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1호
2005년 겨울. 댈러스에 있는 하이랜드파크 고등학교의 야구 팀 감독인 J D 스마트는 스킵 존슨(현 오클라호마대학 감독)을 찾아갔다.
당시 나바로 주니어칼리지 팀의 감독이었던 존슨은 텍사스 지역에서 투수 코칭 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스마트는 "우리 학교에 물건인 녀석이 있는데, 제대로 된 지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스마트가 말한 '물건'은 17살의 커쇼였다.
커쇼는 석 달 동안 화요일마다 존슨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다. 커쇼의 천재성을 단박에 알아본 존슨은 이런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 돈을 받는 건 야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레슨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스마트로부터 커쇼의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커쇼의 집부터 나바로 대학까지는 왕복 160km 거리였다. 한 번에 여러 일을 하며 커쇼를 혼자 키운 어머니로서는 기름값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무료 레슨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었다.
존슨은 먼저 커쇼의 팔 각도를 높였다. 커쇼는 원래 크리스 세일 같은 로 스리쿼터 투수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몸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자주 일어났고 하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존슨은 커쇼의 팔을 하이 오버핸드로 올리면서 "손과 다리가 실에 묶여 있다고 상상해라. 손이 올라가면 다리도 같이 올라가야 한다((Hands go up, legs go up)"를 주입했다. 커쇼의 독특한 키킹과 높은 릴리스 포인트는 고등학교 졸업반 시즌을 앞두고 완성됐다.
투구폼을 바꾸자 체중이 앞으로 쏠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구속과 제구가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커쇼는 바뀐 투구폼으로 경기에 출전하고 나서 "진짜 피칭을 한 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존슨이 준 두 번째 선물을 커브였다. 그때까지 커쇼는 사이드암으로 던지는 슬러브가 주무기였다. 하지만 존슨은 새로운 팔 각도에 어울리는 공인 12-6 커브를 전수했다. 높은 타점에서 떨어지는 커쇼의 커브는 고교 무대를 평정했고, 6순위인 디트로이트가 커쇼를 포기한 덕분에 7순위 지명권을 가진 다저스가 커쇼를 뽑았다.
자신을 지명한 팀이 다저스인 건 커쇼에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2008년 처음 참가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 샌디 코팩스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코팩스는 커쇼의 높은 타점에 대해 "절대로 바꾸지 마라. 그것이 네가 가진 가장 큰 무기다"라며 꼭 지키라고 했다. 코팩스 역시 현역 시절 극단적인 오버핸드 투수였다. 당시 다저스 코치들은 커쇼의 높은 타점이 부상을 유발할 수 있다며 팔의 높이를 낮추자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팀의 전설인 코팩스가 이렇게 나오자 투구폼 수정은 없던 일이 됐다.
존슨이 커브를 던지는 법을 가르쳐줬다면, 코팩스는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코팩스가 가장 강조한 것은 커브를 던질 때 팔을 세게 휘둘러, 커브가 패스트볼과 똑같은 스윙 스피드를 통해 뿌려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코팩스의 보살핌 속에, 코팩스의 커브는 커쇼에게로 이어졌다. 코팩스는 커쇼의 커브가 자신보다 낫다고 했고, 코팩스의 커브를 누구보다도 많이 본 빈 스컬리는 커쇼의 커브에 공공의 적 1호(Public Enemy No. 1)라는 멋진 별명을 붙였다.

2015년 10월4일 샌디에고전. 커쇼는 300탈삼진까지 6개를 남기고 시즌 최종전을 시작했다.
커쇼는 9타자 만에 5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그리고 10번째 타자인 B J 업튼(멜빈 업튼 주니어)을 상대로 대망의 시즌 300호 삼진을 잡아냈다. 업튼에게 던진 세 개의 공은 모두 커브였다.
커쇼의 300K는 2002년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 이후 13년 만의 기록이었다. 다저스 투수가 달성한 건 1963년, 1965년, 1966년의 코팩스 이후 처음이었다.
커쇼는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300K를 하는 것보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경기 후 커쇼의 공을 받은 포수 A J 엘리스는 "커쇼는 거짓말을 했다. 공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던지, 300K를 하려고 눈에 불을 켠 것 같았다"며 커쇼를 디스했다.
301개의 탈삼진으로 마친 그 해. 커쇼는 포심으로 106개, 커브로 98개, 슬라이더로 96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포심 커브 슬라이더의 비율이 1대1대1이었을 정도로, 커쇼의 또 다른 무기는 슬라이더였다.
커쇼는 커리어 초반 타자들이 커브를 제대로 치진 못해도 계속 커트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번엔 슬라이더를 가르쳐준 사람이 나타났다. 조 토레 감독과 함께 양키스에서 건너온 불펜 포수 마이코 보젤로였다.
양키스의 불펜 포수로서 마리아노 리베라가 커터를 완성하는데 큰 도움을 준 보젤로는 커쇼에게 슬라이더를 던져볼 것을 제안했고, 자신의 노하우를 모두 알려줬다.
2025년 7월2일. 커쇼가 통산 3000탈삼진을 완성한 공은, 공공의 적 2호인 슬라이더였다.
300K는 커브로, 3000K는 슬라이더로. 커쇼다운 피날레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