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까지 야간경기를 안 한 야구장
1914년, 시카고에 세 번째 야구 팀이 탄생했다. 내셔널리그의 시카고 컵스와 아메리칸리그의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이은 페더럴리그의 시카고 웨일스였다.
컵스는 1885년에 지은 웨스트사이드파크를, 화이트삭스는 사우스사이드파크를 거쳐 1910년에 지은 코미스키파크를 쓰고 있었다. 웨일스의 구단주였던 찰스 위그먼은 시카고 북부의 신학교 터를 임대해 위그먼파크를 만들었다.
제3의 리그로 출발한 페더럴리그는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존 리그들과의 선수 영입 경쟁에서 무리한 지출을 했고 2년 만에 파산했다.
위그먼은 재빨리 컵스를 샀고, 컵스를 위그먼파크로 옮겼다. 하지만 위그먼이 재정난을 겪게 되면서, 컵스는 '리글리 껌'으로 큰 돈을 번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에게 넘어갔다. 위그먼파크는 컵스파크를 거쳐 1927년부터 리글리필드로 불리기 시작했다.
1941년 윌리엄 리글리의 아들인 P. K. 리글리는 리글리필드에 조명탑을 설치하기 위해 165톤의 철강 자재과 3만5000피트의 동선을 확보했다. 하지만 1941년 12월7일에 일어난 진주만 공습이 컵스의 역사를 바꿨다.
1차 세계대전 때 입대해 4년의 복무를 하고 해군 중위로 전역한 리글리는 진주만 공습 바로 다음 날, 조명탑 설치를 위해 마련한 것들을 미 군수 물자 및 전쟁물자위원회에 전량 기부했다. 리글리가 보낸 자재들은 해군 조선소로 넘어가 군 함정을 만드는데 사용됐다.
전쟁 기간 여자리그의 창설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리글리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명탑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낮 경기를 고수했다. 리글리는 1945년 월드시리즈 때, 관중석에서 한 선술집 주인이 데려온 애완 염소를 쫓아낸 걸 제외하면 훌륭한 구단주였다(머피라는 이름의 염소는 입장권까지 끊고 들어온 상태였다).
이후 39년이나 가을 야구를 하지 못한 컵스는 1984년 동부 우승을 차지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하지만 큰 문제가 발생했다. 중계권을 확보한 방송국으로서는 PS 경기를 프라임 타임에 중계해야 했지만, 리글리필드는 조명탑이 없었던 것이다.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NLCS 1,2차전은 모두 낮 경기로 진행됐고, 컵스는 그 두 경기를 모두 승리했지만, 샌디에이고 원정 3,4,5차전을 모두 패해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컵스의 또 다른 문제는 리글리필드가 주택가 한가운데 지어진 것이었다. 주민들이 소음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시카고의 시의회는 1982년 주택가 구장에서 야간경기를 금지하는 조례까지 제정했다.
사무국은 1988년 시즌을 앞두고 조명탑을 설치하지 않으면 앞으로 열리는 모든 포스트시즌 경기는 중립구장에서 개최할 것이라며 컵스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컵스는 시의회를 설득했고 1년에 18경기는 야간 경기를 할 수 있게 됐다.
리글리필드는 1988년 4월부터 조명탑 공사가 들어갔다. 기존의 구장에 추가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헬리콥터까지 동원됐다. 1998년 8월8일, 리글리필드에서 역사적인 첫 야간경기가 열렸다. 경기는 비 때문에 4회초 도중 중단됐고 노게임이 선언됐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구장 주변의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노력한 컵스는 야간경기의 숫자를 조금씩 늘려 현재는 81경기 중 43경기를 야간경기로 개최하고 있다. 다만 정규시즌 금요일의 야간경기는 1년에 세 번으로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컵스 혼자서 금요일 낮 경기를 할 때가 많은 이유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 시절, 무더위 때문에 개폐식 돔구장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에 "모름지기 야구는 낮에 햇살을 받아가며 관전하는 것"이라며 옥외 구장을 지었다. 사실은 건설비를 아끼기 위함이었고, 레인저스 선수들은 지금의 개폐식 구장(글로브라이프파크)을 2020년에 개장하기 전까지 폭염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컵스는 '야구는 낮에 하는 것'이라는 100년 전의 낭만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무더운 낮 경기를 끝내고 난 후 "한 경기를 더하자"(Let's play two!)고 외쳤던 어니 뱅크스는 오직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잃지 않고 있는 리글리필드를 '친근한 보금자리'((The Friendly Confines)라고 불렀고, 이는 리글리필드의 애칭이 됐다.
2016년 컵스는 1945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1908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P. K. 리글리의 정신이 깃든 리글리필드에서 들어 올린 첫 우승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