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전 최초 100% 득표 리베라의 인성
영등포의 타임스퀘어에서 팬들과 함께 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요청을 받고 제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교통 체증으로 마리아노는 약속 시간에 약간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리고는 관계자를 통해 조금만 쉬고 시작하자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첨엔 그의 말을 듣고 좀 실망했습니다. 미국서 특파원 시절 양키즈 취재하면서 봤던 성실했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리베라는 새벽에 도착한 후 시차와 또 교통 체증 등으로 마음 졸여 약간 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며, 일단 행사가 시작되자 온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늦은 만큼의 시간보다 더 오래 예정 시간을 넘겨 머물며 팬들에게 공을 던지는 시범을 보이고, 커터의 비밀을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선수 생활 내내 보여줬던 성실함과 약속을 충실히 수행하는 그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저와도 오랜 친구처럼 격의 없이 아주 편하게 대했습니다. 양키즈 스프링 캠프 취재 때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지만, 당연히 기억하지는 못했을 텐데요.
그때가 은퇴한 지 1년 후였는데 그리고 4년 후 마리아노는 MLB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후보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매년 열리는 행사지만 당시 유독 제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과연 마리아노 리베라가 사상 최초로 100% 득표를 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구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역동적인 스윙을 지녔고, 가장 열정적이고 몸을 사리지 않는 그림 같은 수비를 펼쳤으며, 그리고 경기 외적으로는 늘 미소 천사로 팬들의 큰 사랑을 받던 선수.
'주니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켄 그리피 주니어는 19세이던 1989년부터 마흔이던 2010년까지 22년간 MLB 생활을 하며, 수많은 크고 작은 부상을 딛고 통산 2할8푼4리에 630홈런, 1836타점, 1662득점, 2루타 524개, 3루타 38개, 184도루 등의 화려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해 투표에서 주니어는 총 437표를 얻었습니다. HOF 사상 가장 높은 99.32%의 득표를 기록했지만 3명으로부터 표를 얻지 못했습니다.

돌아보면 당시까지 100% 득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역대 최다 삼진과 함께 7번의 노히트를 기록한 놀란 라이언도(98.79%), 사상 최고의 유격수 칼 립켄 주니어도(98.53%), 타격의 달인인 타이 콥도(98.23%) 그리고 컴퓨터 투수 그렉 매덕스도(97.2%)도 만장일치를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야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베이브 루스도 95.13%로 역대 득표율 15위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2019년 HOF 투표를 앞두고 다시 한번 100% 득표 선수가 나올 것인지를 놓고 현지에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전 뉴욕 양키즈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가 화제의 중심이었습니다.
1996년부터 2013년까지 19년간 빅리그를 호령했던 마리아노의 기록은 압도적입니다.
대부분 8,9회에 마운드에 올라 경기를 끝냈던 그는 통산 952경기를 마무리해 MLB 최고 기록을 썼습니다. 652세이브라는 거의 불멸의 기록도 세웠습니다. 1283과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리베라는 9이닝 당 볼넷 2개, 피안타 7개로 WHIP 1.00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기록은 피홈런인데, 약물의 시대에 가장 두려웠던 타자들을 상대로 18이닝당 단 1개의 홈런을 허용했을 뿐이었습니다.
13번이나 올스타에 뽑힐 정도로 팬들에게도 인정받았던 그는 양키즈를 5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AL 최고 마무리 투수상도 5번 받았는데, 그의 은퇴 후 이 상은 '마리아노 리베라 상'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은, 가장 큰 주목을 받고 그래서 중압감이 몇 배가 되는 가을 잔치에서의 맹활약이었습니다.
포스트 시즌 경기만 96번을 등판한 리베라는 8승 1패에 평균자책점 0.70을 기록했습니다. 11번의 월드시리즈 세이브를 비롯해 가을에만 42세이브를 올렸습니다. 리베라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포스트 시즌 투수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MLB 전 구단의 은퇴 번호가 된 재키 로빈슨의 42번을 마지막까지 달고 있던 선수도 바로 마리아노 리베라였습니다. 2013년 그의 은퇴 후 이제는 그 어떤 선수도 등번호 42번을 달지 못합니다.

그리고 리베라는 정말 꾸준히 오랫동안 변함없이 뛰어난 피칭을 한 투수였습니다.
1995년 만 25세에 뒤늦게 빅리그에 데뷔한 그는 26세이던 1996시즌 61경기에서 107과⅔이닝을 던졌습니다. 평균자책점은 2.09였고, 9이닝 당 10탈삼진에 시즌 내내 딱 1개의 홈런을 내줬습니다. 셋업맨이던 그는 8승과 5세이브를 기록합니다. 월드시리즈 4경기 포함, 포스트시즌 8경기에서 14와⅓이닝을 던지며 딱 1실점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6년 36세가 된 리베라는 75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1.80을 기록했습니다. 36세이브를 기록한 그 시즌에 리베라가 내준 홈런은 3개였습니다.
다시 8년이 흐른 2013년 43세가 된 그의 마지막 시즌에 리베라는 64이닝을 던지며 자신의 나이보다 많은 44세이브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은 2.11이었습니다.
홈런 6개를 맞았지만 9이닝 당 8개 가까운 삼진과 1개를 약간 상회하는 볼넷으로 여전히 놀라운 제구력과 탈삼진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바로 전 해에 무릎 인대 파열로 완전히 재활에만 몰두해야 했던 고통을 버틴 다음 해, 40대 중반에 이뤄낸 성적이었습니다. 그해에도 리베라는 올스타전에 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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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마리아노의 고향 어촌
그리고 시즌 후 마리아노는 전격 은퇴를 선택, 많은 아쉬움 속에서도 큰 박수를 받으며 녹색 다이아몬드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2019년 2월 은퇴 5년 후 마리아노는 사상 최초로 명전 투표에서 100% 득표를 하면서 영광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후 데릭 지터와 스즈키 이치로가 아주 근접하기는 했지만 100% 득표 선수는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파나마의 가난한 어촌 출신으로 세계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성장한 마리아노는, 타자들의 배트를 수없이 부러뜨린 살벌한 커터를 장착한 압도적 피칭 능력은 물론, 늘 주변을 챙기고 끝없이 고향의 저소득층 아이들을 돕는 등 선행과 나눔의 심성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큰 인물입니다.
그것이 100% 득표에 큰 영향을 끼친 건 확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