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하는 돈키호테’ 오타니의 ‘Impossible Dream’

‘야구하는 돈키호테’
오타니의 ‘Impossible Dream’
‘돈키호테’와 ‘오타니’의 평행이론에 대하여

까마득히 날아가는 대형 홈런을 쳐내고, 다음 이닝 바로 마운드에 올라 160km/h 한가운데 직구로 삼진을 잡아내는 투수.
야구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어느 순간 LA 다저스 경기의 익숙한 클리셰(cliché)가 되었다. 오타니 쇼헤이가 선발투수로 등판하는 날에 벌어지는 일이다.

ⓒ 카드 읽어주는 남자
오타니의 개인 커리어하이인 55개의 홈런을 기념하는 야구카드다. 우측 하단에 ‘9.28’이라는 날짜가 새겨져 있다.
9월 28일은 2025 정규시즌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9월 29일 열렸는데, 은퇴를 앞둔 클레이튼 커쇼의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 경기이기도 했다.
이날 커쇼는 5.1이닝 7K 무실점 완벽투로 자신의 마지막 등판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김혜성이 2점 결승 홈런을 터뜨린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타니는 이날 기어코 자신의 커리어하이인 55번째 홈런을 쏘아 올렸다.
정확히 478년 전, 9월 29일은 <돈키호테 : Don Quixote>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가 태어난 날(1547.9.29.)이다.
나는 돈키호테를 위해 태어났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 theguardian.com(편집 : 카드 읽어주는 남자)
<돈키호테>는 지구상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이다.
1605년 출판된 <돈키호테, 원제 : 라만차의 기발한 신사 돈키호테, 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는 세르반테스가 세비야에서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구상했다고 한다.
원래 당시 유행하던 기사도 문학을 풍자하기 위한 의도로 쓴 것이었다. 기사 문학의 비현실적인 이상을 비판하면서도, 돈키호테의 순수한 열정을 통해 인간 본성의 고귀함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문예비평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Rene Girard)는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거나 그 일부를 쓴 것이다”라는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2018년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 투·타 겸업 ‘이도류(二刀流)’를 선언한 오타니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미국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 ESPN이 시즌을 앞두고 각 구단 단장·부단장·스카우트로 이뤄진 43명의 전문가 집단 대상 설문에서도 23명이 “내년에는 한 가지만 하고 있을 것”이라고 답했었다. “여전히 투·타를 겸업할 것”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20명에 불과했다.

ⓒ 카드 읽어주는 남자
하지만 오타니는 오뚝이처럼 흔들리지언정 결코 그들의 의견에 설득되지 않았다. 우선순위도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투·타 겸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LA 에인절스의 손을 잡아주었다.

ⓒ 카드 읽어주는 남자
세상의 비웃음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모습은, 마치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민 21세기판 돈키호테 같았다.

오타니의 플레이는 시대착오적인 한 몽상가의 모험담 돈키호테 이야기와 그 궤를 같이 한다.
16세기 소설 속 ‘돈키호테’와 21세기 현실판 돈키호테 ‘오타니’를 비교해보자.
❙ 기사 소설, 그리고 만화책
스페인 라만차(La Mancha) 지역의 풍차 마을에 사는 평범한 이달고(작위가 없는 귀족 신분) ‘알론조 키하나’는 무료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기사 소설을 읽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
알론조는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탓에 자신을 기사라고 착각하고 시종인 산초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 메이저
반면 오타니는 기사 소설이 아닌 만화책을 즐겨 읽었다. 특히 만화 <메이저>의 주인공 ‘고로 시게노’를 좋아했다.

ⓒ MLB.com(Edit : 카드 읽어주는 남자)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의 오타니는 1994년부터 2010년까지 <주간 소년 선데이> 잡지에 연재된 이 인기 만화 시리즈의 팬이었다고 한다.
만화 속 ‘고로 시게노’는 애너하임과 계약한 일본의 왼손투수다. 백스크린 위 전광판을 강타하는 대형 홈런을 쏘아 올리고 시속 102마일의 직구를 뿌려댄다. 오타니가 처음 계약한 LA 에인절스의 전신은 애너하임 에인절스다.
오타니도 만화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자신을 만화 캐릭터로 착각한 건 아닐까? 이쯤 되면 만화를 바탕으로 한 실화인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화인지 헷갈릴 정도다.
❙ 돈키호테의 ‘로시난테’와 오타니의 ‘데코이’
‘알론조 키하나’는 모험에 나서기 전 자신의 늙고 삐쩍 마른 말에게 ‘로시난테(Rocinante)’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자신에게도 ‘돈키호테’라는 근사한 새 이름을 내린다.
돈키호테에게 있어서 로시난테는 그저 이동 수단이 아니다. 돈키호테가 넘어지면 로시난테도 함께 넘어지고, 돈키호테가 일어서면 로시난테도 다시 일어선다. 둘은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동지다.

