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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 '퍼펙트 라슨'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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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주정뱅이 낙오자였는데, 오늘 밤엔 모두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하네요. ^^"
 
역사적인 이 경기를 던진 후 다음날 인터뷰에서 투수 단 라슨(Don James Larsen)이 농담조로 한 말입니다.
 
1956년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는 전년도 승부의 재판이었습니다.
NL에서는 뉴컴이 27승을 거두고 듀크 스나이더가 43홈런을 치며 활약한 브루클린 다저스가 치열한 접전 끝에 밀워키 브레이브스를 한 게임차로 꺾고 NL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브레이브스도 행크 애런이 3할2푼8리에 200안타를 기록하며 활약했지만 시즌 마지막 날 피츠버그를 8-6으로 꺾은 다저스가 93승을 거둬 92승에 그친 브레이브스를 가까스로 제쳤습니다.
AL은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미키 맨틀을 앞세운 양키스가 97승57패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9게임차로 넉넉하게 제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 1956년 WS 5차전 퍼펙트게임을 이룬 직후 포수 요기 베라를 안고 있는 라슨 투수와 달려가는 양키즈 동료들
 
그렇게 1년 만에 다시 맞붙은 다저스와 양키스의 대결은 라이벌답게 치열했습니다.
다저스가 먼저 홈에서 2승을 거뒀지만, 양키스가 홈구장으로 옮겨 2연승을 거두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1956년 10월 8일 양키스타디움에서 벌어진 5차전, 단 라슨이라는 거의 무명 투수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대기록을 세웁니다. 
선발과 구원을 오가는 그저 그런 투수였던 라슨은 5차전 선발로 나서 27타자를 연속으로 잡아내며 WS 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것입니다.
150년 MLB 역사상 퍼펙트게임은 단 24번, 그러나 WS에서 나온 퍼펙트게임은 이때가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습니다.
 
라슨은 1953년 7승 12패 2세이브의 눈에 띄지 않는 성적으로 세인트루이스에서 데뷔한 후 볼티모어를 거쳐 1955년부터 양키스에서 뛰었습니다. 
통산 MLB 14시즌 동안 81승 91패, 평균자책점 3.78로 승보다 패가 많았습니다. 1954년 볼티모어에서 뛸 때는 21패(3승)를 기록하며 리그 최다패를 기록하기도.
 
양키스 2년째이던 1956년 정규 시즌 성적은 생애 최고 11승 5패 1세이브, ERA 3.26으로 준수했습니다. 
20게임은 선발, 18게임은 구원 투수로 나섰을 정도로 다양한 능력을 과시했지만, 위력적인 선발 투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라슨이 WS 5차전에서 인생투를 던진 것입니다. 
 
라슨 퍼펙트에 패해 2승 3패로 뒤진 다저스도 만만치 않아 6차전 팽팽한 투수전 끝에 10회 연장전에 재키 로빈슨이 결승타를 때리며 1-0으로 승리, 결국 승부를 7차전까지 몰고 갔습니다. 그러나 양키스는 7차전에서 9-0의 완승을 거두며 다시 한번 정상에 올라 라슨의 퍼펙트게임을 자축했습니다. 
5차전 2-0 퍼펙트게임 라슨은 WS MVP에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1956시즌에 라슨이 좋은 피칭을 한 비밀이 있었습니다.
시즌 중반부터 흔들리는 제구력을 잡으려고 와인드업 없이 던지는 '노 와인드업(No-windup)' 투구동작으로 피칭을 했는데,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큰 효과를 봤습니다. 생애 첫 10승 시즌을 기록하더니, 이것이 퍼펙트게임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노모 히데오가 덴버 쿠어스필드에서 노히터를 한 날도 궂은 날씨로 마운드가 질척대자 특유의 와인드업 대신 셋포지션으로 경기 내내 피칭을 했던 기억이 오버랩됩니다.
 
