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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오티스와 행크 에런이 호텔에서 겪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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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N 캐스터로 활동하는 존 시암비는 2016년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에서 데이비드 오티스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당시 보스턴의 시카고 컵스 원정 경기에 동행했던 시암비는 경기장을 가기 위해 나서다가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오티스를 만났습니다. (경기 일정을 파악해 보면 20126월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소소한 대화를 이어가던 도중 두 개 층 아래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소년 두 명이 올라탔습니다. 오티스와 시암비는 잠시 대화를 멈췄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침묵이 흐르던 중 소년 한 명이 고개를 돌려 오티스를 보고, 또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입을 열었습니다.

 

아저씨, 혹시 제가 아는 그 사람인가요?”

 

이런 분위기가 낯설지 않은 오티스는 특유의 밝은 미소를 띤 채 여유 있게 답했습니다.

 

지금 네가 누굴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모르지.”

 

그런데 소년의 답변은 오티스의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플로-라이다?”

 

2000년대 후반 빌보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유명 래퍼 플로-라이다(Flo-Rida)와 자신을 착각한 소년의 반응에 오티스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엘리베이터를 내린 뒤 폭소를 터뜨렸다고 합니다. 이미 리그 홈런왕과 타점왕을 경험하고 올스타에도 여러 차례 뽑힌 MLB 대표 스타 오티스에게 굳이 말을 건 소년이, 실은 오티스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니. 이 상황이 너무나 웃긴 나머지, 오티스는 시암비를 리글리 필드의 보스턴 원정 클럽하우스로 데려가, 자신의 동료들 앞에서 에피소드를 알리게 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전말입니다.

 

 

지극히 사소하지만, 오티스의 유쾌한 면모는 물론, 평소의 품행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일화입니다. 보스턴 팬들은 이렇게 친근하고 넉넉한 성품의 오티스를 프랜차이즈 스타로 여기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다만 보스턴 팬들이 오티스에 깊은 애정을 갖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오티스는 시애틀 마이너리그에서 성장하다 미네소타로 이적해 가능성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수비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방출됐고,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추천 덕에 보스턴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오티스는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MVP급 거포로 발돋움해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보스턴에서 전성기를 보내는 동안 굵직한 활약도 남겼습니다. 2004년 보스턴이 '밤비노의 저주'를 끊고 86년 만의 우승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고, 2007년에도 주축 타자로 월드시리즈 정상을 함께 했습니다.

 

 

2013년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415일 보스턴 마라톤 코스에서 끔찍한 테러 사건이 터지면서 보스턴은 물론 인근 지역 전체가 최악의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태가 조금씩 수습되며 힘겹게 충격을 덜어가는 과정에서 보스턴 선수들은 ‘Boston Strong’이라는 구호를 만들고 팬들에게 힘을 보태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419일 용의자가 체포돼 사태가 진정 국면을 맞았습니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맨헌트에 따르면 보스턴시와 경찰 당국은 다음 날인 420일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경기 식전 행사를 통해 도시가 평온을 되찾았음을 알리는 선포식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많은 관중이 야구장에 모인 가운데, 테러 희생자와 구조 대원들을 기리는 행사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하기까지 잠시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 오티스가 마이크를 들고 나섰습니다.

 

오늘 우리 유니폼에는 레드삭스 대신 보스턴이 적혀 있습니다.” 오티스가 말문을 열자, 관중들이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구조 대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오티스는 그 유명한 한 마디를 외쳤습니다.

 

우리 도시 건드리면 된다. (This is our fucking city.) 누구도 우리의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어! 모두 힘냅시다.”

