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브 류스의 추억
지난해 내셔널리그챔피언십시리즈(NLCS) 4차전.
선발투수로 나선 오타니는 1회초 타자 세 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1회말 첫 타석에서 리드오프 홈런을 날렸다(1-0). 다저스 투수가 포스트시즌에서 기록한 최초의 홈런이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타니는 두 번째 타석 볼넷에 이은 4회 세 번째 타석에서 솔로홈런을 또 터뜨려(4-0)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2개의 홈런을 날린 최초의 투수가 됐다.
하지만 이것도 끝이 아니었다. 6이닝 10K 무실점으로 투수 임무를 마친 오타니는 7회 마지막 타석에서 또 솔로홈런을 날려(5-0) PS 경기 최초의 2홈런 투수에 이어 PS 최초의 3홈런 투수가 됐다.
6이닝 10K 무실점과 3타수 3홈런 1볼넷 3타점. 오타니의 충격적인 활약 속에 다저스는 밀워키를 5-1로 꺾었고, 오타니는 시리즈 MVP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오타니의 이 경기를 50-50을 달성했을 때의 6타수6안타 3홈런(2루타2) 2도루 10타점 17루타 경기와 월드시리즈 3차전의 4타수4장타 5볼넷 2홈런(2루타2) 3타점 9출루 경기를 제치고 야구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로 꼽았다. 그야말로 ‘Welcome to the Sho’였다.
12번의 사이영 수상이 역대 최다인 다저스는 방망이 실력이 뛰어난 투수도 많았다.
초대 사이영상 수상자(1956)인 돈 뉴컴은 뉴욕 신문들이 다저스 타자들의 성적 옆에 뉴컴의 타격 성적까지 실을 정도였다. 돈 짐머의 회고에 의하면, 뉴컴은 원 바운드에 가까운 공도 쳐낼 정도로 최고의 낮은 공 히터였다. 뉴컴은 가끔씩 8번 타자로도 나섰다.
영구결번 투수인 돈 드라이스데일 역시 한 시즌 2개의 대타 홈런을 비롯해 통산 29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23승을 따낸 1965년에는 7개의 홈런과 타출장 .300 .331 .508을 기록했다. 그 해 장타율이 가장 높았던 다저스 타자는 .391인 루 존슨이었다.
1981년과 1983년에 실버슬러거를 수상한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는 통산 10홈런 84타점을 기록했다. 타격 실력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토미 라소다 감독은 19번이나 대타로 출전시켰다. 발렌수엘라의 통산 대타 타율은 .368(19타수7안타)였다. 라소다는 연장 경기가 길어지면 발렌수엘라를 1루수나 좌익수로 내보내기도 했다.
오렐 허샤이저는 1993년에 타출장 .356 .373 .411를 기록하고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그 해 다저스 타자 중 허샤이저보다 출루율이 높았던 선수는 1번 타자인 브렛 버틀러(.387)가 유일했다. 허샤이저는 발렌수엘라, 잭 그레인키와 함께 사이영상 실버슬러거 골드글러버를 모두 따낸 역대 세 명 중 한 명이다.
대런 드라이포트(통산 6홈런)와 함께 장타력이 뛰어났던 박찬호는 통산 홈런이 세 개에 달한다. 2000년에는 7이닝 무실점 승리와 완봉승을 달성한 경기에서 홈런을 터뜨렸고,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홈런을 친 2009년 경기도 선발로 7이닝 4실점을 기록했다.
커쇼, 그레인키, 류현진이 ‘서유기 트리오’로 활약했을 때, 이들은 타격 실력도 뛰어났다.
범가너가 등장하기 전까지 방망이 실력이 당대 최고였던 그레인키는 통산 9개의 홈런을 날렸다. 마지막 홈런(2019)의 제물은 커쇼였다. ‘피칭은 비지니스, 타격은 놀이(fun)’라는 명언을 남긴 그는, 다저스와 계약한 이유에 대해 “타격을 하고 싶어서”라고 하기도 했다.
커쇼는 통산 홈런이 하나이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때려냈다. 커쇼는 2013년 개막전에서 0-0 균형을 허무는 홈런을 8회말에 날렸고, 9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개막전 완봉승과 결승 홈런을 달성했다.
류현진의 방망이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류현진은 데뷔 시즌에 네 개의 장타(2루타 3개, 3루타 1개)를 날리고 5타점을 올렸다. 현지 언론은 베이브 루스에 빗대 ‘베이브 류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더 대단한 건 번트 실력이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메이저리그 투수 중 류현진보다 번트를 더 잘대는 투수는 없었다.
다저스에서 마지막으로 뛴 시즌인 2019년 9월22일. 류현진은 0-1로 뒤진 5회말 선두타자로 등장해 1-1 동점을 만드는 솔로홈런을 콜로라도 안토니오 센사텔라를 상대로 때려냈다. 류현진의 동점 홈런 후 다저스는 무사 만루를 잡았고, 벨린저가 역전 만루홈런을 터뜨렸다(5-1). 그 경기에서 류현진은 7이닝 8K 3실점 승리를 따냈다.
류현진의 2019년 홈런이 더 의미가 있는 건, 류현진의 홈런이 엄밀하게 말해 다저스 투수가 친 마지막 홈런이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2020년 단축 시즌 때 내셔널리그의 투수 타석을 일시적으로 취소했고, 2022년부터는 아예 투수 타석을 폐지했다. 2021년 시즌 최종전에서 로건 웹은 홈런을 날린 마지막 투수가 됐다.
물론 오타니는 다저스 이적 후 2년 동안 PS 포함 120개의 홈런을 날렸고, NLCS 4차전에서는 투수로 나선 경기에서 세 개를 터뜨렸다. 하지만 투수와 지명타자의 역할이 분리되는 ‘오타니 룰’이 생겼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투수로 나선 경기에서 지명타자로 때려낸 홈런이었다. 물론 이는 엄밀히 따졌을 경우다.
오타니가 아닌 다저스 투수가 타석에 등장해 홈런을 때려내는 장면은 언제 연출될 수 있을까. 한국인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치는 일이 다시 생길 수 있을까.
그때까지 류현진의 2019년 홈런은 마지막 한국인 투수의 홈런이자 오타니를 제외한 다저스 투수의 마지막 홈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