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허벨과 스크루볼
일반
칼 허벨이 은퇴할 무렵, 그의 팔에는 영광과 상처가 남았다. 그에게 스크루볼은 강력한 무기이자 자부심이었지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타자의 시야에서 공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하여 '페이드 어웨이(fadeaway)' 라고 불리던 스크루볼은 구사할 수 있는 투수가 무척 드물어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다.
인고의 시간
허벨은 이 스크루볼로 기회를 개척해 나갔다. 커브는 제법 좋았지만, 그에게는 강속구가 부족했다. 독립 리그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뛰던 시절 그는 레프티 토마스에게 스쿠루볼을 전수 받았다. 그는 이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냈다. 스크루볼은 반대 방향으로 휘는 커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팔이 돌아가는 것을 견디며 이 기술을 통달해내었다.
이 기술은 당시에도 몹시 위험한 기술로 여겨졌다. 1925년 허벨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계약을 맺는다. 감독 타이 콥은 이 위험성을 이유로, 다른 공을 배워오라며 허벨을 마이너리그에 보낸다. 하지만 허벨은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영광의 시간
이렇게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1928년, 뉴욕 자이언츠의 감독 존 맥그로가 그의 스크루볼을 보고 그를 영입한다. 그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긴 시간동안 끊임 없는 노력을 통해, 그는 스크루볼의 구속을 세 가지로 조절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어둠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그에게 이른바 '꽃길'이 시작된 것이다. 1929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뛰어난 성적을 냈다. 1934년 올스타전에서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명타자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지미 폭스, 알 시몬스, 조 크로닌 5명을 연속 삼진 아웃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의 팔을 담보로 얻어낸 힘은 1938년에 이르러 저물어가기 시작한다. 허벨은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그 여파로 그의 스크루볼의 위력은 약해졌다. 그는 1943년 은퇴를 선언했고, 1944년 그의 등번호 11번은 뉴욕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은퇴할 무렵 그의 왼팔은 손바닥이 바깥을 향할 정도로 뒤틀렸다. 그의 팔에 남은 것은 무한한 영광과 영원한 고통이었다.
마치며
나는 허벨의 의지와 노력에 큰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살아남기 위해서, 야구 선수로 남기 위해서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 만의 살 길을 찾았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했던가. 그 치열한 노력의 대가는 영광과 성공이었다. 그 인고와 영광의 시간을 함께한 게임 자켓을 보며, 나 또한 치열하게 살아가보자 하는 용기를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