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안타보다 빛난 노란 햇님
우타자 역대 2위에 해당되는 668개의 2루타. (1위는 686개인 앨버트 푸홀스)
3000안타, 600 2루타, 250홈런, 400도루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 (홈런수는 291개였다)
리키 헨더슨(81개)과 조지 스프링어(65개) 다음으로 많이 때려낸 53개의 리드오프 홈런. (현재 무키 베츠가 비지오와 함께 역대 공동 3위에 올라 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딱딱한 공을 가장 많이 맞은 선수. (통산 287개의 Hit by pitch로 285개인 비지오보다 두 번을 더 맞은 휴이 제닝스는 공이 딱딱하지 않았던 1800년대에 뛰었다)
포수와 2루수로 올스타전에 참가한 유일한 선수. (비지오는 포수로 시작해 2루수로 전성기를 보낸 후 중견수로 전환했다가 다시 2루수로 은퇴했다)
1912년 트리스 스피커와 함께 50개의 2루타와 50개의 도루를 한 시즌에 달성한 2명뿐인 선수.
전 경기(162)를 소화하면서 병살타 없는 시즌을 만든 유일한 선수(744타석 0병살타).
20년을 휴스턴에서만 뛰고 은퇴한 휴스턴의 영구결번선수.
3000번째 안타를 치고 곧바로 주루사를 당한 유일한 선수.
4개의 골드글러브와 5개의 실버슬러거를 따낸 명예의 전당 2루수.
셀 수 없을 만큼의 업적 외에도 크레익 비지오를 상징하는 또 하나는, 그가 모자에 자주 달았던 노란색 햇님 배지였다. 비지오는 이 배지를 달고 경기에도 출전하려고 했지만 사무국이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비지오가 달았던 배지는 선샤인 키즈(Sunshine Kids) 재단의 로고였다. 비지오는 2003년 이후 재단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매년 사비로 수 백 명의 어린이 암 환자들을 구장에 초대해 필드를 밟을 수 있도록 했고, 400만 달러가 넘는 기부금을 모았다. 400만 달러는 그가 선수 시절에 받은 1년치 평균 연봉이었다.
비지오가 어린이 암 환자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진 건, 자신의 경험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비지오는 옆집 꼬마인 크리스와 친해졌다. 하지만 소아 백혈병을 앓고 있었던 크리스는 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크리스가 죽고 나서 비지오는 크리스의 동생인 찰리에게 친 형이 되어줬고,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룬 후 소아암 구조 활동에 앞장서게 됐다.

비지오를 상징하는 또 다른 하나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뛰는 투지와 열정이었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 비지오는 여름 리그에 참가했다. 그리고 유격수인 애드리아노 마르티네스와 친해졌다.
어느 날 경기 도중 폭풍우가 몰려왔다. 그리고 갑자기 번개가 그라운드에 내리쳤다. 선수들은 놀라서 쓰러졌다가 일어났다. 하지만 비지오의 반대편에 있던 마르티네스는 일어나지 못했다. 마르티네스는 유일하게 금속 스파이크를 신고 있었고, 번개의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
친구이자 동료를 잃은 고통은 비지오로 하여금 오늘에 충실하도록 했다. 비지오는 그 사건에 대해 "소년으로 들어갔다가 남자가 되어 나왔다"고 했다.
비지오는 285번이나 공에 맞았지만, 투수에게 달려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은 적도 없었다. 저돌적인 플레이를 했음에도 2000년 수비 도중 프레스턴 윌슨의 태클에 무릎을 다치기 전까지, 1800경기를 넘게 치르는 동안 한 번도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2007년 9월30일. 41세290일의 나이로 마지막 경기를 치른 후, 비지오는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을 명예의 전당에 기부했다. 팔꿈치 보호대였다.
"나는 매일 매 순간 경기를 열정적으로, 그리고 바르게 치르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았습니다. 빅 리그에 올라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라운드에 나갈 때마다 마치 내 인생의 마지막 경기인 것처럼 모든 경기에 임하고자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