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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와 짐 토미, 홈런 타자를 만든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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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KBO리그 구단의 애리조나 전지훈련을 현장 취재했습니다. 당시 넥센 히어로즈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스프링캠프를 치르는 서프라이즈 훈련장을, KIA 타이거즈는 바로 옆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훈련장을 각각 임대해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지금이야 새로울 것이 없지만, 당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시설을 처음 접한 선수들은 신문물의 규모와 체계에 적잖이 자극을 받았습니다. 일부 선수들에게는 미국 진출을 구체적으로 꿈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실제 미국 스프링캠프 시설을 경험한 몇몇 선수가 이후 빅리그 무대에 진출했습니다.

 

그중 박병호가 있었습니다. 성남고 재학 시절 4연타석 홈런으로 주목받던 박병호는 2005LG 입단 후 좀처럼 유망주의 틀을 깨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1년 넥센으로 트레이드돼 안정적인 기회를 얻으면서 큰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2012년 처음으로 풀타임 시즌을 약속받고 애리조나 캠프에 합류한 시점에 취재차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박병호는 특유의 겸손한 태도로 성적보다 체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온전히 한 시즌을 치러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미국에 처음 오게 돼 설렌다는 그야말로 풋풋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후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입니다. 박병호는 2012년부터 4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끝에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했습니다. 박병호가 뒤늦게 거포의 잠재력을 터뜨린 데에는 재능과 노력뿐 아니라 소속팀의 환경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삼진을 당해도 좋으니 풀스윙하라는 김시진 감독의 조언이 박병호의 타격 접근법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15, 21년의 프로 생활을 마치고 코치로 새출발하는 자리에서 박병호는 넥센 시절 자신을 지도한 코칭스태프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김시진 감독이 먼저였습니다. 삼진을 당하지 않으려 급급하던 선수가 삼진을 당해도 칭찬받는 선수로 바뀌도록 해주신 분이라며, 자신에게 가장 큰 변화를 이끈 지도자로 꼽았습니다. 지극히 단순한 내용의 조언이지만, 심리가 기술적으로 크게 연계되는 타격의 근본을 일깨운 것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박흥식 타격 코치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박병호는 앞서 언급한 2012년 스프링캠프 당시 박 코치를 따로 만나 한 가지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르다 보면 초반에 부진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 잘하고 있다는 말을 한 번만 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정말 잘하는 줄 알고 신나서 열심히 할 것이라는 게 박병호의 말이었습니다. 박 코치는 시즌 초 박병호가 잠시 부진하던 시기에 이렇게 중요할 때마다 쳐주는 4번 타자가 어디 있냐고 의도적인 공개 칭찬을 했습니다. 이후 박병호가 더욱 탄력을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코칭스태프의 한마디에 선수 인생이 달라진 사례는 종종 회자됩니다. 애정 어린 충고 하나가 홈런 타자의 탄생으로 이어진 사례는 물론 메이저리그에도 있습니다. 바로 떠오르는 선수가 짐 토미입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타격 준비 자세가 인상적인 토미는 90년대 후반 클리블랜드의 강타선을 상징하는 선수 중 한 명입니다. 30홈런을 12번 기록했고, 40홈런을 넘긴 시즌도 여섯 번이나 됩니다. 필라델피아와 시카고 화이트삭스 포함, 여섯 개 팀에서 통산 612홈런을 쌓아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했습니다.

 

 

  

토미는 600홈런을 달성한 역대 9명 가운데 한 명입니다. 특히 599호와 600호 홈런을 한 경기에 기록한 최초의 선수라는 점. 그리고 리그 최다 볼넷과 최다 삼진을 각각 세 차례 기록했을 만큼 볼넷과 삼진이 모두 많았다는 것이 늘 떠오르는 토미의 특이점입니다. (타석의 결과물이 홈런, 타점, 삼진으로 요약되는 타자를 최근에는 ‘three-true-outcome’ 선수라 부르기도 합니다.) 통산 출루율 0.402는 메이저리그 역대 58위로 리키 헨더슨과 비슷한 수치입니다. 누적 성적과 임팩트모두 당대를 호령한 장타자로 이견이 없습니다.

 

 

박찬호의 등장으로 메이저리그가 대중화된 우리나라의 야구팬 시각에서 짐 토미는 처음부터 홈런 타자로 인식됐습니다. 하지만 토미가 처음부터 홈런 타자였던 것은 아닙니다. 고교 시절부터 야무진 타격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깡마른 체구 탓에 4년제 대학의 입학 제안을 받지 못했습니다. 별다른 대안이 없어 2년제 대학으로 진학했던 토미는 1989년 드래프트에서도 13라운드 전체 333번째로 지명됐습니다. 결코 주목받는 유망주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첫 마이너리그 시즌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클리블랜드 구단은 토미의 타격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장타력이 시원치 않다는 점 때문에 발전 가능성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클리블랜드에는 타격에 관해 독보적인 시각으로 인정받던 코치가 있었습니다. 바로 찰리 매뉴얼입니다.

