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에 착륙한 외계인
1997년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17승8패 1.90을 기록하고 305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1점대 투수가 300K를 달성한 건 1972년 스티브 칼튼 이후 처음. 우완으로는 1912년 월터 존슨 이후 처음이었다. 마르티네스 이후 9명이 300K를 달성했지만, 1점대 ERA를 기록한 선수는 없다.
하지만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마르티네스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놨다. 1년 후 FA가 되는 마르티네스를 잡을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이영 투수의 등장에 스토브리그는 활활 타올랐다. 몬트리올에게 연락한 팀은 마르네스를 버렸던 다저스를 포함해, 양키스 보스턴 토론토 볼티모어의 AL 동부 모든 팀과 메츠 클리블랜드 샌디에고 등이었다. 최종 세 팀은 양키스 메츠 보스턴이었고, 보스턴이 승리했다.
보스턴은 한 달 후 마르티네스와 6년 75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그 해 매덕스가 애틀랜타에 남으면서 맺은 5년 5750만 달러를 뛰어넘는 투수 역대 최고 대우였다. 로저 클레멘스를 내보내 집중포화를 맞았던 댄 두켓은 마르티네스 영입으로 다시 최고의 단장이 됐다.
외계인의 진짜 침공은 그때부터였다.
1998년 마르티네스는 19승7패 2.89를 기록하고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인 클레멘스에 이어 사이영 2위에 올랐다. 훗날 클레멘스는 약물을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1999년 형 라몬 마르티네스가 보스턴에 입단하면서 심적인 안정이 더해진 마르티네스는 23승4패 2.07을 기록하고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213.1이닝을 던지는 동안 맞은 홈런은 9개의 솔로포로, 타자들은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연속 안타를 치는 게 어려웠기 때문에 홈런만 노리고 들어왔다.
최고의 시즌은 2000년이었다.
마르티네스는 1.74로 ERA 1위에 올랐는데, 아메리칸리그 2위인 클레멘스의 기록은 3.70, 아메리칸리그 평균 기록은 4.92였다. 2000년 메이저리그는 ERA 기록이 1930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았을 정도로 타고투저가 절정에 오른 시기였다.
마르티네스는 시대와 구장을 반영하는 조정 ERA에서 충격적인 291을 기록했다. 이는 1914년 더치 레오나드가 20세기 최고기록인 0.96을 기록하면서 세운 279를 넘어서는 역대 최고기록이 됐다.
마르티네스는 WHIP 0.737을 기록해 역시 1913년 월터 존슨의 0.780을 뛰어넘었다. 공에 반발력이 없었던 데드볼 시대 투수들까지 불러와 무릎을 꿀리게 했다. 1920년 이후 162이닝 이상 투수 중 마르티네스 다음으로 좋은 기록은 2019년 저스틴 벌랜더가 기록한 0.803이다.
마르티네스는 피안타율 .167를 기록해 루이스 티안트가 .168로 1968년에 세운 라이브볼 시대 최고기록마저도 경신했다. 1968년 아메리칸리그의 평균 타율이 .230으로 티안트와 6푼2리 차이였던 반면, 2000년 아메리칸리그의 평균 타율은 .276로 마르티네스와 1할9리 차이였다.
마르티네스는 삼진수(284)가 안타(128)를 넘어섰는데, 이 역시 선발투수로는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다.
이렇게 위력적이었던 마르티네스는 어떻게 6패를 당했을까. 마르티네스가 당한 패배의 내용은 9이닝 1실점(완투) 8이닝 1실점, 8이닝 2실점(완투) 8이닝 3실점, 8이닝 3실점, 7이닝 3실점으로 6경기에서 보스턴이 올린 득점은 7점이 전부였다. 마르티네스는 승리한 경기에서 ERA 0.85, 패한 경기에서 ERA 2.44를 기록했다. ERA 2.44는 케빈 브라운의 내셔널리그 1위 기록(2.58)보다도 좋았다.
인간의 신체를 벗어나는 구위를 가지고 있었던 탓에 1999년과 2000년에도 아슬아슬했던 마르티네스는 2001년부터 부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2003년까지는, 부상 말고 말고는 그를 막아세울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마르티네스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3644타자를 상대하면서 딱 두 명에게만 고의사구를 내줬는데, 영광의 주인공은 블라디미르 게레로와 치퍼 존스였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26년. 외계인의 후계자가 나타난 걸지도 모르겠다.
데뷔 시즌에 ERA 1.96, 2년차에 ERA 1.97을 기록했던 폴 스킨스는 두 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를 통해 67.50으로 시작한 ERA를 1.98로 떨어뜨렸다. 데뷔 후 통산 첫 선발 64경기에서 1점대 ERA를 기록한 투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스킨스가 유일하다.
아직 시즌의 4분의1을 소화했을 뿐이지만, 스킨스는 2000년 마르티네스의 기록 두 가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WHIP과 피안타율이다.
WHIP 0.640은 마르티네스의 기록인 0.737보다 0.1 가까이가 좋고, 피안타율 .145 또한 마르티네스의 기록인 .167보다 2푼2리가 낮다. 마르티네스는 타고투저의 시대를 살았고, 스킨스는 투고타저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절댓값으로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211을 기록한 데뷔 시즌은 규정 이닝 미달이었지만, 2년차인 지난해 222를 기록했고, 올해 211을 기록 중인 스킨스는 이대로라면 페드로 마르티네스(5회) 월터 존슨(4회) 로저 클레멘스(3회) 크리스티 매튜슨(2회) 그렉 매덕스(2회) 잭 그레인키(2회)에 이어 조정 ERA 200 시즌(규정 이닝)을 두 번 달성하는 6번째 선수가 될 수 있다.
스킨스는 마르티네스의 5회 기록을 넘을 수 있을까. 마르티네스의 전성기를 직접 보지 못해 아쉬운 분이 있다면 스킨스로 위안을 삼아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마르티네스의 위력은, 다시는, 누구도, 재연하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