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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의 재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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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애런 저지는 52개의 홈런을 날리고 신인 신기록을 작성했다. 종전 기록은 마크 맥과이어가 1987년에 기록한 49개로, 신인 선수 최초의 50홈런이었다(2019년 피트 알론소는 53개를 날려 저지의 기록을 경신했다).

 

2022년 저지는 62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단일 시즌 역대 7위 기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배리 본즈의 73(2001)와 마크 맥과이어의 70(1998)를 포함한 1위부터 6위 기록은 약물 선수들인 본즈, 맥과이어, 새미 소사가 세운 기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지가 친 62개를, 로저 매리스의 61홈런(1961)을 경신한 진짜 신기록이라고 생각했다.

 

2023년 저지는 다저스타디움 원정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시즌을 망쳤다. 하지만 202458개의 홈런을 날리고 통산 두 번째 MVP가 됐다.

 

저지가 기록한 wRC+(조정득점생산력) 2202002년 본즈(244), 2001년 본즈(235), 1920년 베이브 루스(234), 2004년 본즈(233), 1923년 루스(225), 1957년 테드 윌리엄스(223)에 이어 7위였지만, 우타자 중에서는 역대 최고였다.

 

202544. 저지는 통산 1000번째 경기에서 홈런을 날렸다. 1000경기에서 기록한 321개의 홈런은 놀랍게도 루스가 기록한 1000경기 기록과 똑같았다(역대 공동 1).

 

지난해 저지는 칼 랄리(60)와 홈런 대결에서 패했지만, 53개의 홈런을 때려내 루스, 맥과이어, 소사에 이어 50홈런 시즌을 네 번 달성한 역대 네 번째 선수가 됐다. 저지는 앞으로 한 번 만 더 달성하면 최초의 50홈런 5회 달성자가 된다.

 

지난해 저지는 통산 세 번째 리그 MVP가 됐고, 2022(206)2024(220)에 이어 wRC+가 또 200을 돌파했다(204). 우타자 역사상 세 번의 'wRC+ 200' 시즌은 저지가 최초였다.

 

저지는 홈런왕을 놓쳤지만 2위 선수들보다 2푼이 높은 .331의 타율을 기록하고 양 리그 통합 타격왕이 됐다. 양키스의 통합 타격왕은 1934년 루 게릭, 1939년 조 디마지오, 1956년 미키 맨틀에 이어 역대 네 번째였다(2020년 단축시즌 제외). 또한 53개의 홈런을 날려 1956년 맨틀(52홈런)을 제치고 역대 타격왕 중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했다.

 

저지는 우리 시대 최고의 타자이며 이런 페이스라면 역대 최고의 우타자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기전의 저지는 전혀 다른 선수다. 정규시즌에서는 태산과 같았던 거인이 포스트시즌 만 되면 한없이 작아지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마치 클레이튼 커쇼가 라이브볼(1920년 이후) 시대의 2000이닝 이상 선발투수 중 가장 좋은 기록인 ERA 2.53으로 은퇴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ERA 4.62로 고전한 것과 비슷하다.

 

저지와 커쇼는 지독할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하며 논란이 될 말이나 남에게 상처가 될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커쇼 만큼이나 구설수가 없다 보니, 거침없는 성격인 브라이스 하퍼(필라델피아)에 비해 재미가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2024년 양키스는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지안카를로 스탠튼과 후안 소토가 저지를 대신해 타선을 이끈 덕분이었다. ALCS 2차전과 3차전에서 연속 홈런을 날리며 살아나나 싶었던 저지는, 오히려 이후 극심한 부진이 시작됐고, 부진은 월드시리즈까지 이어졌다. 연속된 6경기에서 저지는 단타 세 개와 타점 하나에 그쳤다. 타율은 .130이었다.

 

양키스가 13패로 탈락 위기에 몰린 5차전. 저지는 1회에 홈런을 터뜨리며 깨어났고, 저지가 깨어난 양키스는 3회까지 5-0을 만들었다. 양키스는 5차전을 승리하고 다저스타디움으로 갈 것 같았다.

 

하지만 충격적인 일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견수 저지는 5회초 토미 에드먼의 평범한 타구를 잡지 못하는 충격적인 실책을 범했다. 시즌 내내 실책이 없었던 저지가 2023524일 이후 15개월 만에 저지른 실책이었다.

 

저지가 흔들리자, 동료들도 흔들렸다. 유격수 볼피의 실책이 이어졌고(무사 만루), 럭스와 오타니를 삼진으로 잡아(2사 만루) 무실점으로 탈출하는 것 같았던 게릿 콜도 무키 베츠의 땅볼 타구를 본인이 처리하려다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지 못했다. 다저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2사 만루에서 5점을 뽑아냈다(5-5). 5차전의 승자는 결국 다저스였고, 15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 양키스는 고개를 떨궈야 했다(14).

 

지난해 절치부심한 저지의 가을은 전과 완전히 달랐다. 양키스는 토론토에게 패해 ALCS 진출이 불발됐지만, 저지는 PS 7경기에서 타율 .500OPS 1.273을 기록했다. 마침내 단기전의 압박감을 털어낸 것 같았다.

 

2026WBC는 저지의 대관식으로 여겨졌다. 가장 먼저 출전 의사를 밝힌 저지는 지난 대회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에 이어 미국 팀의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됐다. 저지가 "Avengers Assemble!"을 외치자 사이영 투수 폴 스킨스(피츠버그)를 시작으로, 역대 최고의 야구 팀이 만들어졌다. 우승은 미국의 차지 같았다.

 

하지만 저지가 이끈 6회 대회에서, 미국은 우승에 또 실패했다. 태릭 스쿠볼(디트로이트)이 토너먼트 등판을 거부해 논란이 됐고, 칼 랄리(시애틀)는 팀 동료들(멕시코 랜디 아로사레나 & 캐나다 조시 네일러)의 악수 요청을 거절해 도마에 올랐다. 마크 데로사 감독은 2라운드 진출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모르고 경기를 했다가 하마터면 탈락할 뻔했다(미국은 또 다른 미국 팀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가 구해줬다).

 

미국과 도미니카공화국과의 준결승전은 WBC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의 결승 상대는 일본과 이탈리아를 꺾고 올라온 베네수엘라였기 때문에, 또 다른 명승부가 기대됐다.

 

그러나 미국은 졸전 끝에 결승전을 패했다. 저지도 극적인 8회말 동점 투런을 날린 하퍼와 달리, 네 타석에서 삼진-삼진-땅볼-삼진에 그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미국은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지만 2-3으로 패함으로써,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아이언맨이 등장하지 않았다.

 

저지는 왜 단기전에 약할까. 저지는 역대 최장신 타자 중 한 명으로,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긴 스트라이크 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단기전에서는 강속구 투수들은 더 자주 만나고, 이들은 저지를 상대로 자신 있게 하이 패스트볼을 던진다. 100마일이 스트라이크 존 상단에 꽂히게 되면, 낮은 코스의 변화구에 큰 약점이 생긴다. 기술적인 분석을 떠나서, 지나친 믿음이 전성기 커쇼의 발목을 잡았던 것처럼, '저지가 해줄 것'이라는 믿음 또한 저지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저지는 무관의 제왕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저지는 결승전을 패한 후 2028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과 다음 WBC 출전을 예고했다. 또한 돈 매팅리처럼양키스의 '우승 없는 캡틴'으로 남아서는 안 되는 저지다.

 

과연 미국은 진정한 어벤져스로 다시 뭉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비브라늄 방패를 든 캡틴 아메리카의 의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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