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죄수냐??!!' - 야구 등번호의 유래
선수의 고유 번호는 브랜드이자 서사이고, 기억을 담는 상징 자산으로 기능도 합니다.
11번 하면 최동원, 36번 하면 이승엽, 47번 하면 이상훈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프로야구의 오랜 팬이십니다. ^^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등번호의 유래는 언제부터였을까요?
프로야구의 원조인 메이저리그(MLB)에서는 언제부터 등번호(uniform number)를 달기 시작했을까요?
MLB 역사는 1916년에 최초로 유니폼 번호가 등장한 것으로 확인합니다.
1916년 6월 26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시카고 커브스의 더블헤더 첫 경기에서 처음으로 유니폼에 번호가 새겨진 장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MLB에서 최초로 유니폼에 번호를 단 팀은 바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습니다.
재밌는 것은 시즌 시작도 아니고 두 달쯤 지나서야 처음 유니폼 번호를, 그것도 등이 아닌 왼쪽 팔에 번호를 붙였습니다.
1916년 4월 10일 시즌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인디언스 선수들은 유니폼에 번호를 달지 않았습니다. 4월의 홈경기들을 끝내고 인디언스는 5월 한 달간 원정을 떠났습니다.
한 달간 원정?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정일지 모르지만, 느리고 느린 기차를 타고 원정을 다녔던 당시에는 한 번 원정을 떠나면 한 달 이상씩 이 도시, 저 도시를 돌며 경기를 벌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정에서도 인디언스가 유니폼에 번호를 달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홈으로 돌아온 6월의 4번째 홈 시리즈인 시카고 커브스와의 경기가 26일로 예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디언스는 시즌 초반 비로 인해 연기된 경기 때문에 그날 커브스와 더블헤더를 치르게 됐습니다.
이 대목에서도 또 재밌는, 낭만의 시절 야구 이야기가 나옵니다.
갑자기 추가로 선발 투수가 필요했던 인디언스는 전 시즌까지 버팔로에서 뛰다가 야구를 집어치우고 농사를 짓고 있던 프레드 비비를 설득해 급히 첫 경기의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비비는 예상을 뒤엎는 놀라운 호투를 거듭한 끝에 단타 3개만 내주며 2-0의 완봉승을 끌어냈습니다, 경기 시간은 1시간 19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바로 그 경기에서 인디언스 선수들이 사상 최초로 유니폼 번호를 달고 뛰었습니다.
적어도 기록상으로 확실하게 남아있는 최초의 유니폼 번호가 사용된 경기였습니다. 인디언스의 잭 그래니가 1번 타자로 나왔는데 그가 20세기 최초로 유니폼 번호를 달고 공식 경기에 등장한 MLB 선수가 됐습니다.
그러나 인디언스 선수들은 등에 번호를 단 것은 아니었고 왼쪽 팔에 번호를 달았습니다. 그 번호는 당시 인기리에 판매되던 '스코어카드'의 선수 이름 옆에도 찍혔기 때문에, 팬들이 선수들을 구분하기가 너무 쉬웠다는 지역 신문 기사의 기록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팔 번호가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는 미스터리입니다.
더 이상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7월4일까지 계속된 홈시리즈 동안은 계속 번호를 달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입니다.
1917년에도 인디언스 선수들이 유니폼 번호를 달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즌에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 팔에 번호를 달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확실한 증거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당시만 해도 경기 사진을 신문에 싣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신문들이 요즘처럼 스포츠 이벤트를 상세히 보도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경기 사진을 사용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가끔 오래된 단체 사진이나 아니면 삽화가 들어가는 정도였습니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들어와 사진의 비중이 조금 커지기는 했지만, 스포츠 기사에 사진이 일반화된 것은 2차 대전 후에 35mm 카메라가 나오고 나서부터입니다.
그렇지만 유니폼 번호에 대한 팬들의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언론에서도 번호 달기를 주장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1916년 필라델피아의 '스포팅 라이프'라는 잡지는 7월 8일자 논설을 통해 '이제 팀들이 유니폼 번호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팬들에게 큰 편리함과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많이 절약할 수 있는 수단이 유니폼 번호임에도 불구하고, 구단주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스코어카드를 팔아먹으려고) 그 효율적인 제도를 외면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는 기사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경기장에 가면 선수들의 명단과 타순 등이 적혀있는 '스코어카드'를 팔았는데 구단에게는 아주 짭짤한 수입원이었다고 합니다.
