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애틀 3인방' 중에 운동능력 짱이던 스몰츠

조회 4

얼마전 김형준 위원이 쓴 글을 재밌게 읽다 보니 그 대단했던 3명의 투수들에 대한 기억이 소록소록 떠올랐습니다.

1990년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성기를 이끈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는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손꼽히는 원-투-쓰리 펀치였습니다. 'Big Three'라고 불리곤 했습니다.

ⓒ'빅3'로 불리던 90년대 애틀랜타 3인방, 사진 좌로부터 글래빈-스몰츠-매덕스

조합도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오른손 기교파의 대명사 매덕스와 왼손 기교파에 투사인 매덕스, 그리고 강력한 구위의 우완 정통파 스몰츠. 3연전에 이들을 연속으로 만나기라도 하면 상대 팀은 시작도 전에 패닉에 빠지곤 했습니다.

스포츠조선 특파원 당시 박찬호와 봉중근 취재하러 애틀랜타를 자주 찾았고, 이들 세 명 투수와도 종종 만났습니다.

저를 '퍼펙트게임' 투수 데니스 마르티네스와 똑 닮았다던 매덕스를 비롯해 이들을 접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셋의 분위기는 '정말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없다!' 였습니다.

매덕스는 영악했습니다.

투구하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느끼지만, 달변에다가 단어 선택이나 구사력 등도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프로페서'라는 별명이 붙은 반면 승부욕도 대단해서 그의 이름을 따서 'Mad Dog', 즉 미친개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국내팬들이 '덕수옹'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매덕스는 그렇게 변신이 가능했던, 그리고 유머 감각도 넘치던 친구였습니다.

글래빈은 과묵하면서도 뚝심이 느껴졌습니다.

아이스하키 NHL 드래프트에 뽑혔을 정도로 '하키 멘탈리티'를 지닌 그는 셋 중에서 상대적으로 공이 느렸지만, 정교하고도 가장 공격적인 피칭을 했습니다. 과묵해서 필요한 말만 하는 정도였지만, 팀의 선수협 회장을 지낼 정도로 반골 기질도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그를 '글래브'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야구를 향한 나의 투혼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긴 투수죠.

ⓒMLB애서 유일하게 200승+ 150세이브+ 를 달성한 존 스몰츠 투수

그리고 스몰츠는 거구(190cm-95kg)의 정통파투수였지만 상당히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었지만 친해지면 또 굉장히 장난기도 많았고, 엄청난 구위에 비해 온순한 성격으로 기억합니다. 동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스몰지'라고 불렀고, 만화속 거대 강아지 캐릭터인 '마마듀크'가 팬들이 부르는 애칭이기도 했습니다.

스몰츠의 경기를 처음 현장에서 본 것은 1991년 월드시리즈 취재 때였습니다.

아직 영건이던 스몰츠는 4차전 선발로 7이닝 2실점하며 팀의 3-2 승리에 기여했고, 7차전에서는 7.1이닝 무실점의 역투를 이어갔습니다.

4차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네소타 선발 잭 모리스와 펼쳤던 불같은 투수전 7차전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신예와 베테랑의 맞대결이었는데, 스몰츠가 8회 내려간 후에도 계속 던진 모리스가

연장 10회 1-0 완봉승을 거둔 바로 그 경기였습니다. 모리스의 엄청난 피칭도 놀라웠지만, 당시 24세이던 스몰츠의 강력했던 구위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셋은 엄청난 투수이기도 했지만 골프 실력으로도 유명했습니다.

모두 로우 싱글의 실력자들이었고, 골프 핸디캡으로는 간발의 차이긴 하지만 스몰츠-매덕스-글래빈 순이었습니다. 선수 시절 스몰츠의 핸디캡은 +2.

그런데 셋이 골프 내기를 하면 스몰츠가 이기는 적은 드물었다고 합니다. 약간의 새가슴과 허당기가 스몰츠는 있었습니다.

ⓒ뛰어난 골프 실력으로도 유명했던 스몰츠는 PGA 투어와 시니어 투어에도 도전했습니다.

그 한 가지 일화로 스몰츠가 프로암 골프대회에 출전했을 때의 해프닝이 있습니다.

