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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어스, 성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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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 워싱턴 세네터스(AL), 로스엔젤리스 에인절스(AL)

 

1962년 - 뉴욕 메츠(NL), 휴스턴 콜트 .45s(NL)

 

1969년 - 몬트리올 엑스포스(NL), 샌디에고 파드리스(NL)

 

60년대에 6팀을 늘린 메이저리그는 1971년 시애틀과 캔자스시티에도 새로운 팀을 만들 예정이었다.

 

하지만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의 찰스 핀리 구단주가 사무국의 계획을 무시하고 1967년 시즌 후 오클랜드로 옮김으로써 모든 것이 꼬여버렸다.

 

미주리주의 스튜어트 사이밍턴 상원위원은 애슬레틱스의 야반도주에 분노해 메이저리그의 독점 금지법 면제 혜택을 박탈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파국을 두려워 한 사무국은 부랴부랴 2년을 앞당겨, 1969년에 두 팀을 더 창단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시애틀 파일러츠였다.

 

로열스가 빠르게 자리를 잡은 반면, 파일러츠는 그렇지 못했다. 로열스는 애슬레틱스가 버리고 간 뮤니시펄 스타디움을 쓰면 됐지만, 메이저리그 팀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애틀에는 괜찮은 구장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이너 구장에서 시작한 파일러츠는 흥행에서 참패했고, 1년 만에 파산 신청을 했다. 그리고 밀워키로 옮겨 브루어스가 됐다. 밀워키에는 브레이브스가 썼던 카운티 스타디움이 있었다.

 

1973년 밀워키는 1라운드 3순위로 로빈 욘트를 뽑았다(샌디에고가 뽑은 4순위는 데이브 윈필드였다). 18살에 데뷔한 욘트는 1978년 스프링캠프 도중 야구가 더 이상 즐겁지 않다며 골프 선수가 되겠다는 선언을 했다. 하지만 마음을 잡고 다시 야구에 집중해 명예의 전당 선수가 됐다. 유격수인 욘트의 옆에는 또 다른 명예의 전당 선수인 2루수 폴 몰리터가 있었다.

  

 

1981년 밀워키의 마지막 퍼즐이 도착했다.

 

샌디에고는 FA 계약으로 입단해 2년 연속 세이브 1위를 했던 롤리 핑거스가 주춤하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했다. 하지만 4일 후 세인트루이스는 핑거스를 다시 밀워키로 트레이드했다.

 

세인트루이스 화이티 허조그 단장은 핑거스를 데려온 다음날, 시카고 컵스에서 브루스 수터를 데려왔다. 내셔널리그 마무리의 양대 산맥인 둘을 모두 데리고 가는 건 과했기 때문에 수터를 남기고 핑거스를 다시 트레이드한 것이었다.

 

핑거스는 밀워키에게 자신의 요구 조건들을 들어주지 않으면 은퇴를 하고 맥주 사업이나 하겠다고 했다. 밀워키 선수들은 핑거스를 설득하기 위해 나섰고, 몰리터는 핑거스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롤리, 당신이 오면 우리는 월드시리즈에 갈 수 있습니다. 맥주 사업은 은퇴한 후에 하시죠."

 

1981년 밀워키는 콧수염 열풍이 불었다. 밀워키의 어린 선수들이 핑거스를 따라한 것이다. 핑거스는 동료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의 수염은 그냥 안 깎은 거야. 예술 작품인 내 수염과 비교할 순 없지."

 

1981년 핑거스는 생애 첫 사이영상을 차지했고, 밀워키 구단 최초로 리그 MVP가 됐다. 밀워키는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디비전시리즈에서 양키스에게 패했다. 5차전 최종전 패배였다.

 

1982년 밀워키는 더 강해져 있었다. 홈런과 득점에서 메이저리그 1위를 한 최고의 타선 덕분이었다.

 

당시 밀워키 타선은 Harvey's Wallbangers로 불렸다. Harvey's Wallbangers는 보드카에 오렌지 주스를 섞어 만드는 보드카의 이름이었지만, 하비 킨(Harvey Kuenn) 감독이 이끄는 밀워키 카선이 외야 담장(Wall)을 부순다(Bang)는 의미로 근사한 별명이 만들어졌다.

 

밀워키는 ALCS에서 에인절스를 꺾었고, 처음 나간 월드시리즈에서 카디널스를 만났다. 핑거스 입장에서는 자신을 트레이드로 데려간 후 나흘 만에 다시 트레이드하는 수모를 안겨준 팀이었다. 하지만 핑거스는 9월 초에 부상을 당해 포스트시즌을 뛸 수 없었다.

 

5차전까지 3승2패였던 밀워키는 6차전에서 대패를 당했다. 하지만 7차전은 6회초까지 3-2로 앞섰다. 그러나 핑거스가 없는 밀워키는 역전을 당했고 7차전을 패했다. 지난해까지 밀워키가 나간 유일한 월드시리즈였다.

 

부상에 신음한 핑거스는 밀워키에서 방출된 후 신시내티의 입단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신시내티가 수염을 깎아야 한다고 하자 미련없이 은퇴했다. 핑거스는 1992년 첫 투표에서 81.2%를 얻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밀워키에서 15년을 뛴 몰리터는 1993년 토론토로 이적했고, 월드시리즈 MVP가 됐다. 1996년에는 고향 팀인 미네소타에 입단했고 3000안타를 달성했다. 몰리터도 2004년 첫 투표에서 85.2%를 얻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욘트는 1993년까지 밀워키에서만 20년을 뛰고 은퇴했다. 핑거스가 오클랜드 시절 3년 연속 우승(1972-1974)을 하고, 몰리터가 토론토에서 반지를 얻은 반면, 욘트에게는 우승 반지가 없었다. 욘트도 1999년 첫 투표에서 77.5%를 얻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밀워키는 통산 755개의 홈런 중 22개를 브루어스에서 친 행크 애런에게 1976년 영구결번을 줬다. 애런은 첫 12년을 밀워키 브레이브스에서 뛴 밀워키의 영웅이었다.

 

애런을 제외하면, 밀워키의 영구결번은 1992년에 받은 핑거스, 1994년에 받은 욘트, 1999년에 받은 몰리터뿐이다.

 

그리고 2026년. 밀워키는 창단 57년 만에, 1982년 준우승 이후 44년 만에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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