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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위의 마술사 ‘Magic’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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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위의 마술사 ‘Magic’ 존슨
그가 부린 7가지 마술 혹은 마법에 대하여

 

 

 

 

 

방금까지 옆에 있던 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검은 모자에서는 귀여운 토끼가 나오고, 하얀 손수건을 몇 번 흔들면 비둘기로 바뀌기도 한다. 심지어 옆에 있던 사람이 순간이동, 공중부양도 한다.

 

 

 

 

 

ⓒ hotel-magic.com

1990년대 명절 TV 편성표의 단골 메뉴였던 마술쇼의 장면들이다.

 

마술(魔術, Magic)이란 사전에서 재빠른 손놀림이나 여러 가지 장치, 속임수 따위를 써서 불가사의한 일을 하여 보임. 또는 그런 술법이나 구경거리로 정의하고 있다.

 

무대 위 장면들이 정교한 트릭(Trick)임을 알면서도 실제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마법사의 마법은 아닐까 한 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 abcnews.go.com

 

1980~90년대 코트 위에서도 마술을 부리는 선수가 있었다. LA 레이커스의 어빈 에페이 존슨 주니어(Earvin Effay Johnson Jr.). 우리는 그를 매직 존슨(Magic Johnson)’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1979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을 받고 LA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13시즌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5번의 NBA 우승, ▲시즌 MVP 3, ▲파이널 MVP 3, ▲어시스트왕 4, ▲스틸왕 2, All NBA 10회 선정, ▲올스타 12회 출전(올스타전 MVP 2) 등 마술, 아니 마법 같은 커리어를 쌓았다. 레이커스 구단은 19922월 그의 등번호(#32)를 영구결번 처리했고, 20026월엔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그가 코트 안과 밖에서 부렸던 7가지 마술 같은 일들을 소개한다.

 

 

 

 

 

 

 

노 룩 ‘Magic’

 

존슨은 고등학교 시절 한 경기에서 36득점 18리바운드 16어시스트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 이를 본 지역 신문기자가 마술 같다는 의미에서 매직(Magic)’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이때부터 본명 대신 매직 존슨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 nba.com

 

이후 매직존슨의 고유명사가 됐다. 신기에 가까운 드리블 이후 동료를 쳐다보지 않고 패스하는 일명 노 룩 패스(No Look Pass)’의 영향이 크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패스가 가능했을까? 존슨은 동료 선수들의 연습 장면을 꾸준히 지켜보고 그들의 동작과 작은 습관 하나까지 파악했다고 한다. 그들의 움직임과 위치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눈으로 보지 않고도 완벽하게 패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검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도 관객이 고른 카드를 정확히 집어내는 마술사처럼 존슨은 주황색 농구공을 자신의 시야에도 없는 동료에게 정확히 전달했고, 그 공은 바로 득점으로 연결되곤 했다.

 

그렇게 기록된 통산 어시스트 개수는 무려 10,141에 달한다. 게임당 평균 어시스트로 환산하면 11.9, 전체 1.

 

 

 

 

 

 

 

포지션 ‘Magic’

 

키 크면 센터, 작으면 포인트가드라는 공식을 무너뜨린 선수도 매직 존슨이다. 포인트가드는 공을 운반하고 지키며 동료가 득점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한다. 드리블과 시야, 전술 이해도, 리더십 같은 역량이 요구된다.

 

그래서인지 포인트가드 포지션에는 상대적으로 키 작은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상 최고 포인트가드로 꼽히는 존슨의 키는 206cm에 달한다.

 

 

 

 

ⓒ nba.com

 

포인트가드는 득점보다 패스와 경기 조율에 전념하기에 다른 포지션에 비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포인트가드의 역할이 그 어느 포지션보다 중요하다. 한때 존슨은 포인트가드를 맡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키 작고 빠른 선수들을 수비하기에 큰 키가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존슨은 큰 키 덕분에 가드·포워드·센터 등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존슨의 루키 시절인 1980LA 레이커스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NBA 파이널(당시 ‘NBA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맞붙었다.

 

시리즈 전적 3:2로 레이커스가 앞서고 있었지만, 주전 센터인 카림 압둘 자바가 발목 부상으로 6차전 원정 경기에 뛸 수 없게 됐다. 압둘 자바LA에 남아 치료에 전념하며 마지막 7차전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 nba.com

 

하지만 123:107. 슈퍼 루키 존슨이 6차전에서 경기를 끝내버렸다. 존슨은 큰 키 덕분에 압둘 자바의 포지션인 센터로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존슨은 이날 경기에서 42득점, 15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NBA 우승으로 이끌었고 자신은 파이널 MVP까지 차지했다.

 

존슨은 득점하는 법을 아는 선수였고, 동시에 팀이 승리하는 법도 아는 선수였다.