ⓒ 2023 MLB TOPPS NOW #OS19 - Shohei Ohtani
오타니의 반려견 ‘데코이(Decoy)’도 마찬가지다. 둘은 친구다. 둘의 모습이 담긴 야구카드가 제작된 적도, 데코이의 시구를 오타니가 받아낸 적도 있다.
물론 데코이가 공을 물고 오타니 쪽으로 달려와 공은 건네주는 방식이었지만.

ⓒ MLB.com(Edit : 카드 읽어주는 남자)
데코이는 오타니의 애완견이 아니라 오타니의 전폭적인 지지자다. 성적이 좋을 때든, 슬럼프에 빠졌을 때든, 언제나 꼬리를 흔들며 오타니를 반기는 데코이.
데코이는 돈키호테의 로시난테처럼 오타니가 잠시 기대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 주고 있다.
❙ ‘배불뚝이’ 산초와 ‘오타니 껌딱지’ 야마모토
중세 문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바로 떠오르는 ‘브로맨스 조합’이 있다. 바로 돈키호테와 산초다.
산초 판사는 알론조 키하나의 이웃집 농사꾼이자 돈키호테의 길동무다. 여기서 판사(Panza)란 판결을 내리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배불뚝이’라는 뜻이다.
나중에 영지(領地)를 얻으면 섬의 영주로 임명해준다고 한 말에 혹해 돈키호테를 따르게 된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왈칵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 둘을 통해 우리는 꿈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된다.

ⓒ MLB.com
돈키호테에게 산초가 있다면, 오타니에겐 야마모토 요시노부(Yamamoto Yoshinobu)가 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포스팅을 신청한 야마모토는 2023년 12월 13일 LA 다저스 구단과 미팅을 가졌다.
오타니는 직접 이 자리에 참석해 야마모토를 설득한다. 심지어 그 자리에 무키 베츠와 프레디 프리먼까지 데려왔다. 결국 야마모토는 역대 투수 최대 계약 규모인 12년 3억 2,5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오타니는 어떻게 야마모토를 설득했을까? 돈키호테처럼 섬의 영주로 임명해준다고 했을까? 아니다. 역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였을 것 같다.
❙ ‘풍차’로 돌진하는 ‘돈키호테’와 ‘홈’으로 돌진하는 ‘오타니’
풍차를 괴물로 착각하고 달려드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소설을 읽지 않은 이들도 다 알 만큼 유명한 장면이다. 산초의 간곡한 충고도 무시한 채 방패로 몸을 가린 채 로시난테를 채찍질하며 풍차로 달려든다.

ⓒ MLB.com(Edit : 카드 읽어주는 남자)
타자 오타니도 마스크 쓴 포수가 풍차 괴물이라도 되는 양 무섭게 돌진한다. 몸을 사리지 않는 슬라이딩으로 기어코 홈플레이트를 태그해낸다. 유니폼이 찢어질 정도다.

ⓒ dodgers.mlblogs.com
오타니는 손으로 흙먼지를 몇 번 털어내고 유유히 다시 마운드에 오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야수들에게 있어서 공수교대 시간은 간단히 목을 축이고 야구배트·글러브 등 자신의 장비를 정비할 수 있는 달콤한 브레이크타임이다. 길어야 1분 30초.
하지만 마운드에서 내려온 오타니는 그럴 여유마저 없다. 더그아웃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앞에서 암 가드(Arm Guard), 풋 가드(Foot Guard), 배팅글러브(Batting Glove)를 차례로 착용하고, 배트를 챙긴 후 헬멧을 고쳐 쓴다.
그러고는 경건하게 타석까지 걸어가서 주심에게 웃으며 목례를 한다. 기사도 정신이 몸에 밴 돈키호테처럼.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돈키호테’와 ‘오타니’
돈키호테는 산초에게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고난에 처한 자를 구해주는 것이 방랑 기사의 의무라며, 간수들에게 끌려가는 죄수들을 구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죄수들은 돈키호테의 망토와 겉옷, 산초의 당나귀까지 빼앗아 달아난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환상의 콤비’가 아닌 ‘환장의 콤비’다.

