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미국' 최강 야구 팀의 탄생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탠상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메이저리그 선수노조가 수익의 50%를 가져가기로 한 이 대회는 누가 보더라도 미국이 개최하고 미국이 주인공인 대회였다. 하지만 미국 내 분위기는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았다.
최고의 팀인 양키스는 대회에 상당히 미온적이었다. 마지 못해 데릭 지터와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출전을 허락했지만, 다른 선수들을 압박해 마츠이 히데키(일본), 마리아노 리베라(파나마), 호르헤 포사다(푸에르토리코)의 출전을 막았다. 파나마의 영웅이지만 어쩔 수 없이 불참 이유를 만들어야 했던 리베라는 "파나마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합류한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양키스의 불참 권고를 무시하고 출전한 선수는 선수 생활의 말년에 접어든 버니 윌리엄스(푸에르토리코)뿐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초호화 군단이었다. 나중에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데릭 지터(유격수), 켄 그리피 주니어(중견수), 치퍼 존스(지명타자)가 있었고, 약물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올랐을 알렉스 로드리게스(3루수)와 현재 헌액 가능성이 있는 체이스 어틀리(2루수)까지 포함하면, 타선의 9명 중 5명이 사실상 명전 선수였다.
타선과 비교하면 마운드는 덜 화려했다. 하지만 전년도 다승 1위이자 사이영 2위 돈트렐 윌리스(플로리다), ERA 1위이자 사이영 3위 로저 클레멘스(휴스턴), 탈삼진 1위 제이크 피비(샌디에이고)와 조 네이선(미네소타), 브래드 릿지(휴스턴), 휴스턴 스트리트(오클랜드), 채드 코데로(워싱턴) 등 불펜도 화려했다.
그러나 우승 후보 1순위였던 미국은 1라운드에서 캐나다에게 패했고, 멕시코에 이어 조 2위로 2라운드에 올랐지만 4강 진출에 실패했다. 2라운드에서는 편파 판정에 힘입어 일본을 꺾었지만, 대한민국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했고, 멕시코에게도 패했다(1승2패). 멕시코전은 심지어 파울 폴을 맞고 나온 멕시코의 홈런을 파울로 판정하는 승부조작이 있었는데도 패했다.
2009년에 열린 2회 대회도 비슷했다. 1라운드에서 베네수엘라에게 패한 미국은, 2라운드에서 2승2패를 기록하고 겨우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로이 오스왈트(휴스턴)와 마츠자카 다이스케(보스턴)가 격돌한 준결승에서 4-9로 패해 이번에도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메이저리그 선수를 압도적으로 많이 보유한 야구 종주국의 완벽한 망신이었다.
2013년 3회 대회는 더 충격이었다. 1라운드에서 멕시코에 지고 캐나다와 이탈리아를 꺾은 미국은 2라운드에서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이탈리아와 대결했다. 하지만 도미니카와 푸에르토리코에게 연거푸 패해 준결승 진출이 무산됐다. 일본의 1,2회 대회 우승에 이어 3회 대회 우승을 도미니카가 차지한 장면은 미국에게 엄청난 자극이 됐다.
미국은 그동안 왜 부진했을까. 최고의 구성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좋은 선수들이 참가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수준이 떨어져서는 결코 아니었다.
문제는 동기 부여였다. 미국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올림픽 등의 성인 대회는 출전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를 대표한다는 것은 청소년 대표와 대학 대표를 거쳐 마이너리거 시절까지 만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시즌 전에 열리는 대회에 참가했다가 부상이라도 당하게 되면 팀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극미'를 목표로 한 일본 선수들이 대회에 맞춰서 몸을 끌어올리는 반면, 미국 선수들에게 WBC는 시즌 개막에 맞춰 몸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잠깐 참가하는 대회에 불과했다. 심지어 1회 대회 때는 미국 대표 팀이 너무 늦게 소집돼 투수들이 포수의 복잡한 사인을 외우지 못했고, 사인이 털려서 패했다는 괴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세 대회 연속 결승 진출 실패로, 미국 야구의 자존심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미국 선수들 사이에서 더 이상 실패할 수 없다는 분위기 전환이 일어났다. 결과는 준결승에서 일본, 결승에서 푸에르토리코를 꺾고 차지한 4회 대회(2017) 우승으로 이어졌다.
