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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차에서, 대서양 바다 위에서 시작된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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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는 메이저리그 진출 직후 사소한 해프닝을 겪었습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이정후 관련 기사를 작성하면서 일본 출신 선수로 소개한 겁니다.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이 일본 주니치에서 활약하던 1998년 나고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국내 야구팬은 모두 아는 상식입니다. 하지만 포브스는 이정후가 태어난 물리적 장소만 보고 실수를 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야구 콘솔 게임의 초기 데이터에서 비슷한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정후 측이 공식적으로 대응해 현재는 대부분의 매체에서 이정후가 서울 출신인 것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메이저리그 통계 전문 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는 여전히 이정후를 일본 나고야 태생 선수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매체와 달리 베이스볼 레퍼런스라서 납득이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야구에서 발생한 거의 모든 숫자를 다루고 있는 베이스볼 레퍼런스는 출생지 정보 역시 기록의 한 부분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기록 오류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곧이곧대로 기재한다고 보면 됩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출생지 정보를 더 들여다보면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통산 287승에 완봉승을 60경기나 해낸 버트 블라일레븐은 네덜란드 출생 선수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습니다. 지금은 WBC 대회가 자리를 잡으면서 네덜란드령 퀴라소 출신 선수의 활약을 보는 게 익숙하지만, 블라일레븐의 현역 시절만 해도 네덜란드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특이 사항에 속했기에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한 것은 역사적인 일로 여겨졌습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의 사례는 잘 알려져 있고, 브루스 보치 전 샌프란시스코 감독도 프랑스 뷔사크-포레 지역 태생이라는 점이 독특합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출생지 항목으로 대한민국을 검색하면 2000년대 초반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활약했던 왼손 투수 토미 펠프스도 나옵니다. 그래서 한때 네티즌 사이에서는 명예 한국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모두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던 인물입니다.

 

 

단순히 보기 드문 출생지만 따지면 사례는 많습니다. 재작년까지 뉴욕 메츠의 구원 투수로 활약한 션 라이드-폴리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2명뿐인 괌 태생 선수입니다. 2006년 클리블랜드에서 데뷔한 불펜 투수 톰 마스티니는 빅리그 사상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유일한 선수입니다.

 

앨라배마주의 모빌이라는 도시는 명예의 전당과 독특한 인연을 자랑합니다. 모빌은 인구 20만이 채 되지 않는 항구 도시지만 야구 역사에서는 웬만한 대도시 부럽지 않은 존재감을 지녔습니다. 행크 에런과 윌리 맥코비, 오지 스미스와 빌리 윌리엄스는 물론 니그로리그의 대부, 사첼 페이지까지 모두 다섯 명의 명예의 전당 회원을 배출한 도시입니다뉴욕과 시카고 이외에 모빌보다 더 많은 명예의 전당 회원이 나온 도시는 없습니다.

 

조금 더 시선을 확장하면 출생지와 관련해 독특한 사연을 가진 선수가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정교한 타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드 커루입니다. 70년대 미네소타를 대표하는 선수인 커루는 무려 일곱 차례나 타격왕에 올라 말 그대로 타격의 최정점에 도달했던 선수로 꼽힙니다. 특히 1977년에는 시즌 중반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끝에 0.388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12번의 타격왕을 차지한 타이 콥이 20세기 초반에 선수 생활을 보낸 만큼, 현대 야구에서 최다 타격왕을 말할 때 로드 커루와 토니 그윈(8)을 꼽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로드 커루의 출생과 관련한 사연은 그의 타격 능력만큼이나 독보적입니다. 커루는 파나마의 가툰이라는 지역에서 출생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가툰은 파나마 운하의 대서양 쪽에 자리한 마을입니다. 그래서 파나마 운하의 심장부로도 불렸습니다. 커루의 어머니는 파나마 운하 인근 지역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진통을 느꼈고, 기차 승객이던 의사가 출산을 도왔습니다. 그 의사는 파나마 지역에서 활동하던 유대인 의학박사, 로드니 클라인이었습니다. 커루의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로드니 클라인 커루로 짓게 된 배경입니다. 커루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유일하게 기차 이동 중 태어난 선수인 동시에, 의사의 이름을 얻어 태어난 유일한 선수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커루는 16세에 뉴욕으로 이주해 동네 야구장에서 스카우트의 눈에 들어 5천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직업 선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1967년 데뷔하자마자 150안타를 치며 신인왕에 올랐습니다. 커루는 천부적인 타격 실력을 뽐내며 15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해 통산 타율 0.328로 커리어를 마쳤고, 3,053안타로 당시 16번째 3천 안타 클럽 가입자이기도 했습니다.

 

스핏볼로 유명한 투수 게일로드 페리는 내가 공에 뭘 묻혀서 던지든 다 쳐내는 유일한 타자였다고 커루를 설명했습니다. 날아오는 야구공에서 이물질이 묻지 않은 부분을 알아보고 치는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동시대에 활약한 앨런 배니스터는 커루의 타격을 지켜보다가 “3타수 4안타를 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켄 홀츠먼 투수가 커루의 배트를 마법 지팡이로 표현한 것은 진부할 지경입니다.

 

선수로서 커루와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출생 정보의 독특함으로는 커루를 넘어서는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1914년 페더럴리그의 버팔로에서 한 시즌을 던진 투수 에드 포레이입니다. 당시 페더럴리그는 메이저리그와 일종의 경쟁 관계를 유지했던 리그입니다. 포레이는 대단한 기록을 남기지도 못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을 선사한 선수도 아닙니다. 3경기에서 10.1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4.35를 남긴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베이스볼 레퍼런스를 검색하면 상상도 못한 정보 하나가 등장합니다. 포레이의 출생지 정보에는 밑도 끝도 없이 '대서양'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포레이의 부모님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도중 태어난 겁니다. 1888년생 선수인 탓에 검증할 만한 정보가 많지 않아 포레이의 출생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사실인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권 신청서와 징병 기록 등 일부 공문서에 포레이의 출생지가 뉴욕으로 적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 탓에 배에서 출생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명확한 지명을 써야 하는 문서에만 편의상 뉴욕으로 기록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포레이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군인들을 위한 피아니스트로 복무한 일화가 전해지고, 전쟁 후 공연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소소한 출생지 정보조차 한명 한명 찾아갈 수록 빅리그의 무한함만 새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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