그런데 라슨은 늘 유쾌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기는, 한마디로 '노는 걸 정말 좋아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고교 시절까지 라슨은 지역에서 알아주는 농구 선수였습니다. 여러 대학에서 농구로 전액 장학금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는 '공부는 하기 싫다.'며 모든 장학금 제안을 거부하고, 1947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계약을 합니다.
야구 재능도 뛰어나서 한국 전쟁이 터지며 징집돼 1951년부터 2년간 군 복무를 했음에도, 1953년 바로 빅리그에 데뷔해 7승 12패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라슨은 소위 '저니맨'이라는 말이 어울렸습니다.
14년간 7팀이나 팀을 옮겼고, 선발과 구원 마다하지 않고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팀으로 가든 그는 경기를 마치면 인근 주점으로 출근해 친구들, 팬들과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당시만 해도 꽤 엄격했던 팀 통금시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야구에만 전념했다면 더 좋은 기록을 남겼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라슨의 삶이었습니다.
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에 관련된 일화들도 라슨이어서 더 낭만적으로 들리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당시 WS 2차전에도 선발로 나섰으나 1.2이닝 만에 4실점하며 무너졌고, 불펜에서 남은 시리즈를 대비했습니다. 5차전 당일 아침까지도 그날 자신이 선발인지 몰랐는데, 라커룸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스파이크 안에 새 야구공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서야 선발 투입을 알게 되었답니다. 당시 케이시 스텡글 감독은 그렇게 선발 통보를 했다지요.
 
그리고 그날 경기 중 7이닝이 끝난 후 더그아웃에서 라슨은 미키 맨틀에게 "야, 저 전광판 좀 봐. 나 사고 칠 것 같지 않냐?"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질겁한 맨틀은 대답도 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고 합니다. 대기록에 도전하는 투수에게는 그 누구도 절대 말을 걸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데, 라슨이 먼저 말을 걸어왔으니 맨틀이 화들짝 놀랄 수 밖에요.
 
그 퍼펙트게임이 끝나자마자 포수 요기 베라가 마운드로 달려가 라슨의 품에 안기는 장면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입니다. 
훗날 라슨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지만, 요기가 너무 무거워서 허리가 나가는 줄 알았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노년에 MLB 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도 라슨은 자신이 노히트노런을 한 것으로 알았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저 내가 아주 멋진 노히터를 한 줄 알았다.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 들어갔는데 누군가가 말을 해줘서 그제야 퍼펙트게임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겠다 싶은 것이 1922년 챨리 로벗슨 이후로 30년 넘게 MLB에서 퍼펙트게임은 없었으니 말입니다.
 
라슨은 1957시즌에도 10승을 거둔 후 다시는 10승 투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6팀을 옮겨 다니며 9년 더 마운드에 올랐고, 1967년 컵스에서 3경기를 던진 것을 마지막으로 빅리그 마운드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전성기 시절 193cm에 97kg 거구였던 라슨은 타자로도 통산 2할4푼2리-14홈런-72타점을 기록해 확실히 뛰어난 운동능력자였습니다.
라슨은 1999년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요기베라데이'에 베라와 합을 맞춰 시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양키즈 선발 데이빗 콘이 페펙트게임을 던졌습니다.
라슨이 양키즈 최초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후 42년만인 1998년 데이빗 웰스가 퍼펙트게임을 했고, 바로 다음 해 콘이 다시 퍼펙트게임을, 그것도 라슨이 직관한 경기에서 이뤄냈습니다.
2023년 도밍고 헤르만이 퍼펙트게임을 하면서 양키즈는 MLB에서 가장 많은 4번을 이뤄낸 팀이기도 합니다
은퇴 후 아이다호 주 시골에서 생활한 라슨은 2012년 손주들 대학 등록금을 위해 퍼펙트게임 경기에서 입었던 유니폼을 경매에 내놔 눈길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당시 83세였던 돈 라슨은 인터뷰에서 "이 유니폼을 금고에 넣어두는 것보다 손주들의 교육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낙찰 금액은 756,000달러였고 당시 우리 돈으로 약 9억 원 상당이었습니다.
유니폼 하의에는 그의 이름(Larsen)과 연도(56)가 새겨져 있었으며, 보존 상태도 매우 훌륭했다고 합니다.
라슨은 이 경매 수익금으로 두 손주(Justin, Chase)의 대학 학비를 마련했으며, 남은 금액은 자선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유쾌한 퍼펙트맨 라슨은 2020년 1월 만 90세에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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