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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감독의 대명사 코니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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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 맥(Connie Mack)'이라는 메이저리그(MLB) 감독이 계셨습니다.

컬럼에 사용치 않는 존칭을 절로 쓰게 되는 이분은 오래전에 활동하신, 오래전에 타계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맥 감독은 단순히 '위대한 감독'을 넘어 MLB의 '매니저(Manager)' 즉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직업의 원형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습니다.

ⓒ 늘 정장 차림이던 코니 맥 감독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50년'입니다.

맥감독은 1901년부터 1950년까지, 50년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감독이었습니다. 그전 피츠버그 감독 3년까지 합치면 MLB 감독만 53년을 했습니다.

선수 시절까지 합치면 1880년대부터 1950년까지 무려 65년 동안 MLB 야구판에서 호흡했습니다.

감독 통산 7,755경기를 이끌며 3,731승을 거둬 두 부문 모두 압도적 역대 1위입니다.

2위인 토니 라루사 감독이 5,377경기에 2,880승이니 맥감독의 기록은 불멸이라고 해도 과장이 전혀 아닙니다.

그뿐 아니라 AL 페넌트 레이스 우승 9번에 월드시리즈 우승 5번 등 뛰어난 지도력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맥감독의 기록에는 아이러니도 있습니다.

통산 패배가 3948번으로 역시 압도적으로 역대 1위이며, 승률은 .486에 불과해 명감독의 기록이라기엔 승률이 많이 초라합니다.

역대 MLB 감독 승률 기록을 찾아봐도, 1,000경기 이상 MLB 감독을 지낸 감독 중 대략 80위권으로 나옵니다.

어떻게 이런 엄청나고 또 기이한 기록들이 나올 수가 있었는지, 지금부터 코니 맥 감독의 야구 생애를 찾아가 봅니다.

코르넬리우스 알렉산더 맥길리커디(Cornelius Alexander McGillicuddy)라는 긴 본명이 있었지만, 야구를 아는 당대 모든 사람들이 'Mr. Mack'이라고 불렀던 그는 186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이스트 브룩필드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역 시절에는 타격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수비형 포수였던 맥은 현역 은퇴 후 독립리그인 웨스턴리그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하며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온화한 말투에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맥 감독은 뛰어난 지략과 탁월한 선수단 운영으로 근대 미국 야구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습니다.

큰 키에 깡마르고 항상 더비 모자를 즐겨 썼던 맥 감독은 말끔한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팀을 지휘하던 젠틀맨이었다. 감독도 유니폼을 입는 야구에서 이 역시 대단히 특이한 모습이었습니다.

1894년부터 3년간 NL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선수 겸 감독을 지낸 맥은 아메리칸리그(AL)의 창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1901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창단 때부터 감독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1950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50년간 애슬레틱스의 감독이었고, 커리어 후반기에는 구단주까지 동시에 맡아 신화를 일궈냈습니다.

특히 1929년부터 3년 연속 리그 우승에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르는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는 애슬레틱스는 정상에 근접하지 못했고 리그 꼴찌에 떨어진 것도 17번이나 됩니다.

그런데 맥 감독이 그토록 오래 팀의 이끌고 사실상 운영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1901년 아메리칸리그가 출범하면서 필라델피아에 새 팀을 만들 때부터 맥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당시 야구용품 사업가 벤 시브(Ben Shibe)를 설득해 구단 지분의 50%를 사게 하고, 맥 자신도 25%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지분을 더 사들여 결국 애슬레틱스의 대주주가 됩니다.

감독 겸 구단주가 된 셈인데, 그러면서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인 팀 운영을 하기도 합니다.

ⓒ 더그아웃에서 라인업을 들어보이는 맥 감독

포수 시절에도 기발하고 창의적이던 그는, 요즘에는 당연시되는 팀의 리빌딩 같은 아이디어를 거의 100년 전에 실행했습니다.

재정적으로 탄탄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경제적으로 팀이 흔들리면 연봉이 오르는 주전들을 모두 팔아치우고 신인들로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밟았습니다.

1910년대 초반부터 애슬레틱스는 4번의 AL 우승에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최전성기를 구가했지만, 1914년 월드시리즈 완패 후 맥 감독은 몸값 높은 주전들을 하나, 둘 팔기 시작했습니다. 팬들에게 온갖 비난을 받았던 건 당연했습니다.

그리고 7년여 하위권을 맴돌며 선수들을 키우더니 1920년대 중반 두 번째 왕조를 이룹니다.

1929년부터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루며 '선수 팔아넘기기 감독'이라는 오명도 씻어냈습니다. 1927년 맥 감독 팀에는 미래의 명예의 전당 멤버가 무려 7명이 있었으니, 맥감독의 선수를 보는 안목과 성장시키는 능력은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단 한 번도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늘 조용히 선수들과 소통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더욱 존경을 받았던 맥 감독.

ⓒ 필라델피아에 있던 코니맥 스타디움

1950년 자신이 사랑하던 팀이 52승 102패로 다시 AL 최하위로 떨어지자 맥 감독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87세.

그리고 1955년 애슬레틱스가 필라델피아를 떠나 캔자스시티로 옮겨간 다음 해 맥 감독은 93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애슬레틱스는 1968년에 다시 오클랜드로 이적, 오늘도 AL 서부조의 다크호스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MLB 역사상 가장 많이 승리했고, 가장 많이 패했던 감독.

'코니 맥이라는 이름은 야구(baseball)와 동의어다'라는 말까지 들었던 맥 감독은 당연히 명예의 전당 멤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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