지난 대회(2023)도 미국은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항상 본인들에게 유일한 조 편성을 하는 미국은 가장 큰 고비였던 8강에서 베네수엘라를 꺾었고, 4강에서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쿠바를 대파해(14-2) 백투백 우승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장판파의 장비처럼 미국 팀의 앞을 막아선 선수가 있었으니, 오타니 쇼헤이였다. 경기 전 클럽하우스 연설로 동료들의 투쟁심을 고취시킨 오타니는 9회에 마운드에 올라왔고, 미국 야구의 상징인 마이크 트라웃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오타니가 트라웃을 잡고 글러브를 집어던지며 포효한 장면은, 대회의 위상을 높여줌과 동시에 미국 선수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이번 대회 미국은 '앞으로 또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최고의 선수단을 구성했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 찰스 바클리, 칼 말론 등이 참가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농구 드림팀과 비견될 만한 수준이다(1992년 드림팀은 작전 타임을 한 번도 부르지 않고 우승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주요 개인상(MVP & 사이영) 수상자 네 명 중, 오타니를 제외한 세 명이 미국 팀(애런 저지, 태릭 스쿠볼, 폴 스킨스)의 유니폼을 입었고, 홈런 순위 1위(칼 랄리) 2위(카일 슈와버) 4위(애런 저지)가 타선에 포진했다.
더 충격적인 건 수비력이다. 최고의 수비상인 플래티넘 글러브 경력의 선수가 포수(칼 랄리) 유격수(바비 위트 주니어) 2루수(브라이스 투랭)에 포진하고 있고, 중견수를 맡게 될 브라이언 벅스턴(미네소타)과 피트 크로-암스트롱(시카고 컵스)도 플래티넘급 선수들이다. 센터 라인을 포함한 압도적인 수비력은 다른 우승 후보들인 일본, 도미니카와 비교해도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마운드에서 일어났다. 지난 시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클레이튼 커쇼, 저스틴 벌랜더, 맥스 슈어저, 잭 그레인키(커/벌/슈/그)는 모두 미국 선수들이지만 WBC에 참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시즌 전에 열리는 대회에 참가할 경우 부담감은 선발투수가 가장 클 수밖에 없는데, 슈어저는 대놓고 "7월에 열리는 대회는 나갈 수 있지만 3월은 곤란하다"고 했다. 커쇼는 지난 대회 참가를 희망했지만 보험 승인이 나지 않아 취소됐다.
지난 대회까지 전년도 사이영 수상자가 WBC에 출전한 건 1회 대회 바톨로 콜론(도미니카)과 3회 대회 R A 디키(미국), 5회 대회 샌디 알칸타라(도미니카)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이영 수상자 둘이 모두 참가한다. 태릭 스쿠볼(디트로이트)이 1라운드만 뛰고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맥이 빠지긴 했지만, 미국 팀의 에이스인 폴 스킨스(피츠버그)는 완주를 선언했다.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가 야구를 너무 잘해서 전투기 조종사가 되려던 꿈을 포기한 스킨스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모든 사람들, 특히 군인들을 위해 우승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커/벌/슈/그의 뒤를 잇는 최고의 투수이자 미국의 에이스가 될 것으로 보이는 스킨스의 이러한 태도는 트라웃에 이어 '캡틴 아메리카'가 된 저지, 드디어 참가의 꿈을 이룬 하퍼, 코빈 캐롤의 부상으로 막차를 탄 차세대의 주역 로만 앤서니(보스턴) 등에게 큰 자극이 되고 있다.
미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이번 올림픽 결승에서 숙적 캐나다를 꺾고 46년 만에 금메달을 차지했다. 스킨스를 포함한 미국 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지금의 분위기를 이어가고, 2028년에 열리는 올림픽까지 우승하겠다는 입장이다. 2028년 올림픽은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리기 때문에 선수들은 7월 참가가 가능하다.
1992년 농구 드림팀과 달리 미국의 야구 드림팀은 우승을 장담할 수 없다. 일본은 NPB와 메이저리그, 그리고 WBC에서 6개의 MVP 트로피와 네 번의 우승을 차지한 오타니가 있고, 지난해 월드시리즈의 영웅 야마모토도 있다. 3회 대회 우승 후 선수들의 이름값에 비해 늘 성적이 아쉬웠던 도미니카도 미국 못지 않게 역대 최강의 전력을 자랑한다. 지난 대회에서 에이스 샌디 알칸타라가 부진한 바람에 1라운드 통과를 하지 못했던 도미니카는 그동안 에이스 부재가 큰 약점이었지만, 이번에는 크리스토퍼 산체스(사이영 2위)라는 확실한 에이스를 보유하고 있다.
과연 미국은 일본의 4번째 우승이자 2번째 백투백 우승, 도미니카의 2번째 우승을 막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두 번째 팀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은 7일 브라질과의 대결을 통해 대장정을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