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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재 : 카드로 보는 MLB Story ①] ‘테드 윌리엄스’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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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학도병 이우근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壽衣(수의)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1952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보스턴 레드삭스 테드 윌리엄스의 모습(MLB.com)

 

 

 

 

 

 

 

 

친애하는 테드 윌리엄스 대위님께,

 

테드 대위님, 그곳 천국은 어떤가요? 그곳에서도 야구 경기가 열리나요? 거기서도 4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위님을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로만 기억하지만, 저는 대위님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쟁영웅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19525월로 기억합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당신은 이역만리 한반도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야구배트를 내려놓았습니다. 美 해병대 제311해병전투비행대대 소속으로 포항에 배치되셨지요? 대위님이 조종했던 F9F 제트 전투기도 실제로 보았습니다. 이 전투기를 몰고 한반도 상공을 누볐을 대위님을 상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 Bangor Daily News

 

 

 

대위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쓰셨더군요.

 

전투기엔 온통 구멍이 났고 나를 위해 모두 기도하고 있었다. 지독히도 운이 좋았다. 착륙했을 때 기체는 생지옥처럼 불타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 모두 나에게 운이 좋다고 말했다. 어쨌든 당신이 그립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제가 편지를 훔쳐본 것은 아니고, 예전에 이 편지가 경매에 올라와서 우연찮게 알게 된 것이랍니다.

 

 

 

 

 

 

 

© <이달의 625 전쟁영웅 : 美 해병대 테드 윌리엄스 대위> 포스터(국가보훈부)

 

 

 

아참, 그 소식 들으셨나요? 대한민국 정부(국가보훈부)는 2023년 한‧미 동맹 및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자유 수호에 기여한 UN 참전용사 등을 이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고 있는데, 20237월에 대위님이 선정되셨습니다. 너무 뒷북인가요?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아니, 감사드립니다.

 

 

 

 

 

 

 

© 2002년 7월 23일 보스턴 펜웨이 파크에서 치러진 테드 윌리엄스의 추모식(The Boston Globe)

 

 

저는 200275일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위님이 천국에 가신 날이기 때문이지요. 당시 짧은 기사를 통해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 2002년은 당신이 지켜낸 나라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해이기도 했습니다. 손가락으로 셈을 해보니, 630일 개최된 월드컵 폐막식까지 다 보고 가주셨더군요. 그래도 대한민국이 대위님께 마지막 선물을 드린 것 같아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이 됩니다. 끝까지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위님 덕분에 대한민국이 그런 기쁨과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MLB.com

 

 

그렇게 대위님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나라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고, 국제사회로부터 선진국 지위를 공인받고 명실상부한 경제강국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 나라에서 대위님과 같은 메이저리거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박찬호, 김병현, 김선우, 서재응, 최희섭, 추신수, 류현진, 강정호, 오승환, 박병호, 이대호, 김광현, 김하성, 이정후 등등 모두 대위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늘 대위님의 헌신과 희생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가끔 야구를 보면,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 테드 윌리엄스의 <명예의 전당> 헌액식 연설 장면(MLB.com)

 

 

 

1966725일은 대위님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날이지요. 대위님이 헌액식에서 사첼 페이지조시 깁슨과 같은 니그로리그(Negro League)를 대표하는 선수들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보았습니다. 당시 대위님은 청중 앞에 서서 작은 소원 하나를 말하는 어린 소년 같았습니다.

 

 “I hope that someday, the names of Satchel Paige and Josh Gibson can be added to the symbol of the great Negro League players that are not here only because they were not given a chance.”

 

그리고 그 소원은 결국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명예의 전당에는 37명의 흑인 선수가 헌액되어 있습니다. 다들 대위님의 연설 덕분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한 가지 서운해하실 수 있는 소식도 있습니다. 그동안 대위님은 ‘1941143경기 606타석 타율 0.406’ 기록 덕분에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타이틀은 조시 깁슨(1943년 타율 0.441) 선수에게 돌아갔습니다. 지난 20201216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니그로리그 선수들의 기록을 공식 기록으로 인정해 반영하기로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메이저리그가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물기 위해 더욱 많은 기록들을 메이저리그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대위님이라면 그 소식에도 섭섭해하지 않고, 오히려 엄지를 치켜세웠을 것 같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미국 야구를 바꾸었다면, 재키 로빈슨은 미국 역사를 바꾸었다.”는 야구계의 명언이 있습니다.

