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함이 바꾼 야구 인생 : 바우어스와 샌드버그
“3년 연속으로 기복이 심한 시즌을 보냈다. 잡아당기는 능력이 좋은 왼손 거포로서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었지만, 고질적인 헛스윙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매년 메이저리그 모든 선수의 경기력을 분석해 품평하고, 다음 시즌의 전망을 정리해 출간하는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 2026년 판에 등록된 한 타자의 설명입니다. 해당 설명의 주인공은 밀워키의 제이크 바우어스입니다.

2013년 샌디에이고에서 지명돼 마이너리그에서 5년을 보낸 바우어스는 2018년 탬파베이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 무대를 밟았습니다. 이후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중장거리 타자로 종종 기대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꾸준하지 못한 활약과 높은 삼진 비율 탓에 지난해까지 단 한 시즌도 규정 타석을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전형적인 ‘저니맨’이었습니다.
2024년에 프로 데뷔 후 일곱 번째 팀인 밀워키 소속으로 116경기를 뛰었는데 0.199의 초라한 타율만 남았습니다. 시즌 후 FA자격을 얻었지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건 당연했습니다. 바우어스는 해마다 팀을 옮겨 생존을 시도해야 하는 삶에 지쳤던 모양입니다. 고심 끝에 에이전트에게 연락해 은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아내와도 상의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교사였던 아내가 교직으로 복귀하고 자신은 가정에서 딸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은퇴를 알린 지 사흘 만에 아내가 둘째 임신 사실을 알린 겁니다. 아내의 정규직 복귀가 어려워지면서 바우어스에게 현실적인 고민이 닥쳤습니다. 직업적 고민을 할 여유를 떠나 당장 건강 보험 혜택이 절실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메이저리그 선수협회가 단체협약을 통해 보장하는 건강 보험은 전세계 사업장 중에서도 가장 보장 범위가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26인 로스터에 등록되는 것만으로도 직계 가족까지 최고 등급의 보험이 보장되고 보험료까지 제공받는 수준입니다. 물론 현역 선수의 경우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때론 철학적 고민이나 기술적인 접근보다 현실적인 상황이 더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늘어나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건강 보험의 필요성 앞에서 바우어스에게 은퇴 고민은 사치나 다름 없었습니다. 곧바로 은퇴 의사를 접은 바우어스는 밀워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렇게 맞은 2025시즌에도 굴곡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시즌 막판 자신의 강점을 어느 정도 발휘하면서 후반기 .305의 타율을 기록해 재계약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소화하며 밀워키의 주축 타자로 자리 잡아 구단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에 톡톡히 한몫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LA 다저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서 블레이크 스넬을 상대로 역전 투런 홈런을 터뜨리는 등 결정적인 활약을 펼쳐 시리즈 MVP에 선정됐습니다. 결국 주전 1루수로 나선 월드시리즈에서 밀워키 창단 첫 우승의 주역이 됐습니다. 말 그대로 드라마를 썼습니다.

메이저리그에는 긴 역사만큼이나 극적인 복귀 사례가 많습니다. 마이너리그 시절 부상으로 은퇴해 고교 야구팀 코치를 하다 학생들의 권유로 서른 다섯에 빅리그 무대를 밟은 짐 모리스부터, 입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했다가 강속구 마무리 투수로 돌아온 다니엘 바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부상을 겪고 은퇴한 뒤 전문 배팅볼 투수로 지내다 22년 만에 빅리그 마운드를 밟은 1945년 폴 슈라이버의 영화 같은 사연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드류 로빈슨의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긴 마이너리그 생활에 지친 로빈슨은 코로나19 사태로 시즌이 취소된 환경 속에서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습니다. 계획과 달리 한쪽 눈을 잃은 채 살아남은 그는 결국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고, 은퇴 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선수들의 심리를 관리하는 전문가로 거듭났습니다. 야구 때문에 삶을 포기했다가 야구로 새 인생을 찾은 가장 극적인 사례입니다.

