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 트리오의 다짐
2021년 블라디미르 게레로(26)는 오타니 쇼헤이(31)와 홈런왕 경쟁을 했다. 결과는 48 대 46으로 게레로의 승리였다(살바도르 페레스도 48개를 치면서, 오타니는 3위가 됐다).
게레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MVP는 자신이 아니라 오타니라고 했다. 정말 MVP는 오타니였고, 게레로는 2위가 됐다. 하지만 오타니가 1위 표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가져가자, 게레로는 한 장도 받지 못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듬해 게레로는 다이어트를 더 혹독하게 하고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타니가 2022년에 MVP 2위(1위 저지), 2023년에 1위를 하는 동안 10위 내에도 한 번도 들지 못했다. 게레로는 2021년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홈런왕은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지난해 게레로는 14년 5억 달러 계약을 맺음으로써 바라던 대로 토론토의 종신 선수가 됐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가을 활약으로 팀을 월드시리즈 진출로 이끌었다. 토론토의 월드시리즈 진출은 1993년 이후 32년 만이었다.
게레로는 월드시리즈에서도 빛났다. 4차전은 투수 오타니를 상대로 역전 결승 투런을 날려 전날 18회 연장 패배의 충격을 지웠다. 토론토는 데이비스 슈나이더와 게레로가 백투백 홈런으로 시작한 5차전까지 승리해 우승까지 1승을 남기고 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상상도 못한 일이 게레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6차전을 패한 토론토는 7차전 승리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토론토 마무리 제프 호프먼은 우승까지 아웃카운트 두 개를 남겨 놓고 미겔 로하스에게 동점 홈런을 맞았다. 로하스는 우완을 상대로 친 마지막 홈런이 13개월 전인 선수였다. 결국 우승은 윌 스미스가 월드시리즈 7차전 최초로 연장 홈런을 치고, 야마모토가 월드시리즈 최초로 원정 3승을 거둔 다저스가 가져갔다.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덕아웃을 가장 마지막으로 떠난 토론토 선수는 게레로였다. 게레로는 2025년의 월드시리즈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겠지만, 덕아웃을 떠나는 그 순간 책장을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고 했다.
2024년은 후안 소토(27)에게 최고의 시즌이었다. 뉴욕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은 그는 41홈런 109타점을 기록함으로써 58홈런 144타점을 기록한 애런 저지와 최고의 쌍포가 됐다.
양키스의 아메리칸리그 MVP는 지안카를로 스탠튼이었지만, 15년 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짓는 연장 결승 홈런은 소토가 날렸다.
양키스의 상대는 다저스였다. 소토는 월드시리즈에서도 OPS 1.084로 분전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우승 팀은 오타니와 첫 시즌을 함께 한 다저스였다.
사실 게레로와 소토는 오타니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오타니가 97%의 지불 유예가 들어간 계약으로 5억 달러 벽과 6억 달러 벽, 7억 달러 벽을 한 번에 뚫은 덕에 소토는 지불 유예 없는 7억6500만 달러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소토가 7억 달러에 안착한 덕분에 게레로도 5억 달러를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2024년 소토와 2025년 게레로는 모두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에게 패했고, 다저스에는 오타니가 있었다.
2021년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27)는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얼굴이 됐다. 130경기에서 42개의 홈런을 날린 그는 2003년 알렉스 로드리게스 이후 18년 만의 유격수 홈런왕이었다. 내셔널리그에서 유격수 홈런왕이 나온 건 1960년 어니 뱅크스 이후 처음이었고, 내셔널리그의 40홈런 유격수도 1960년 뱅크스 이후 61년 만이었다.
4월에 열린 다저스타디움 3연전에서 타티스는 첫 날 클레이튼 커쇼를 상대로 두 개, 다음날 트레버 바우어를 상대로 두 개, 마지막 날 더스틴 메이를 승대로 하나를 날려 3경기 5홈런을 기록했다. 커쇼를 상대로 2홈런을 친 첫 날은 아버지가 박찬호를 상대로 한 이닝 두 개의 만루홈런을 치고 정확히 22년이 되는 날이었다. 22년 전 타티스는 생후 3개월이었다. 타티스는 이듬해 스프링 캠프를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은 선언을 했다. "건강했을 때 나는 이 세상 최고의 선수다(When I'm healthy, I feel like I'm the best player in the world)"
그러나 슈퍼스타 타티스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2022년 타티스는 바이크를 타다 다쳐 부상자명단에서 시작했고, 복귀를 앞두고는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이 발표됐다. 타티스는 샌디에이고를 제외하면 그 어디에서도 따뜻한 박수를 받을 수 없게 됐다.
타티스가 1년을 통째로 놓치고 복귀한 2024년, 샌디에이고는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했다. 샌디에고는 우승 후보 1순위 답게 1,2차전를 모두 승리해 다저스를 벼랑끝으로 몰았다. 타티스는 1차전 4타수2안타(2루타) 2득점과 2차전 4타수3안타 2홈런(2루타) 3타점의 미친 활약을 했다. 2차전 도중 타티스는 혀를 내밀고 장난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하지만 시리즈를 가져간 팀은 다저스였다. 샌디에이고는 4차전부터 방망이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타티스도 마찬가지였다. 야마모토가 무실점 승리를 따낸 최종전에서 타티스는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2024년 타티스도 다저스에게 패했고, 다저스에는 오타니가 있었다.
타티스는 지난해 올스타전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선수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너무 뻔한 질문인 것 같다. 그 선수는 내 라이벌이기 때문에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겠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파란색 팀의 17번 선수다"라고 했다.
WBC에 참가한 게레로 타티스 소토는 공식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소토가 앞에 놓여 있던 대회 공식 음료의 페트병을 치우는 일이 있었다. 오타니가 모델인 녹차 음료였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 인터뷰에서는 자리에 안기도 전에 게레로가 음료수 병을 빠르게 치웠다. 목표인 우승을 위해서 오타니를 반드시 꺾겠다는 각오의 장난스런 표현이었다.
지난 대회 이후 각오를 더 단단히 한 팀은 미국뿐이 아니다. 도미니카는 3회 대회 우승 팀이지만 4회 대회는 4강 진출에 실패했고, 지난 5회 대회는 베네수엘라와 푸에르토리코에 패해 2라운드 진출도 하지 못했다. 미국 다음으로 메이저리그 선수가 많은 팀의 대망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 임하는 도미니카의 각오 역시 남다르다. 명예의 전당 예약자 앨버트 푸홀스가 감독을 맡았고, 부상자를 제외한 최고의 선수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도미니카는 늘 투수가 아쉬웠는데, 2022년 사이영 수상자인 샌디 알칸타라와 지난해 NL 사이영 2위인 크리스토퍼 산체스가 모두 참가해, 에이스 대결도 밀리지 않게 됐다.
도미니카는 니카라과와 네덜란드를 대파한 첫 두 경기에서 7개의 홈런을 날렸고 24득점을 올렸다. 경기가 열린 마이애미 론디포파크는 도미니카 관중들로 인해 축제 분위기였다. 죽음의 조였던 지난 대회와 달리 이번에는 조 편성도 유리하다.
문제는 신날 때 한없이 신나지만 식을 때는 한없이 식는 도미니카 특유의 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느냐이지만 이번에는 좀 달라 보인다. '타도 오타니'를 외친 후안 소토, 페르난도 타티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가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