 

 

 

농구란 동료를 더 나은 선수로 만드는 게임이다.”

“Basketball is about making your teammates better.”

 

- 매직 존슨(Magic Johnson)

 

 

 

 

 

 

 

 

 

순간이동 Magic

 

 

 

1990-91시즌 매직 존슨이 입었던 저지다. 존슨은 1991시즌에도 올스타에 선정됐고, All-NBA 퍼스트팀에 포함됐다. 완벽한 전성기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1991년이 마지막 풀 시즌 출전 해가 될 줄은 몰랐다. 존슨에게도 시련이 찾아온 것이다.

 

 

 

 

ⓒ latimes.com

 

존슨은 19911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에이즈(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 : 후천성 면역결핍증)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돌연 은퇴를 선언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 sandiegouniontribune.com

 

에이즈 환자의 침이 묻거나 닿기만 해도 사망등 과장된 소문들이 떠돌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존슨의 인기는 꺾일 줄 몰랐다.

 

1991-92시즌 올스타 득표에서 서부 컨퍼런스 가드 중 2, 서부 컨퍼런스 전체 4위의 득표를 기록한 것이다. 단순 투표로 그치지 않고, 실제 올스타전 경기에 뛰었다. 은퇴한 존슨코트 위로 순간이동하는 마술을 선보인 것이다.

 

 

 

 

ⓒ nba.com

 

존슨은 이날 25득점으로 최다 득점을 기록했고, 올스타 게임 MVP로 선정됐다.

 

또한 종료 14.5초를 남기고 3점슛을 성공시켰다. 이때 선수들이 코트로 몰려나와 존슨을 축하하고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경기는 아름답게 종료됐다.

 

 

 

 

 

 

 

앵콜 Magic

 

팬들은 마이클 조던만으로 그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던 것 같다. 끊임없이 앵콜을 외쳤다. 매직 존슨관객의 앵콜 요청에 화답하는 아이돌 가수처럼 코트 위로 2번이나 다시 걸어 나왔다.

 

 

 

 

ⓒ basketballforever.com

 

첫 번째 앵콜 무대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었다. NBA 드림팀 1기에 뽑힌 그는 총 8경기에 출전했고, 가볍게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사실 출전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였다. 에이즈 환자와 같은 공간에서 땀을 흘리며 부대끼는 장면을 세계로 송출한다는 것. 어쩌면 존슨은 편견을 깨기 위한 몸부림을 선택한 건지도 모른다.

 

올림픽은 세계 각국이 함께하는 경쟁의 장이자, 문화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상호 이해와 존중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무대다. 분명 존슨의 플레이에는 올림픽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 nba.com

 

두 번째 앵콜 무대는 1995-96시즌이었다. 199621일 존슨은 36의 나이로 4년 반 만에 다시 코트 위로 돌아왔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경기였다. 1쿼터가 시작한지 3분이 지났을 무렵 존슨이 코트에 등장했고, 관중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날 존슨27분 동안 19득점, 8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팀도 128:118로 승리했다.

 

 

 

 

존슨은 복귀 후 자신의 등번호(#32)와 같은 32경기를 뛰었다. 이 기간 팀은 2210패를 기록했다. 존슨의 복귀는 성공적이었지만, 선수로서의 명예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한 복귀는 아니었다. 당시 구단주의 강력한 요청과 일종의 팬서비스 차원의 이벤트였다.

 

팬들에겐 충분히 훌륭한 앵콜 무대였다. 팬들도 더 이상 앵콜을 요청하지 않았다.

 

 

 

 

 

 

 

조던 Magic

 

마이클 조던 이전 최고 스타는 역시 매직 존슨이었다. 존슨1980년대 LA 레이커스를 이끈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라면, 조던1990년대 시카고 불스를 이끈 최고의 슈팅가드였다.

 

 

 

 

ⓒ talksport.com

 

4살 많은 선배 입장에서 존슨 조던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꼈을 만도 하다. 하지만 조던 앞에서는 존슨도 순한 양이 된다.

 

NBA GOAT(Greatest Of All Time) 논쟁에서 마이클 조던르브론 제임스는 빠지지 않는 단골 손님이다. 존슨은 이 질문에도 망설임이 없다. 존슨조던이 코트에서 성취한 것을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조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과 영향력을 가졌다고 강조한다.

 

사실 존슨을 은퇴시킨 건 ‘HIV’가 아니었다. 조던이었다. 두 번째 은퇴를 결심한 계기가 조던의 충고였기 때문이다.

 

 

 

 

ⓒ nba.com

 

199623. 코트로 복귀한 존슨조던과 스코티 피펜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와 경기를 가졌다. 이날 존슨15득점, 3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조던(16득점)피펜(30득점)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레이커스는 불스에 84:99로 패했다.

