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타이 콥과 베이브 루스
스포주의! 이 글에는 영화 <나는 전설이다>와 소설 <나는 전설이다>의 결말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윌 스미스 주연의 2007년작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바이러스로 인해 흡혈귀처럼 변한 변종 인류에게서 치료제를 찾아낸다. 그리고 일행과 함께 생존자들이 있는 희망의 땅으로 향한다.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약을 얻었기 때문에, 결말이 의미하는 제목의 의미는 <나는 영웅이다>에 가깝다.
감독판의 결말은 다르다. 감독판에서 로버트 네빌은 변종 인류가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치료제를 얻지 못한 채 일행과 함께 희망의 땅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 결말 또한 <나는 전설이다>라는 제목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꽤 오래 전 종로 1가 교보문고의 진열장에서 꺼내들었던 1954년작 소설 <나는 전설이다>의 결말을 잊지 못한다. 그 자리에 서서 끝까지 읽었던 책의 마지막 장에서, 로버트 네빌은 죽어가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기존 인류는 사회성을 가진 변종 인류로 대체될 것이고, 기존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인 나는 과거로 남겠구나'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비슷한 일이 150년의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에서도 있었다.

데드볼 시대 최고의 타자였던 타이 콥에게는 '참을 수 없는 존재'가 있었다. 베이브 루스였다.
콥은 정교한 타격, 번트, 도루,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지능적인 플레이가 야구의 진정한 가치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됐다.
그러나 콥이 33세였던 1920년, 변종 인류가 등장했다. 전업 타자가 된 첫 해에 54개의 홈런을 날려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25세의 루스였다.
이듬해 루스는 59개의 홈런을 치면서 81번의 삼진을 당했다. 반면 콥은 12개의 홈런을 치면서 19번의 삼진을 당했다. 콥은 자신의 야구를 훨씬 고차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열광적인 인기를 가져간 쪽은 루스였다.
콥은 루스를 미워했다. 그에게 있어 루스는 방망이를 크게 휘둘러 홈런을 날리는 그저 '운 좋은 놈'일 뿐이었다. 콥은 루스를 '저 거대한 개코원숭이'(that big baboon)라고 했고 루스를 향해 원숭이 흉내를 내거나 고릴라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루스가 지나갈 때마다 "어디서 썩은 냄새가 나지 않아?"라고 했다. 루스는 그때마다 발끈했지만, 대선배의 멱살을 잡을 순 없었다.
하지만 화풀이를 하면 할수록, 콥은 고통스러웠다. 루스에 의해 자신이 평생을 추구한 야구가 잊혀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신 인류의 등장에 밀려 멸종을 앞두고 있는 기존 인류, 로버트 네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네빌처럼 순순히 퇴장할 생각은 없었다.
1925년 5월5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수 겸 감독이었던 38세의 콥은 누군가가(기자 또는 동료) 자신의 앞에서 루스를 칭찬하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홈런을 치려고 타석에 선 적이 단 한 번도 없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칠 수 있다는 걸 오늘 보여주도록 하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콥은 첫 타석부터 홈런을 날렸다. 두 번째 타석도 홈런이었다. 콥은 8회에도 홈런을 추가함으로써 3홈런 경기를 만들었다. 콥이 메이저리그에서 3034경기를 뛰면서 달성한 유일한 3홈런 경기였다.
다음날에도 콥은 다시 두 개의 홈런을 날려 2경기에서 5개를 터뜨렸다. 그렇게 자신의 말을 증명한 후, 다시 본인이 추구하는 타격으로 돌아갔다. 이틀 동안 5개를 친 콥은, 나머지 119경기에서 7개를 치고 시즌을 마쳤다. 12개는 개인 최고기록이었다.
콥이 루스보다 나중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대세에 따라 방망이를 길게 쥐었을 것이고, 루스 못지 않은 홈런 타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홈런보다 안타와 도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구시대의 야구 선수였고, 불행하게도 자신이 추구한 야구의 멸종을 피하지 못했다.
반전. 콥의 마지막 페이지는 해피 엔딩이었다.
자기 관리를 못한 루스가 1948년 54세를 일기로 사망한 반면, 1961년 콥은 74세에 사망할 때까지 (당시 기준으로) 천수를 누렸다. 또한 코카콜라, 제너럴모터스 등의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막대한 부를 얻었다.
또 다른 반전. 은퇴 후 루스와 콥은 골프 친구가 됐고 꽤 친하게 지냈다.
마지막 반전. 1936년 초대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발표됐을 때, 콥은 득표율에서 루스를 제침으로써 최고의 선수로 인정 받았다. 행복한 퇴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