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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의 저주? 그딴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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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좀 오래된 건물에는 4층 표시가 없는 곳이 꽤 있습니다.
3층 다음에는 5층으로 가거나, 아니면 4 대신에 F를 적어놓은 건물도 있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죽을 4자'라는 표현을 예전만큼 자주 들을 수는 없는 것 같은데, 예전에 4자는 동아시아권에서는 기피 숫자였습니다.
그건 '숫자 4(四)'와 '죽을 사(死)'가 한국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발음이 같아서 예전 사람들이 꺼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화에 따라 불길하게 생각하는 숫자가 다 다르다지요. 

 

이탈리아의 경우는 17번이 불길한 숫자라고 합니다. 
1990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마지막 페널티킥을 실축해 아르헨티나에 승리를 안겼던 스타플레이어 로베르토 도나도니는 등번호 17번을 달고 있었습니다.
4년 뒤 미국 월드컵에서는 번호를 배정하다가 스트라이커인 로베르토 바지오에게 17번이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관계자들은 4년 전의 악몽이 떠올라 17번을 바지오에게 주지 않고 미드필더인 알베리고 에바니에게 주었답니다.
왜 17번을 아예 제외할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에바니는 준결승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쓰러져 결승전에 나가지 못했고, 바지오는 원래 자신의 등번호이던 17번의 저주인지 모르겠지만 결승전에서 또 페널티킥 실축을 하고 말았지요. 
바지오가 골대 밖으로 공을 냅다 차버린 그 순간을 직접 로즈보울 경기장에서 취재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우리 대표팀도 스페인, 독일을 상대로 선전했지만 아쉽게 예선 탈락했는데, 장장 40여 일간 미국 월드컵 취재를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런 불길한 숫자가 바로 13번입니다.

물론 미국뿐 아니라 서양 대부분의 나라에서 13은 기피의 숫자입니다. 고대 인도에서도 13이라는 숫자를 혐오했다고 합니다. 요즘도 인도에서는 13일을 불길한 날로 여기며 아예 종일 물 한 모금도 안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왜 13이 불길한 숫자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그중에 두 가지 설이 유력합니다. 

그 하나는 12가 완벽한 숫자인데 거기에 1을 더하면서 완벽함을 깨기 때문에 13은 기피 대상이라는 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인정받는 설은 최후의 만찬에서 13번째 손님이 바로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은 여러 문화에서 배신과 재앙의 숫자로 여겨집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팀 중에는 아예 선수들에게 13번은 주지 않는 구단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항아(?)들은 늘 있기 마련입니다.

 

뉴욕 양키스는 1929년부터 유니폼 등판에 선수들의 고유 번호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3번을 단 선수는 8년 후에야 처음 나타났습니다.
1937년 레드 러핑이라는 선수가 양키스 선수로는 최초로 13번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리 스타인이라는 투수가 13번을 한 시즌 달더니 다시 백넘버 13번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 클리프 메입스라는 선수가 13번을 달았는데 자의에 의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원래 3번을 달았던 그는 그 번호가 베이브 루스의 영구 결번으로 결정되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3이 들어간 숫자인 13번을 달기로 했습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1932년부터 백넘버를 달았는데 16년 뒤인 1948년에야 커비 히그비라는 투수가 13번을 처음 달았습니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빌 쇼어스는 1931년 13번을 단 최초의 AL 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13번을 달고 뛴 선수들을 꽤 많습니다. 
그중에 존'블루문'오덤이라는 투수는 야구 생애 동안 내내 13번을 달기도 했습니다. 1964년 캔자스시티 시절부터 13번을 달았던 오덤은 초등학교 때부터 달았던 13번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덤도 딱 하루 13번을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1968년 워싱턴 세네터스와 경기를 앞두고 오덤은 13번에서 10번으로 번호를 바꿨습니다. 마침 10번을 달고 있던 포수 데이브 덩컨이 2주간 군사 훈련을 받으러 가자 오덤은 딱 하루만 10번을 대신 달았는데, 그 이유는 3년 연속으로 10승 달성에 아깝게 실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3번을 버리고 10번을 달고 마운드에 오른 오덤은 그날 1안타 완봉승으로 개인 첫 한 시즌 10승째를 따냈습니다. 그러나 오덤은 다음날 곧바로 다시 13번으로 돌아갔는데, 13년간 빅리그에서 뛰고 은퇴했습니다.

 

이렇게 13번을 고집하는 선수들도 꽤 있습니다. 
대부분 구단 직원들이나 클럽하우스 직원들은 아예 13이라는 숫자가 팀에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태도인 데 반해 꼭 13번을 달겠다는 선수들이 나옵니다.
슈퍼스타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모으던 보비 발렌타인도 현역 시절 13번을 줄곧 달았지만, 기대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973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이적한 후에 결국 13번을 11번으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바꾼 이유요?
그해 발렌타인은 투수의 공에 맞아 턱뼈가 부러지고, 수비를 하다가 외야 펜스에 부딪혀 다리도 골절됐으며, 그라운드볼에 맞아 코뼈가 부러지자 결국 13번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1951년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와의 플레이오프의 역사적인 최종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은 랄프 브랑카 투수의 백넘버도 13번이었습니다.
당시 다저스는 8월11일까지도 자이언츠에 13.5게임차로 앞서 NL 우승은 확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자이언츠가 16연승을 거두는 등 기적 같은 추격전 끝에 양 팀이 정규 시즌을 96승 58패 동률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벌어진 3게임 플레이오프는 1승 1패로 3차전까지 갔고, 3차전 막판 다저스는 9회말 4-1의 리드를 잡고 있었습니다.
자이언츠가 1점을 따라붙었지만, 여전히 4-2. 그런데 주자 두 명이 나간 가운데 타석에 나선 보비 톰슨이 역전 3점포를 터뜨리면서 다저스는 침몰했습니다. MLB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였고, 끝내기 홈런을 맞은 브랑카 투수는 다음 시즌 백넘버를 12번으로 바꿨습니다.

 

 
MLB 사상 가장 유명한 13번 선수라면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1993년 18세에 시애틀에 드래프트 됐을 때부터 당돌하게도 대부분 기피하던 13번을 선택하며 기질을 드러냈습니다. 
텍사스와 양키즈를 거치며 통산 696홈런, 2,086타점, 3,115안타를 치는 대기록과 함께 유격수의 새로운 전형으로 빅리그를 지배했습니다. 말년 금지약물에 연루되는 등 구설수에 오른 후 4번의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득표율 40%에도 못 미쳤지만, 은퇴 후 방송, 비즈니스 등 활발한 활동과 함께 청소년에게 금지약물의 위험성에 대한 강의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16년간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좌완 빌리 와그너 역시 휴스턴 시절부터 줄곧 13번을 달았습니다.
통산 422세이브를 기록한 와그너는 2025년 명전 투표에서 82.5%를 얻어 영광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메츠 캠프에서 그를 만났을 때 키가 별로 크지 않아 놀랐는데, 오승환처럼 탄탄한 체격에 강속구를 뿌리던 투수였습니다. MLB 투수들의 평균 신장은 190cm인데 와그너는 기록상 178cm지만 눈앞에서 보니 그보다는 분명히 작았습니다.

그 외에도 유격수 수비의 달인으로 골드글러브를 독차지했던 오마 비스켈과 현역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애틀랜타의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 그리고 볼티모어 시절부터 현재 샌디에이고까지 활약 중인 매니 마차도도 13번을 단 스타 플레이어들입니다.

징크스나 기피 번호 등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그걸 다스리는 건 마음과 노력과 재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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