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심판 ‘메기’ 빌 클램과 손 신호
야구의 구성원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분들이 심판입니다.
초창기 야구에는 심판이 없었습니다.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놀이처럼 하다 보니 자체 해결이 가능했지요.
그런데 1845년 뉴욕에서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월스트리트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야구팀을 구성하고, 최초로 성문 규정집을 만들면서 야구는 체계화됐습니다. 그래서 그가 만든 뉴욕 니커보커스 팀을 근대 야구팀의 효시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규정이 체계화되고 미 전역으로 규정집도 퍼지면서 복잡한 규정을 놓고 논쟁이 빈번해지자 심판이 경기에 상주하게 됩니다.
초창기에는 연미복을 입고 3루 쪽이나 포수 뒤쪽의 책상에 앉아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프로야구 리그가 생기고 야구도 점점 발전하면서 심판의 존재감이나 역할도 갈수록 중요해집니다.
ⓒ 전설의 빌 클렘 심판. 장비 대부분이 스스로 디자인한 것입니다.
그런 미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첫손에 꼽는 ‘심판(umpire)’은 빌 클렘(Bill Klem)씨 입니다.
그는 '심판들의 원조 왕(The Old Arbitrator)'으로 불리며, 1905년부터 1941년까지 무려 37년 동안 내셔널리그에서 활동한 인물입니다.
MLB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 넘치고 전설적인 심판으로 꼽히는데, 무려 18번의 월드시리즈 심판을 맡았다는 불멸의 기록만으로도 그의 존재감을 익히 느낄 수 있습니다.
클렘은 또한 1933년 시카고 코미스키 파크(Comiskey Park)에서 열린 사상 최초의 MLB 올스타전에도 주심으로 경기를 총괄했습니다. 이후 1938년 올스타전에도 다시 한번 심판을 맡았습니다.
클렘 심판의 또 하나의 진기록은 통산 5번의 MLB 노히트노런(No-hitter) 경기의 주심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또 다른 전설적인 심판 실크 오러플린이 6번의 노히트 심판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노히트 경기를 5번이나 직접 구심으로 관장한 대기록입니다.
ⓒ 1915년 월드시리즈 심판으로 나선 클렘(사진 중앙)
그리고 클렘 심판의 가장 대단한, 가슴 짠한 업적은 바로 '손 신호(Hand Signal)'입니다.
심판들이 아웃이나 세이프를 외칠 때 팔을 시원하게 뻗는 제스처는 우리에겐 당연하지만, 실은 빌 클렘 이전까지는 오로지 말로만 판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클렘이 수신호를 도입한 이유를 들어볼까요?
“25센트짜리 싸구려 외야 관람석에 앉은 관중도 포수 뒤 귀빈석에 앉은 사람들과 동등하게 판정을 알 권리가 있다. 그 멀리서 내 목소리는 안 들려도 내 팔 동작은 볼 수 있지 않겠나!”라며 수신호의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수신호 도입의 근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 초창기 심판을 약간 과장되게 그린 그림
그는 또한 ‘현대 포수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경기 외적인 업적도 많이 남겼습니다.
클렘은 MLB 최초로 심판 유니폼 안에 착용하는 보호대 ‘이너 체스트 프로텍터(Inside Chest Protector)’를 직접 디자인해서 도입했습니다.
그전까지 심판들은 가슴 보호대(체스트 프로텍터)를 하지 않거나, 있어도 와이셔츠 겉에 덜렁거리며 착용했습니다. 심판의 움직임이 둔탁해지고, 투구와 타격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데 물리적인 방해를 받았는데, 이런 불편함을 해소했습니다.
아울러 현대식 심판 위치 선정 방법 또한 그가 고안한 것입니다.
장비 개발과 함께 클렘은 홈플레이트 뒤에서 심판이 서야 하는 가장 이상적인 위치인 '슬롯(The Slot)' 개념을 동료들과 후배 심판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육했습니다. 포수와 타자의 어깨너머, 투수의 공이 날아오는 궤적을 가장 방해받지 않고 정확히 볼 수 있는 최적의 각도를 연구하고 전파하여 오늘날 야구 심판 메커니즘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심판 장비를 개발하고, 앞서 언급한 수신호 개발도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전천후 심판의 원조이던 클렘은 정확한 판정과 함께 엄격한 규정 적용과 가차 없는 퇴장 조치로도 유명했습니다.
논쟁이 벌어지면 그가 가장 잘 쓰던 말은 ‘리오그란데 강을 넘지 마!’(Don't cross the Rio Grande!)였습니다.
선수나 감독들이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러 달려 나오면 클렘은 그라운드 흙바닥에 야구화로 굵직하게 선을 쫙 그었습니다. 그리고는 살벌한 눈빛으로 “이 선을 넘는 자는 곧바로 퇴장이다. 여기가 바로 리오그란데 강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이 선을 넘었다가 퇴장당한 감독, 선수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고집과 자부심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선언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야구 명언 중의 하나로 꼽히는 대사도 그가 한 말이었습니다.
예전 야구의 감독이나 선수들의 항의나 이의제기는 요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거세고 거칠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긴박하고 살벌한 상황에서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내가 판정내리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야 (It ain't nothing till I call it)!”라며 모든 반발을 일축해버리곤 했습니다.
한번은 은퇴 후 어떤 기자가 과거 경기에서 명백하게 오심한 순간이 찍힌 신문 사진을 들이밀며 분명히 오심 아니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클렘은 “기자 양반, 그 선수는 아웃이었소. 왜냐하면 내가 아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지. 아마 사진을 잘못 찍었겠지!”
옹고집 느낌도 살짝 있지만 노(老) 심판의 프라이드는 대단했습니다.
이런 엄격함과 자부심으로 클렘은 MLB 역사상 가장 많은 251회의 퇴장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퇴장 사건(?)’은 1914년에 발생했습니다.
뉴욕 자이언츠 선수, 코치들이 더그아웃과 그라운드에서 반복해서 심판 판정에 대해 집단으로 비난과 야유를 쏟아내자 클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이언츠 선수단 24명 전원을 퇴장시켜 버렸습니다.
‘경기를 지배하는 것은 선수가 아니라 규칙과 원칙’이라는 그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요즘 야구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죠? ^^
ⓒ 빌 클렘은 1953년 심판 최초로 MLB 명예의 전당에 헌당됐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꼭지(?) 돌게 만드는 단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그의 다른 별명인 ‘메기(Catfish)’였습니다.
그는 이 별명을 엄청나게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이나 감독들 사이에선 ‘빌 클렘 앞에서 ‘메기’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는 순간, 그 즉시 경기장 밖으로 쫓겨난다.‘는 게 불문율이었습니다. 그러나 판정에 불만이 있거나 클렘을 약 올리고 싶었던 일부 선수들이 은근히 이 단어를 흘리거나 도발하다가 곧바로 퇴장을 당한 일도 251번 중에 몇 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낭만적이었다고 해야할지 ^^
5375경기에 심판으로 나선 클렘의 기록은 은퇴 후 80년이 지난 2021년 은퇴했다가 복귀한 조 웨스트 심판에 의해 깨졌습니다.
그러나 3548경기 구심 기록은 현 4명 심판 체제에서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구심 2위는 행크 오데이의 2710경기였습니다.
1953년 사망한지 2년 후에 빌 클렘은 아메리칸리그의 또 다른 전설 토마스 코놀리와 함께 심판 부문 최초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