했으니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 커리어가 겹쳤습니다. 아직 경험이 일천하던 초반기에는 박찬호의 밥이었습니다. ^^ 엄청나게 큰 스윙의 '배드볼 히터'이던 게레로는 박찬호가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고 바깥쪽으로 변화구를 흘려보내면 헛스윙 삼진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에인절스로 이적하고 베테랑 타자가 된 후에는 긴 리치와 엄청난 파워와 콘택트 능력으로 박찬호를 괴롭히던 기억도 납니다.
©️2007 SF 올스타전 기자증과 출입증
아, 박찬호 선수도 AT&T 파크와 인연이 깊습니다.
2000년 4월 11일 당시 퍼시픽벨 파크라는 이름으로 개장한 이 구장의 개막전 경기에서 박찬호는 6이닝 3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습니다. 당시 그 아름다운 야구장에 취했다가 박찬호 투수의 승리에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황재균 선수도 그 야구장 데뷔전에서 홈런을 치기도 했지요.
그리고 이제 오라클파크로 다시 이름을 바꾼 그 아름다운 야구장은 이정후 선수의 홈이 됐습니다.
©️2007 SF 금문교
다시 게레로로 돌아가면 16년간 MLB에서 2147경기를 뛴 괴물 게레로는 통산 3할1푼8리에 449홈런-1496타점-1328득점, 2루타 477개, 3루타 46개, 181도루, OPS .931과 WAR 59.5를 기록했습니다.
9번의 올스타와 2004시즌 AL MVP 그리고 8번의 실버슬러거를 차지했고, 2018년 92.9%의 압도적 지지로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됐습니다.
아, 그리고 2023년 시애틀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가 홈런더비에서 우승하며 역사상 최초의 부자(父子) 홈런더비 챔피언이 탄생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