워낙 골프 실력이 출중하다는 것이 알려진 스몰츠는 페블비치에서 열리는 유명 대회에 초청을 받았는데, 첫 홀 티샷에서 어이없이 갤러리들 머리 위로 날아가는 OB 샷을 때리고 말았습니다. 저도 그 장면을 TV로 봤는데, 엄청 긴장한 모습이 화면에서도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MLB에 데뷔해서도 초반에는 긴장을 떨치지 못하고 망치는 경기가 많았기에, 그와 늘 상담을 하던 스포츠 심리사가 스몰츠가 보이는 포수 뒤쪽 관중석 가운데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몰츠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은근한 끈기와 조용하지만 강한 도전 정신이 있었습니다.

셋 중에 데뷔도 제일 늦기도 했지만 빛을 본 것도 상대적으로 늦었는데, 결국 스몰츠는 그 어떤 투수로 이루지 못한 길을 이뤄냅니다.

1996시즌 35경기 선발로 253.2이닝을 던지며 24승 8패, 평균자책점 2.94, 탈삼진 276개를 기록해 내셔널리그(NL) 사이영상을 거머쥔 스몰츠는 1999시즌 후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습니다.

그리고 2001년 복귀했지만 5경기 선발 후 팀 사정상 마무리 변신이라는,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이고 대단히 모험적인 도전에 동의합니다. 당시 애틀랜타 불펜이 엉망이었는데 바비 콕스 감독은 신뢰할 수 있는 강력한 마무리 투수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사이영상 수상한 선발 투수에게 예우를 다해 마무리 전업 요청을 합니다. 신뢰와 희생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이 변신은 결과적으로 브레이브스와 스몰츠 모두에게 신의 한 수가 됩니다.

마무리 풀타임 첫 해인 02시즌 스몰츠는 55세이브로 당시 단일시즌 NL 최다 세이브와 함께 '롤레이즈 구원투수상(Rolaids Relief Man Award)'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45세이브, 04년 44세이브로 최강 마무리로 3년을 보낸 스몰츠는 만 38세인 05시즌 다시 선발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3년간 14승-16승-14승, 그중 16승은 시즌 최다승이었고, 2007년 5월 24일 뉴욕 메츠전에서는 통산 200승째를 거둡니다.

통산 213승에 155세이브로 MLB 역사상 첫 '200승-150세이브 클럽'을 창설했습니다. 물론 회원은 여전히 스몰츠 한 명뿐이지만요.

그렇게 짧지만 폭발적이던 마무리 외출의 놀라운 성과는 결과적으로 스몰츠의 명예의 전당 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선배 매덕스와 글래빈에 이어 명예의 전당에 선정된 스몰츠

42세까지 빅리그 마운드에 섰던 스몰츠는 골프도 끝장을 봅니다. ^^

아직 야구 현역 시절 스몰츠는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함께 라운딩을 한 적도 있었는데, 소렌스탐보다 좋은 스코어를 내서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우즈는 자신이 본 아마 골퍼 중에 최고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PGA 프로암 대회 출전은 물론이고 은퇴 후인 2011년 PGA 2부 투어인 네이션와이드 투어 대회에도 출전했습니다.

초청선수로 나서 1, 2라운드 각각 80대 타수를 기록하며 컷 탈락 후 인터뷰에서 그는 "프로 선수들의 정교함과 코스 난이도는 아마추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극심한 압박감 속에서 클럽을 제대로 휘두르기조차 힘들었다."며 프로의 높은 벽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러나 도전은 중단되지 않았고 Q스쿨 도전과 지역 예선 통과 및 초청 등을 통해 2018년 US 시니어 오픈(U.S. Senior Open)을 비롯해 여러 차례 PGA 투어와 시니어 정규 대회에 출전해 세계적인 시니어 프로들과 실력을 다퉜습니다.

또한 전직 스포츠 스타들과 LPGA 프로들이 함께 겨루는 '다이아몬드 리조트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의 프로암/아마추어 부문에서 2년 연속 우승(2019, 2020년)을 차지하는 등 골프 실력도 유감없이 과시했습니다.

스몰츠는 은퇴 후 아예 집에 다양한 티 박스와 그린을 갖춘 미니 골프 코스를 마당에 만들었을 정도니 끈질긴 애정과 승부욕은 이길 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

스몰츠의 생애 최고 스코어는 63타, 9언더파입니다.

존 스몰츠 - 일찍 출발하고 빠르게 치고 나가지 않아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이겨내고 이뤄내는 그런 인물입니다.

 

 

 

이 게시판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