 

단순히 조던과의 기량 차를 느껴 은퇴한 건 아니었다. 경기가 끝난 후 조던이 존슨을 라커룸 옆으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지금 알아야 한다.

너는 카림 압둘 자바와 함께 있지 않고, 제임스 워디와 함께 있지도 않다.

너와 함께 뛰던 쇼타임은 더 이상 레이커스에 없다.

그러니 은퇴를 생각해야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후배의 당돌한 도전장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선배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이기도 했다.

 

그해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휴스턴 로키츠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2주 후 36세의 존슨조던의 충고대로 32번 유니폼을 다시 입지 않았다

 

마술 같은 언변으로 존슨도 은퇴시켰으니 마이클 조던매직 조던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변신 Magic

 

노란 유니폼을 벗은 매직 존슨은 사업가로 변신했다. LA 레이커스 부사장직과 함께 ‘Magic Johnson Development Corporation(Magic Johnson Enterprises)’이라는 기업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 magicjohnson.com

 

존슨은 미국 전역에 100개가 넘는 스타벅스와 버거킹 체인점을 두고 있고, 피트니스 센터, 매직 존슨 극장도 갖고 있다.

 

 

 

 

ⓒ latimes.com

 

존슨은 눈앞의 돈을 좇거나 즉흥적인 결정으로 투자나 사업을 하지 않았다. 흑인과 히스패닉을 위한 지역 공동체를 설립하고 이들의 권익 향상에 힘썼다.

 

존슨은 사업을 위해 지역 갱 리더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존슨HIV 진단을 받은 1991년 첫 은퇴 이후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LA 흑인 지역에 영화관을 열었다. 하지만 갱들이 우글거리는 흑인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건 위험하다며 존슨의 사업을 말리는 지인들이 많았다.

 

존슨은 두 갱단의 지도자들을 만나 담판을 짓기로 했다. 당시 약 35명의 갱단원이 나타났다고 한다.

 

실제로 존슨나는 당신들 중 한 명도 무시하려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이 영화관이 전체 흑인 커뮤니티를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우리 영화관에 오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가족이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영화관 안팎에서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고용하겠다라고 그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 gettyimages.com

 

존슨은 201220억 달러에 LA 다저스를 인수했고, WNBALA 스파크스 구단주이기도 하다.

 

특히 2013 류현진LA 다저스 입단식에도 모습을 드러내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인물이다.

 

2025년 기준 그의 재산은 15억 달러로 추정된다. 한화로 2조원이 넘는다. 이제 존슨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흑인 사업가 5명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이쯤 되면 존슨은 정말 마술사가 맞는 것 같다.

 

 

 

 

 

 

 

가면 Magic

 

매직 존슨 웃는 상이다.

 

 

ⓒ si.com

 

 

 

 

“My smile was my weapon.”

내 미소는 나의 무기였다.”

 

- 매직 존슨(Magic Johnson)

 

 

 

미소가 자신의 무기였다는 말이 어떻게 들리는가? 밝고 유쾌한 성격으로 동료들과 관계가 좋았고 팬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는 말로 들리는가?

 

앞뒤 문맥을 살펴보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회고하는 인터뷰에서 나온 존슨의 발언이다.

 

 

사람들은 내가 그저 코트에서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미소는 무기였다. 나는 상대 선수들에게까지 웃어 보였다. 웃고 있으면, 그들은 내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People always thought I was just having fun out there. But my smile was my weapon. I smiled at everybody - even my opponents. Because when you smile, they don’t know what you’re about to do.”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승부욕마이클 조던 못지않았다. 때론 계산적일 만큼 냉정하고 영리했다.

 

마술(魔術)’ 예술(藝術)’이나 미술(美術)’과 같은 ·재주 술()’ 자를 사용한다.

 

존슨자신의 미소를 가면 삼아 코트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마술사였다.

 

동시에 자신의 관상도 승리의 도구로 활용할 줄 아는 전략가였다.

 

 

 

 

 

 

 

ⓒ si.com

 

과거 어느 위대한 예언가는 21세기가 되면 마술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마술이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즘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마술의 자리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대체하고 있다. 마법 같은 일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매직 존슨의 마술 같은 플레이들.

 

데이터에 입각한 계산되고 반듯한 2000년대 NBA도 좋지만, 다소 투박하더라도 낭만 가득했던 1980~90년대 NBA가 그리워지는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

 

 

 

 

 

 

 

ⓒ nba.com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기다리던 명절 특별 편성 마술쇼 프로그램이든,

1990년대 NBA 경기를 녹화해둔 비디오테이프 속 매직 존슨의 플레이든.

 

우리는 가끔 마술쇼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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