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개리 카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포수는 20명. 전미기자협회(BBWAA) 투표를 뚫은 포수는 마이크 피아자(2016) 이반 로드리게스(2017) 조 마우어(2024)를 포함해 11명밖에 되지 않는다.
개리 카터는 미키 코크레인(1947) 빌 디키(1954) 가비 하트넷(1955) 로이 캄파넬라(1969) 요기 베라(1972) 자니 벤치(1989) 칼튼 피스크(2000)에 이어 8번째(2003)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포수다. 포수로서 기록한 298개의 홈런은 역대 6위이며, 골드글러브도 세 번을 차지한 공수겸장의 포수였다.
카터보다 홈런과 골드글러브가 더 많은 포수는 자니 벤치(327홈런 10골드글러브)와 이반 로드리게스(304홈런 13골드글러브)뿐이다. 살바도르 페레스(캔자스시티)는 5번의 골드글러브와 함께 308홈런을 기록 중이지만 포수로서 기록한 홈런은 239개(2026년 5월4일 현재)다. 마이크 피아자는 포수로서 396개의 홈런을 쳤지만 골드글러브는 하나도 없다.
카터는 '어메이징 메츠'로 불리는 1986년 메츠의 주전 포수였다. 24홈런 105타점을 기록하고 MVP 3위에 오른 그 해, 시리즈의 분수령이 된 NLCS 5차전에서 12회말 끝내기 안타를 날렸고, 역사상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난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빌 버크너가 무키 윌슨의 땅볼을 빠뜨리기 전에, 2사 후 안타를 치고 나가 실낱 같은 희망을 살린 선수도 카터였다.
카터가 6번째 도전 만에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을 때, 명예의 전당에 걸릴 동판에 새겨질 모자를 두고 큰 논란이 있었다. 카터는 19시즌 중 12시즌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보냈고, 통산 홈런의 3분의 2를 엑스포스에서 때려냈다.
하지만 카터는 메츠 선수로 입성하고 싶었다. 메츠에서 뛴 건 5시즌에 불과했지만, 유일한 우승을 차지한 팀이 메츠이기 때문이었다. 뉴욕의 언론들도 카터를 지지했다.
은퇴 시즌에 엑스포스의 모자를 쓰고 싶다고 했으며, 은퇴 후에도 엑스포스와 메츠의 로고가 둘 다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카터가 생각을 바꾼 데는 당시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 엑스포스가 몬트리올에서의 흥행에 실패하고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미네소타 트윈스와 함께 엑스포스를 해체할 계획을 세웠다. 리그 축소가 실행되지 못한 건 트윈스가 메트로돔과 맺은 잔여 계약 때문이었다.
구단 운영을 포기한 제프리 로리아 구단주는 엑스포스를 1억2000만 달러에 팔고 플로리다 말린스로 자리를 옮겼는데, 로리아에게서 엑스포스를 사간 건 사무국이었다. 카터가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1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카터 입장에서는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팀보다는 메츠의 모자를 쓰는 게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정권을 가지고 있던 사무국은 카터에게 엑스포스 모자를 쓰게 했다. 그리고 2005년 엑스포스를 워싱턴DC로 옮겨 워싱턴 내셔널스가 되도록 했다. 카터는 안드레 도슨, 팀 레인스와 함께 엑스포스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세 명 중 한 명이 됐다(한편 내셔널스는 엑스포스의 역사를 이어받고도 도슨, 레인스, 카터에게 영구결번을 주지 않음으로써, 카터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카터의 또 다른 상징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환한 미소였다. 칼럼니스트 톰 버두치는 카터가 마치 개막일을 맞이한 리틀리그 선수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모든 경기를 임했고 동료들에게 큰 모범이 됐다고 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미디어가 붙여준 별명은 '더 키드'였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를 '카메라 카터'라고 불렀다. 안 좋은 표정을 하고 있다가도 카메라가 오면 얼굴이 확 바뀐다고 해서 붙인 별명이었다. 엑스포스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던 도슨은 카터에 대해 "영광에 굶주린 사람"이라며 비판했다.
카터는 모범적인 인터뷰와 바른 단어 사용으로도 유명했다. 팀내에서 '미스터 클린'이라 불릴 정도로 욕설을 싫어했던 카터는, 1988년 뉴스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제발 선수들이 욕설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F로 시작되는 욕(F-word)을 F-bomb이라고 표현했다. 놀랍게도 F-bomb은 이 세상에서 카터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고, 2012년 웹스터 사전에는 F-bomb이 단어로 등재되면서 처음 쓴 사람으로 이름으로 카터가 올라갔다.
하지만 카터의 너무 모범적인 이미지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동료들조차 경기에 대한 그의 열정과 노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992년 카터는 엑스포스로 돌아와 38세 시즌이자 마지막 시즌을 보냈고, 마지막 타석에서 결승 2루타를 날렸다. 카터의 타구는 전 동료이자 미묘한 관계였던 시카고 컵스의 우익수 안드레 도슨의 머리 위로 날라갔다.
태어나자마자 백혈병으로 어머니를 잃은 카터는 은퇴 후 백혈병과 문맹 퇴치를 위한 자선 사업에 앞장섰다. 하지만 극심한 두통과 건망증을 경험한 후, 뇌에서 4개의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 1년 후인 2012년 2월16일, 카터는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