타순이나 포지션을 알 수 있는 수단으로 스코어카드가 필수였기 때문에 입장한 팬들은 저마다 이것을 추가로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유니폼 번호를 달게 되면 스코어카드의 필요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구단주들은 필요성은커녕 거부 반응을 보일 뿐이었습니다.

선수들도 반대를 했는데, 그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당시까지 옷에 번호를 다는 것은 죄수들이 대표적이었습니다. MLB 선수들은 '우리가 죄수도 아닌데 무슨 유니폼에 번호를 다느냐?'며 몹시 불쾌한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유니폼에 번호 달기가 정착하기는 아직도 요원해 보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내셔널리그에서 처음 번호를 단 팀은 1923년에 가서야 나왔습니다. 그해 6월 14일과 9월 18일에 각각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들이 유니폼 왼쪽 팔에 번호를 붙이고 뛰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원정 경기에서는 번호를 달았다는 기록이 없기때문에 아마도 그 시즌 동안 홈게임에서만 번호를 달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경기들의 스코어카드가 선수들의 번호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로 남아있습니다.
1924년에도 카디널스가 유니폼 번호를 달았다는 증거가 남아있습니다.
그해 7월 17일 제시 하인스가 보스턴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5-0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스코어보드가 남아있는데, 역시 선수들의 이름 앞에 고유 번호가 인쇄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해 5월30일 피츠버그전과 6월18일 뉴욕전의 스코어카드도 남아있는데 선수들의 이름 앞에 번호는 없습니다. 그 두 경기는 원정 경기였으므로 역시 홈게임에서만 유니폼 번호를 사용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25년이나 1926년에는 카디널스 선수들이 유니폼에 번호를 달았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후에 발간된 한 야구 역사책에 따르면 '1924년 카디널스의 브랜치 릭키 단장이 선수들의 유니폼 팔에 작은 번호를 달았으나 팬들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팀에서도 카디널스의 뒤를 이어 번호를 달지 않았기 때문에 없던 일이 돼 버렸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그러다가 1929년 베이브 루스의 인기팀 뉴욕 양키즈가 처음 등번호를 달기 시작하면서 점점 리그 전체로 등번호 달기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로 여겨집니다.
다만 기록에 의하면 그 시즌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역시 등번호를 달았는데, 양키즈의 개막전은 비로 순연되면서 실제로 경기에서 처음 등번호를 단 팀은 또 클리블랜드였습니다.
어찌 보면 약간은 미국 야구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클리블랜드가 유니폼 번호에 관한한 선구자였습니다.
그리고 관중의 증가와 라디오 중계 확대, 신문 기사와 점수 기록지의 대중화 등이 맞물리며 유니폼 번호의 실용성이 확실히 입증됩니다.
1932년 무렵에는 대부분의 MLB 구단이 등번호를 상시 착용했고, 1937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가 마지막으로 번호를 도입하면서 MLB 전 구단이 등번호를 달게 됩니다.
1952년에는 브루클린 다저스가 유니폼 앞면에도 번호를 도입했고, 1960년대 들어서는 등번호 + 선수 이름이 결합한 현대적 유니폼이 완성됩니다.
그런데 옛날 기록들을 찾다가 아주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1915년에 찍은 버팔로 블루스의 사진인데 왼쪽 어깨에 번호를 단 것이 선명히 보이는 사진입니다.
1914년에 기존의 MLB에 대항하는'페드럴리그(Federal League)'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MLB 선수들을 거액의 연봉과 보너스를 주면서 마구 데려가 관계자들을 분노케 했는데 결국 재정난으로 2년 만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면 버팔로의 선수들이 분명히 유니폼 번호를 달고 뛴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최초로 유니폼 번호를 단 MLB 팀은 아니었지만, 역사상 처음 번호를 단 프로야구팀은 페드럴리그의 버팔로 블루스였습니다.
선수의 상징 정도로 여기는 유니폼 번호에도 이렇게 긴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