ⓒ instagram.com/angels
오타니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적이 있다. 그의 통역이었던 ‘미즈하라 잇페이’가 불법 도박에 빠져 가족 같던 오타니의 돈을 횡령한 것이었다. 횡령 액수도 무려 240억 원에 달했다.
오타니는 잇페이를 가족처럼 대했다. 그의 아내에게도 포르쉐를 선물하고 비행기 1등석을 제공할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자신의 발등만 아플 뿐이었다. 오타니는 왜 이런 점까지 돈키호테를 닮았을까.
❙ ‘카부토’가 맘브리노의 황금투구(?)
돈키호테는 여관 주인을 성주라 착각하고 기사 작위를 수여 받기도 하고, 면도 대야를 황금투구라고 우기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 MLB.com(Edit : 카드 읽어주는 남자)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에 들어온 오타니는 일본 무사들의 전통 투구인 ‘카부토’를 쓰고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 앙리 4세의 검에 입 맞추는 톨레도의 돈 페드로
한편 중세 기사들은 주군에 대한 충성이나 신에게 맹세한다는 의미로, 십자가를 닮은 자신의 검에 입을 맞추는 제스처를 취하곤 했다.

ⓒ instagram.com/jon.soohoo(Edit : 카드 읽어주는 남자)
오타니 역시 중세 기사가 자신의 검에 입 맞추듯 자신의 배트에 조용히 입술을 갖다 댄다. 오타니에게 야구는 경기라기보다 성스러운 의식에 가깝다.
❙ 오타니의 ‘둘시네아’
하녀로 일하며 외롭고 비참한 인생을 산 ‘알돈자’는 자신을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라고 불러주는 돈키호테를 보며 혼란에 빠진다.
처음엔 정신 나간 노인 정도로 여겼지만 ‘알돈자’는 자신을 존귀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돈키호테를 통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알돈자’는 돈키호테에게 왜 자꾸 정신 나간 짓을 하느냐고 묻는다. 돈키호테는 이렇게 답한다.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를 뿐.”

ⓒ the-sun.com(Edit : 카드 읽어주는 남자)
오타니에게도 ‘둘시네아’가 있다. 아내인 ‘다나카 마미코’다. 마미코는 ‘1조원의 사나이’ 오타니를 남편으로 뒀지만, 아직도 구형 휴대전화를 쓰고 여전히 수수하고 소박한 옷차림을 한다.
선물 역시 고가의 명품이 아닌 실용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발이 편한 운동화. 사람들은 마미코가 평범하다고 말하지만, 오타니는 그 평범함 속에 감춰진 아름다움을 발견해냈다.

소설 <돈키호테>를 극중극 형식으로 각색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 Man of La Mancha>에서 ‘알돈자(둘시네아)’는 이렇게 외친다.
“당신은 내게 꿈 같은 환상을 얘기해.
허나 택도 없는 꿈 꿔서 뭐해.
날 짓밟고 지나간 수많은 놈 중에 당신이 제일 잔인해.
…
당신은 나를 절망으로 가득 채웠지. 분노만 있었던 이 자리에.
날 짓밟고 가는 건 참을 수 있으니 꿈꾸게 하지 좀 마.”
- Track 13. 알돈자(ALDONZA)
“둘시네아. 둘시네아.
당신이 찾아낸 여인 둘시네아.
천사의 속삭임처럼 들려왔죠.
둘시네아. 둘시네아.”
- Track 15. 둘시네아(DULCINEA : REPRISE)
병상에 누워 죽어가는 돈키호테 앞에서 알돈자는 자신을 기억해 달라며 울부짖는다. 불가능한 꿈을 꾸게 한 돈키호테를 저주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된다.
사실 ‘알돈자’와 ‘둘시네아’는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살면서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 ‘알돈자’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알돈자들은 꿈꾸는 것이 두렵다. 돈키호테에게 소리치는 알돈자처럼 제발 꿈꾸게 하지 말라고 울부짖는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동기부여 강사들을 장사꾼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 MLB.com(Edit : 카드 읽어주는 남자)
그럼에도 극중에서 돈키호테는 울고 있는 알돈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무릎을 꿇고 이렇게 노래한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 Track 11.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
그리고 현실 속 우리는 오타니의 플레이를 보고 대리만족을 넘어 묘한 위로의 감정까지 받는다.
아무래도 돈키호테와 오타니는 우리가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것 같다. 덕분에 우리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둘시네아’가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 오타니의 만다라트
오타니의 플레이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지만, 특히 그가 고교 시절 세운 계획표인 ‘만다라트(Manda+la+Art)’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이에 자극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꿈과 목표도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고등학생 오타니는 가로 9칸, 세로 9칸의 계획표에 실천과제와 42세까지 나이별로 달성해야 할 목표를 미리 계획했다.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8가지 세부 목표와 64가지 실행 계획이 담겨 있다.
실제로 오타니는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8개 구단 1순위 지명을 최종 목표로 몸만들기, 제구력, 구위, 멘탈, 구속, 인간성, 운, 변화구 구사 능력을 키우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 투구폼, 훈련 계획, 식단 조절, 마음가짐, 감사, 배려, 예의, 인사하기, 휴지 줍기 등 작은 단위의 목표들을 실천했다.
그리고 그 최종 목표는 현실이 되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1순위로 지명된 오타니는 5시즌(2013~2017년)을 뛰었는데, 2014년 일본 프로야구(NPB)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와 두 자릿수 홈런(11승, 10홈런)’을 달성했다.
2015년에는 ▲최우수 평균 자책점, ▲다승왕, ▲최고 승률 등 투수 부문 3관왕을 차지했고, 처음으로 투수 부문 ‘Best 9’에도 선정됐다. 2016년에도 ‘두 자릿수 승리·100안타·20홈런’을 달성했다. 특히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일조하는 등 NPB 사상 최초로 투수와 지명타자 두 개 부문에서 ‘Best 9’에 선정됐으며, 첫 리그 MVP까지 거머 쥐었다.
고등학생 오타니가 빼곡히 채워 넣은 ‘만다라트 81칸’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이라는 목표는 어디까지나 ‘고등학생 오타니의 목표’였을 뿐이다. 프로선수가 된 오타니의 다음 목표는 ‘메이저리거’였다. 그것도 ‘투·타 겸업’ 메이저리거.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앞둔 2017시즌. 오타니는 이번엔 종이 위가 아닌 자신의 유니폼 안에 ‘땀이라는 펜’을 이용해 ‘투·타 겸업 메이저리거’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한 세부 과제들을 차근차근 채워나갔다. 오타니가 NPB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2017년) 착용한 이 재킷은 일본 무대에서의 마지막을 기념함과 동시에 메이저리그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이 재킷은 ‘오타니의 두 번째 만다라트’인 셈이다.