스스로 현역 생활 중단을 결정했다가 복귀한 가장 유명한 선수는 시카고 컵스의 레전드, 라인 샌드버그일 겁니다. 1981년 필라델피아에서 데뷔한 샌드버그는 시카고 컵스로 이적한 1982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1984년 리그 MVP를 수상하는 등 일찌감치 팀의 간판으로 활약했고, 홈런왕에 일곱 차례 실버 슬러거를 차지할 만큼 빅리그 역사에서 독보적인 공격형 2루수로 입지를 쌓았습니다.
동시에 123경기 연속 무실책으로 상징되는 수비력을 겸비해 9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샌드버그는 10년 연속 올스타에 뽑히는 등 당대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습니다. 1989년 시즌을 앞두고 3년간 610만 달러의 연장 계약을 맺으면서 역사상 '최고액 2루수'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94년 시즌 초반, 예상 밖의 부진이 이어졌습니다. 6월 초까지 반등하지 못했고 시즌 타율은 0.238까지 추락했습니다. 당시 컵스 팬들은 매년 6월 23일을 특별하게 여겨 ‘샌드버그 게임’ 기념일로 부르곤 했습니다. 샌드버그 게임은 1984년 6월 23일, 샌드버그가 당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던 브루스 수터에게 홈런 2개를 때려 기적 같은 역전승의 발판을 놓은 경기의 별칭입니다. 경기 자체도 명승부였지만 이후 컵스가 상승세를 타면서 내셔널리그 동부 1위에 올라 39년 만의 포스트시즌을 이뤄내 상징성이 컸습니다.
바로 그 ‘샌드버그 게임’의 10주년을 열흘 앞둔 6월 13일. 샌드버그는 전격 은퇴를 선언합니다. 아내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샌드버그는 자신의 경기력이 스스로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제 몫을 다하지 못하면서 돈만 받는 선수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승부욕을 잃은 상태이고, 앞으로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은퇴한다고 밝혔습니다. 1,500만 달러에 달하는 남은 연봉은 그대로 포기했습니다.
전성기가 지났다고 해도 샌드버그의 은퇴 선언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이유가 있거나 큰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후 샌드버그의 행적을 근거로, 결혼 생활의 어려움이나 구단 고위층과의 갈등이 은퇴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일종의 ‘번아웃 증후군’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리그를 상징하는 스타가 자신과의 내적 갈등으로 은퇴한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은퇴 후 1994년 선수 노조의 파업 사태를 지켜보며 야구에 대한 생각을 곱씹은 샌드버그는 1995년 재혼을 통해 삶에 안정을 찾으면서 그라운드에 다시 서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후 컵스 구단 고위층과의 갈등을 정리한 샌드버그는 1996년 복귀해 25홈런을 기록하며 팬들의 갈증을 풀어줍니다. 그리고 1997시즌을 끝으로 진짜 은퇴를 결정합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큰 돈을 포기했다가 열정을 찾아 돌아와 역대 2루수 최다 홈런을 기록한 샌드버그의 모습에 당시 현지 언론은 그가 프로 선수의 품격과 자존심을 보여준 사례라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마지막 2년의 활약은 2005년 명예의 전당 입성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스윙이나 투구 메커니즘을 바꿔서 야구 인생에 반전을 찾는 경우는 많습니다. 하지만 때론 자의로, 때론 주변 환경의 변화로 마음가짐이 달라지면서 야구 인생에 극적인 반전이 찾아오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습니다. 감정이 포함된 신체 동작으로 구현되는 스포츠인 만큼, 모든 것이 숫자나 통계로 정리된 인과 관계로 설명될 수는 없습니다.

바우어스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다시 FA 자격을 얻었습니다. 자신의 잠재력과 팀의 소중함을 스스로 확인한 이상, 바우어스가 더 이상 방황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승 순간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기록된 공을 잡은 바우어스는 그 공을 머피 감독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행위 자체가 더 큰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