 

잠재력이 엿보이지만 기대만큼 강하게 당겨치지 못하는 유망주를 매뉴얼은 지속적으로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문제의 원인을 짚어냈습니다. 타석에서 너무 긴장해 허리를 구부린 채 배트를 휘두르는 자세가 토미의 약점이라고 봤습니다. 긴장감을 풀고 스윙할 수 있다면 결과가 달라질 거라 믿었습니다.

 

 

보통 이런 사연에는 매우 공교로운 우연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때 마이너리그 경기장 클럽하우스 안에 설치된 TV에서는 영화 내추럴이 방송중이었습니다.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로이 홉스 주니어로 등장하는 내추럴은 야구팬이라면 한 번쯤 봤을 법한 야구 영화의 클래식 중 하나입니다. 클럽하우스 안의 선수들이 TV를 응시하는 가운데, 로이 홉스 주니어가 한 손으로 배트를 흔들며 타석에서 준비하는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매뉴얼은 자신의 생각이 현실과 맞닿는 지점은 바로 이 장면이라고 생각했고, 토미에게 그 모습을 봐두라고 지시했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매뉴얼은 곧바로 토미를 타격 연습장으로 데려가 로이 홉스의 타격 준비 자세를 연습하도록 했습니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됐고, 토미는 방금 연습한 자세를 토대로 상대 왼손 투수를 두들겨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을 때렸습니다. 다음 타석에서는 우중월 홈런을 날렸습니다. 긴장을 풀고 스윙하는 과정에서 엉덩이 회전의 반동이 스윙에 제대로 연동돼 타구에 힘이 실렸습니다. 찰리 매뉴얼은 2017년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이 사연을 신나게 떠들면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이거 진짜 실화예요.”

 

짐 토미 역시 같은 이야기를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다만 매뉴얼과 연습했던 당일 홈런을 친 것은 아니고, 그다음 날 경기였다는 기억의 차이는 있었습니다. 토미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투수 쪽으로 배트를 겨냥해 리듬을 잡는 시그니처 루틴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훗날 토미는 MLB 네트워크 해설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타격 준비 과정이 정립된 역사를 설명했고, 방송 제작진은 영화 내추럴처럼 베이스를 돌면서 조명탑이 터지는 효과를 CG로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우연히 접한 조언 하나로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난 토미는 이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로 탈바꿈했습니다. 이 사연은 매뉴얼이라는 조언자의 역할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조언을 수용하는 토미의 태도와 가치관도 반드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1991년 데뷔 후 서서히 장타력을 갖추면서 토미는 주전 3루수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96시즌에는 38개의 홈런을 기록해 아메리칸리그 MVP 15위에 올랐고, 실버슬러거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팀을 좀 더 젊고 강하게 만들고 싶던 존 하트 단장은 주요 포지션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맷 윌리엄스를 영입하고 싶어 했습니다. 문제는 윌리엄스가 3루수였다는 겁니다.

 

 

트레이드를 통한 윌리엄스 영입 가능성이 확인되자 하트 단장은 바로 토미에게 전화를 걸어 내막을 전했습니다. 토미가 1루수로 옮겨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하트 단장의 설명이 끝난 뒤 토미는 30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긴 침묵이 흐른 뒤에야 말문을 열었습니다. 토미는 우리 팀을 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면 기꺼이 1루수로 옮기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말로 우승할 수 있는 팀에서 뛰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윌리엄스가 클리블랜드에 전격 영입됐습니다. (트레이드 대상자로 넘어간 선수는 훗날 샌프란시스코의 레전드가 된 제프 켄트였습니다.)

 

토미는 다음 시즌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에 일찌감치 훈련지로 이동했습니다. 매일 오전 8시부터 1루수 미트를 들고 나타난 건 너무나 토미다웠습니다. 그해 클리블랜드는 아메리칸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토미도 이후 1루수로 더 큰 활약을 펼쳐 장기적으로 자신에게도 좋은 선택을 했습니다. 훗날 토미는 이 상황을 돌아보면서, 하트 단장이 먼저 자신의 의사를 확인하고 존중해줬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습니다.

 

 

토미는 늘 스타킹을 바짝 올려 신고 그라운드에서 허슬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그러한 열정적인 모습 덕에 항상 팬들의 큰 응원을 받았습니다. 마이너리그 시절 매뉴얼의 조언을 선의로 받아들일 만큼 발전에 대한 열망도 컸던 선수였습니다. 토미는 이후 명예의 전당 입회 연설에서 매뉴얼에 대한 감사 인사를 가장 먼저 전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지도자와 선수가 진지하게, 혹은 사소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짐 토미 혹은 박병호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 건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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