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맨틀이 쏘아올린 18개의 홈런
매니 라미레스는 29개의 포스트시즌 홈런으로 역대 1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은 경신될 가능성이 높다. 포스트시즌 경기수가 점점 더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미레스 다음의 세 명인 호세 알투베(27개) 조지 스프링어(23개) 카일 슈와버(23개)는 모두 현역 선수들이다. 오타니는 단 두 번의 포스트시즌 출전에서 11개의 홈런을 날렸다.
반면 마리아노 리베라가 기록한 42세이브와 함께 절대로 깨질 수 없는 포스트시즌 기록이 있다. 미키 맨틀이 월드시리즈에서 기록한 18홈런이다. 지금과 달리 맨틀의 시대에는 정규시즌을 마치면 곧바로 월드시리즈를 시작했다.
맨틀은 1951년부터 1968년까지 18년을 뛰면서 월드시리즈에 12번을 나갔다. 맨틀의 시대는 양키스 최고의 전성기였다. 1949년부터 1964년까지 16년 동안은 양키스가 없는 월드시리즈가 두 번일 정도였다.
다저스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 동안 월드시리즈에 5번을 진출했다. 하지만 5번을 모두 뛴 선수는 아무도 없다(5번의 월드시리즈에 모두 있었던 클레이튼 커쇼는 2025년 월드시리즈는 등판하지 못했다). 월드시리즈에서 뛴 시즌을 세어보라고 했을 때 열 손가락을 모두 접을 수 있는 선수는 앞으로도 나오기 어렵다.
맨틀이 월드시리즈에서 18개의 홈런을 친 건 단순히 많이 출전해서가 아니었다. 맨틀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결정적인 홈런을 날렸다.
양키스가 브루클린 다저스를 꺾고 우승한 1952년 월드시리즈에서, 최종 7차전 결승 홈런의 주인공은 맨틀이었다. 맨틀은 6회초 조 블랙을 상대로 2-2 균형을 허무는 솔로홈런을 날렸고, 7회초에는 적시타를 때려내 4-2 승리를 이끌었다.
이듬해 양키스는 다시 다저스를 꺾고 월드시리즈를 우승했다. 맨틀은 2차전 8회말에 프리처 로를 상대로 2-2 균형을 허무는 결승 투런을 때려냈다(4-2 승리). 5차전에서는 3회말에 만루홈런을 터뜨렸는데. 맨틀의 홈런에 힘입어 6-1을 만든 양키스는 다저스의 맹추격을 따돌리고 11-7로 승리했다. 양키스가 따낸 4승 중 2승이 맨틀의 방망이에서 나왔다.
1952년과 1953년 모두 맨틀과 양키스에게 패한 다저스는 1955년 드디어 양키스를 꺾고 우승했다. 재키 로빈슨의 홈스틸과 요기 베라의 분노가 겹쳐졌던 그 해, 다저스는 무려 6번째 맞대결 만에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를 꺾었다.
다저스의 우승은 맨틀이 부상을 당한 덕분이기도 했다. 맨틀은 9월 말 보스턴 레드삭스와 경기에서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고 1,2차전을 결장했다. 3차전에 겨우 나서 자니 파드리스를 상대로 솔로홈런을 터뜨렸지만, 상태가 다시 나빠졌고 4차전에서 부진했다. 5차전과 6차전을 결장한 맨틀은 7차전에 대타로 등장했지만 승기가 다저스로 기운 후였다.
1956년 맨틀과 양키스는 1955년의 설욕에 성공한다. 1차전과 4차전 홈런으로 타격감을 조율한 맨틀은 5차전에서 살 매글리를 상대로 선제 솔로홈런을 날렸다. 행크 바우어의 적시타로 한 점을 더 얻은 양키스는 2-0으로 승리했는데, 돈 라슨이 퍼펙트게임을 한 경기였다. 양키스는 7차전 끝에 다저스를 꺾음으로써 월드시리즈 맞대결 성적이 6승1패가 됐다. 양키스의 그늘이 지긋지긋했던 다저스는 1958년 LA로 떠났다.
1963년 두 팀은 월드시리즈에서 다시 만났고, 다저스가 양키스를 4연승으로 잠재웠다. 양키스가 4전전패를 당한 건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초였다(양키스는 1922년 뉴욕 자이언츠를 상대로 0승4패에 그쳤지만 무승부가 선언된 한 경기가 있었다). 양키스가 꼼짝도 못한 건 다저스에 샌디 코팩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팩스는 1차전에서 15K 2실점 완투승, 4차전에서 8K 1실점 완투승으로 양키스 타자들을 얼려버렸다. 시리즈가 끝난 후 요기 베라는 "코팩스가 어떻게 25승을 했는지는 잘 알겠다. 그런데 5패는 왜 당한 거냐?"고 반문했다. 코팩스가 4차전에서 완봉에 실패한 건, 맨틀에게 홈런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1964년은 맨틀의 마지막 월드시리즈였다. 양키스와 맨틀은 코팩스급의 가을 에이스를 또 상대해야 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밥 깁슨이었다. 3차전에서 너클볼투수 바니 슐츠를 상대로 1-1 균형을 허무는 9회말 끝내기 홈런(통산 16호)을 날려 베이브 루스의 월드시리즈 15홈런을 넘어선 맨틀은 6차전에서 커트 시몬스, 7차전에서 깁슨을 상대로 홈런을 때려냈다. 하지만 양키스는 7차전을 패했다. 맨틀이 퇴장하고 나서 양키스는, 또 다른 영웅이 나타나기 전까지 우승하지 못했다. 1977년의 레지 잭슨이었다.
월드시리즈 MVP 두 번을 차지한 두 명뿐인 투수들인 코팩스와 깁슨으로부터 모두 홈런을 때려낸 맨틀은, 18개의 월드시리즈 홈런으로 15개인 루스를 제치고 역대 1위에 올라 있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스프링어와 프레디 프리먼이 7개로 가장 많지만, 맨틀에 도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맨틀의 월드시리즈 홈런이 더 대단한 건 고통을 참고 견딘 결과였기 때문이다. 맨틀은 데뷔 시즌인 1951년에 수비 도중 배수구에 발이 빠져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당시는 인대를 재건할 수 있는 수술이 없었고, 맨틀은 은퇴할 때까지 모든 경기에서 한 시간 이상 압박 붕대를 감고 출전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리 하나로 야구를 했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긴 정규시즌을 마치고 월드시리즈가 되면, 맨틀의 다리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하지만 맨틀은 다리 하나를 가지고 18개의 홈런을 월드시리즈 하늘에 쏘아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