“Babe Ruth changed the way baseball was played; Jackie Robinson changed the way Americans thought.”

 

 

저는 여기에 문장 하나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미국 야구를 바꾸었다면, 재키 로빈슨은 미국 역사를 바꾸었다.
 그리고 테드 윌리엄스는 나를 바꾸었다.”

 

대위님께 편지를 쓰며 또 한 번 생각합니다. 대위님은 저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든다는 것을요.

 

 

 

 

 

 

 © 美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펜웨이 파크 입구 동상 앞(2010년 8월 직접 촬영)

 

 

혹시 제가 2010년 여름, 대위님이 19시즌이나 뛰었던 보스턴 펜웨이 파크에 갔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대학교 해외 견학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펜웨이 파크를 둘러본 후 맨 좌측 대위님의 동상을 보며 혼자 조용히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그때 그 경례는 오롯이 대위님을 위한 저의 경의의 표시였습니다. 일정상 경기를 보진 못했지만, 제겐 작은 꿈 하나가 이루어지는 소중한 순간이었음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참, 그곳 천국에서도 좌익수를 맡고 계신가요? 등번호도 여전히 9인가요? 한 가지 알려드릴 사실이 있습니다.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지만, 대위님이 19539월 미국으로 돌아가신 후 1954 시즌에 입었던 유니폼이 이곳 대한민국, <이랜드 뮤지엄>에 있다는 사실을요. 저 말고도 대위님을 추억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대위님이 한국전쟁 후 첫 시즌을 치를 때 입었던 유니폼이라 더 특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유니폼은 저의 원픽 컬렉션이 되었습니다.

 

 

 

 

 

 

혹시 유니폼이 없어 천국에서 경기를 못하고 계신 건 아니지요? 그곳에서도 여전히 등번호 9을 달고 뛰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유니폼이 더러워지면, 언제든 이곳 대한민국에 찾아와주세요. <이랜드 뮤지엄>에서도 흔쾌히 내어주지 않을까요? 등번호 9의 이 유니폼을요.

 
 
대위님께 편지를 쓴 대한민국 사람이 또 있을까요? 제가 나중에 천국에 가게 된다면, 꼭 이 말을 제 입으로 직접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덕분에 이 세상에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당신의 용기와 노력, 희생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었다고. 그리고 정말 감사했다고.”
 
 
 
 
 
 
 
©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PETCO PARK) 내부에 전시된 메이저리거 참전 용사 리스트(DODGER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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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메이저리거들은 한국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꺼이 국가의 부름에 응했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선수들은 자신의 야구 커리어에 많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예 현역으로 복귀하지 못한 사례도 있습니다. 밥 네이버스(Robert O. “Bob” Neighbors, 1917~1952) 소령처럼 전선에서 눈을 감은 선수들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화이티 포드(Whitey Ford, 1928~2020), 윌리 메이스(Willie Mays, 1931~2024) 선수가 한국전에서 전투 지원 업무를 수행했고, 어니 뱅크스(Ernie Banks, 1931~2015) 선수 역시 한국전 당시 징집되어 독일에서 복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한반도 땅을 직접 밟진 않았지만, 전투 지원 업무를 수행한 이들도 훌륭한 전쟁 영웅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이 그들의 희생에 대한, 그리고 야구에 대한 예의이지 않을까요?

 

 

 

 

 

 

 

 

 

 

 

 
 
 
명언 한 줄
  • 남자라면 그 날의 목표, 평생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 목표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저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지나간다.”        - 테드 윌리엄스 
  • A man has to have goals — for a day, for a lifetime — and that was mine, to have people say, “There goes Ted Williams, the greatest hitter who ever lived.”        - Ted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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