 

오티스의 연설은 일상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막막하던 보스턴 시민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덩이를 던졌습니다. 그 어떤 정치인도 해주지 못한 강력하고 직접적인 위로였습니다. 펜웨이파크 특유의 분위기에 뜬금없이 비속어를 섞어 내뱉은 구호가 오히려 더 진정성 있는 자극을 전달한 것입니다. 도시 전체의 긴장감이 해소됐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생방송 중 비속어를 사용할 경우 연방통신위원회의 제재를 받게 되지만, 연방통신위원장은 오티스의 발언을 오히려 공개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이후 ‘This is our fucking city.’는 보스턴을 하나로 뭉치게 한 역사적인 문구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전년도 동부지구 최하위 팀이던 보스턴은 이후 승승장구한 끝에 지구 우승을 거쳐 월드시리즈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해 월드시리즈에서 오티스는 무려 16타수 11안타 2홈런의 맹타를 휘둘러 시리즈 MVP를 차지하며 극적인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여전히 금지 약물 관련 이슈로 인해 오티스에 우호적이지 않은 시각도 있지만, 적어도 보스턴 안에서는 지역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인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가 반영돼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 홈런왕행크 에런도 호텔과 얽힌 소소한 일화가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전문 월간지 베이스볼 다이제스트는 뉴욕 타임스의 전설적인 칼럼니스트 데이브 앤더슨의 경험을 통해 에런의 면모를 전한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에런의 뉴욕 원정 숙소에서 시작됩니다. 잡지에서는 에런이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뉴욕 원정을 간 상황이라고만 서술되어 있어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습니다. 에런은 뉴욕 자이언츠와 뉴욕 메츠, 뉴욕 양키스 등 다양한 뉴욕 팀을 상대로 원정 경기를 치른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홈런왕에 대한 언급이 있는 만큼 선수 경력 초기나 중반은 아닐 것으로 추측합니다.

 

당시 뉴욕 원정 경기를 준비하던 에런은 뭔가 깜빡한 것이 있어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앤더슨은 그때 에런과 함께였습니다. 자신의 호텔 객실 앞에 도착한 순간, 에런은 객실 열쇠를 어딘가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다행히 복도 다른 편에 호텔 하우스키퍼가 있었고, 에런은 조용히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죄송한데요. 제 방을 좀 열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열쇠를 깜빡해서요. 저는 그냥 야구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에런이 자신을 소개하는 말로 선택한 것은 야구 선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베이스볼 다이제스트는 제가 바로 행크 에런입니다혹은 저는 통산 최다 홈런왕입니다라는 말 대신 그 상황에서 최대한 단출하게 자신을 소개한 것이 에런의 성품 전체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에런은 선수 생활 내내 주변의 여건에 개의치 않고 자극적인 언행 대신 실력으로 일관성 있게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에런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표출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에 접근하던 시점에 온갖 협박을 받았지만, 묵묵히 배트를 휘둘렀고, 사회 공헌 재단을 통해 미국 내 흑인 사회와 소외 계층에 기여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갔습니다. 재키 로빈슨이 겪은 무수한 고통을 반복해서 경험하고도 흑인들의 성취를 몸소 보여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나 자신보다 더 존경하는 유일한 사람.” 무하마드 알리가 남긴 행크 에런에 대한 한마디가 모든 것을 함축합니다.

 

오티스와 마찬가지로 에런 역시 야구 실력뿐 아니라 삶에서 드러난 면모가 대중에게 더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가 스포츠 선수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졌습니다. 야구 선수가 야구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말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선수들에게 야구 외적인 활동이나 발언을 강요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스포츠 선수라도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만큼, 위상에 걸맞은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그런 순간에서 보여주는 사소한 언행 하나가 스포츠 선수의 의미를 되짚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 시즌이 끝나고 FA 계약 소식이 이어지는 시기가 올 때마다 미디어에서는 선수의 값어치와 돈의 규모에 집중합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습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는 선수들도 사회 구성원으로 주목받고 재평가되는 장면을 한 번쯤은 기대하게 됩니다. 꼭 거창한 메시지를 던져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야구 선수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임을 공감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최동원 선수를 그리워하고, 그 이유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역동적인 투구폼과 강속구, 폭포수 커브만으로 최동원을 기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티스, 에런, 그리고 최동원이 보여준 다양한 면모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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