그런 오타니가 또 사고를 쳤다. 지난 11월 오타니가 자신의 SNS를 통해 202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회에 출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난 2023 WBC 대회에서 오타니는 타자로 7경기 출전, 타율 0.435 10안타 1홈런 8타점을 기록했다. 투수로는 2번의 선발, 1번의 마무리로 등판해 2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86이라는 만화 같은 성적을 냈다.
특히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9회 초 3:2로 앞선 상황에서 마무리로 등판해 무키 베츠를 병살타, 마이크 트라웃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자신이 직접 우승을 확정 지었다.

ⓒ MLB.com(Edit : 카드 읽어주는 남자)
그걸로도 모자랐을까? 오타니는 일본대표팀으로 뛰는 것을 자신의 임무이자 본분, 아니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돈키호테가 가는 길에 산초가 빠지면 무슨 재미일까. 야마모토 역시 출전을 확정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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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지구 곳곳에 영토를 둔 덕분에 24시간 내내 ‘해가 지지 않는 제국(El imperio donde nunca se pone el sol)’이라 불리는 국가들이 있었다. 스페인 제국(1492~1898년)도 그중 하나였다. 돈키호테의 배경이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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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027, 2028, 2029, 2030 … 오타니를 비추는 햇살도 앞으로 계속될 것 같다.
오타니가 서있는 땅은 어디든 해가지지 않는 제국이 된다. 오타니의 소속팀 LA 다저스와 일본 국가대표팀도 마찬가지다.
멀리서 돈키호테와 산초의 대화가 들려오는 것 같다.

ⓒ MLB.com(Edit : 카드 읽어주는 남자)
· 산초(야마모토) : 네~ 주인님~!
· 돈키호테(오타니) : 어서 나의 갑옷과 칼, 아니 배트와 공을 준비해라!
· 산초(야마모토) : 또 사고를 치시려고요~!

꿈꾸기를 허락하지 않는 삭막한 사회에서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와 오타니는 우리에게 이런 화두를 던진다.
돈키호테는 몽상에 그쳤지만, 오타니는 50홈런·50도루, 3회 연속 MVP 등 만화 같은 일들을 현실로 가져다 놓기까지 한다. 오타니의 플레이는 돈키호테의 변주곡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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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못 본 척하지 않고, 아무도 관심 없는 볼보이와 기꺼이 친구가 되어 주는 오타니.
자신의 리틀 야구 시절 은사인 감독에게 아직도 연하장을 보내고, 초등학교 후배들에게 “야구하자!(野球しようぜ!)”는 메시지가 담긴 글러브를 한가득 보내는 오타니.
이런 오타니를 보는 것은 좋은 책 한 권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매거진
그런 의미에서 오타니는 일종의 문학이고, 야구는 그런 오타니를 잘 설명해주는 언어인 셈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고전이 사랑받는 것처럼 오타니라는 선수, 아니 오타니라는 문학은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돈키호테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