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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마술사' 스즈키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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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 예순 살이었던 타이 콥은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올드스타들의 자선경기에 초청받았다. 타석에 들어선 콥은 포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내가 힘이 없어 방망이를 놓칠지도 모르니, 뒤로 물러나 앉게나."

 

포수가 뒤로 물러선 것을 확인한 콥은 번트를 대고 총알같이 1루로 뛰어나갔다.

 

# 2003. 스물 아홉 살이었던 스즈키 이치로는 디트로이트 코메리카파크에서 열린 경기에서 1회초 시작과 함께 안타를 쳤고, 2루를 훔쳤다. 그리고 유격수 라몬 산티아고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안 뛸 거야."

 

이치로가 한 다음 행동은? 눈 깜짝할 사이에 3루를 훔친 것이었다.

 

메이저리그 2년차였던 산티아고는 이치로가 내뱉은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치로가 3루로 뛰기 전에 그를 바라보면서 한 말은, 일본어도 영어도 아닌, 스페인어 'No corro casi'였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뛴 19년 동안 수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낸 이치로이지만, 마지막 명장면은 도쿄에서 은퇴 경기(2019321)를 하고 6년이 지난, 2025727일에 등장했다.

 

그날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치로는 입회식 연설을 능수능란한 영어로 해냈다.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든 19분 간의 일인극은 결코 원고를 달달 외워서 한 연설이 아니었다.

 

이치로는 19년 동안 한 번도 공식석상의 인터뷰를 영어로 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영어를 꽤 잘했다. 그럼에도 일본어 인터뷰와 통역을 고집한 것은 자신의 말과 뉘앙스가 잘못 전달될 것을 걱정해서였다. 이치로 이후 모든 일본 선수들은,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이치로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

 

이치로는 스페인어도 무척 잘했다.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어느날 미겔 카브레라는 안타를 치고 1루에 온 이치로에게 장난으로 "못난이"라고 했다가 된통 당했다. 이치로가 능수능란한 스페인어로 욕을 잔뜩 했기 때문이었다.

 

이치로는 스페인어 공부를 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본어에는 욕이 별로 없기 때문에, 스페인어로 욕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게 참 좋거든요."

이치로에게 스페인어 욕을 넉넉하게 가르쳐 준 사람은 라울 이바네스였다.

 

이바네스는 1996년 시애틀에서 데뷔했지만, 이치로가 시애틀의 유니폼을 입던 겨울에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이적했다. 시애틀이 이바네스를 잡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이치로였다.

 

하지만 이바네스는 2004년 시애틀로 돌아왔고, 이치로와 절친이 됐다. 이바네스가 2009년 필라델피아로 떠나기 전까지 둘은 형제처럼 지냈다. 일부 선수들의 이치로에 대한 오해를 풀어준 것도 이바네스였다.

 

20122월 마흔 살의 이바네스는 양키스에 입단했다. 7월에는 서른여덟 살의 이치로가 트레이드로 왔고, 양키스에서 둘은 극적으로 다시 뭉쳤다.

 

그 해 이치로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가을 야구를 했다. 시애틀은 이치로가 입단한 2001년에 메이저리그 최다승인 116승을 달성했지만, ALCS에서 양키스에게 패해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시애틀이 다시 가을 야구를 한 건,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2022년이었다.

 

2012, 이치로와 이바네스의 양키스는 디비전시리즈에서 볼티모어를 꺾고 ALCS에 진출했다. 구로다 히로키가 8.1이닝 2실점의 역투에도 패전 위기에 몰린 2차전에서, 이바네스는 9회말 동점 홈런에 이어 12회말 끝내기 홈런을 날렸다.

 

최종 5차전에서 CC 사바시아는 9이닝 9K 1실점의 완투승을 거뒀다. 양키스가 뽑은 석 점 중 두 점은 이바네스의 적시타와 이치로의 적시 2루타였다. 둘은 함께 월드시리즈를 꿈꿨지만, ALCS에서 디트로이트에게 패함으로써 성공하지 못했다.

 

이치로는 스페인어를 배운 진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라틴 아메리카의 친구들에게도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낯선 땅에서 뛰고 있는, 같은 외국인이기 때문이죠.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그들도 겪었을 것이기 때문에, 힘들고 즐거운 것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스페인어로 말을 걸면, 그들은 정말로 고마워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깊은 유대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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