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짧았지만 가장 감동적이었던 연설
1800년대에 뛴 선수이거나 아직 투표 대상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 약물 논란이 없는 선수 중 가장 높은 승리기여도(bWAR)를 기록하고 명예의 전당에 가지 못한 선수는 피트 로즈(79.6)다.
역대 안타 1위(4256)이자 17번의 올스타에 빛나는 로즈는 감독 시절 자기 팀(신시내티 레즈)의 승패를 걸고 불법 도박을 했다가 영구 제명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받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로즈가 고인이 된 점을 들어 그의 사면 복권에 동의했다. 로즈는 곧 베테랑 위원회를 통한 헌액이 진행될 예정이다.
명전 실패자 중 두 번째로 승리기여도가 높은 선수는 커트 실링(79.5)이다. 실링은 정치색 논란 속에 기자들의 외면을 받자, 자신에 대한 투표를 멈춰 달라고 했다. 하지만 선수로서의 업적이 너무나 뛰어난 실링 역시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들어갈 전망이다.
둘을 제외할 경우 명예의 전당이 불발된 가장 높은 승리기여도의 선수는 루 위태커(75.1)다. 2루수인 위태커는 19년을 뛰며 2369안타를 기록했고,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가 도합 7개에 달했지만 입성에 실패했다.
반면 역시 2루수인 빌 마제로스키는 위태커보다 적은 2016개의 안타와 절반에 불과한 승리기여도(36.5)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둘의 차이는 임팩트였다. 위태커가 특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반면 마제로스키는 121년의 월드시리즈 역사에서 유일한 7차전 끝내기 홈런을 때려냈기 때문이다.
양키스가 9회초 미키 맨틀과 요기 베라의 타점으로 9-9 동점을 만든 1960년 월드시리즈 7차전. 9회말 선두타자로 등장한 마제로스키의 타구가 피츠버그 포브스필드의 왼쪽 담장 위로 날아갔을 때, 허무하게 이를 지켜본 양키스의 좌익수는 베라, 중견수는 맨틀이었다(둘은 도합 17개의 우승 반지를 따냈다). 1993년 조 카터(토론토)는 월드시리즈를 끝내는 두 번째 끝내기 홈런을 날렸지만, 카터의 홈런은 6차전에서 나왔기 때문에 최종전 끝내기 홈런은 지금도 마제로스키가 유일하다.
마제로스키의 홈런 공은 야구장 근처 공원에 떨어졌고, 공을 주운 14살 소년이 돌려주겠다고 찾아왔다. 하지만 마제로스키는 "나는 추억으로 충분하다"며 공에 사인을 해주고 소년에게 선물로 줬다. 소년은 친구들과 야구를 하다가 공을 잃어버렸고, 마제로스키의 월드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 공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마제로스키는 끝내기 홈런 말고도 큰 임팩트가 하나 더 있었다. 통산 8번에 달하는 골드글러브 수상이다. 마제로스키보다 더 많이 따낸 2루수는 10번을 수상한 로베르토 알로마와 9번을 수상한 라인 샌버그뿐이다.
마제로스키의 수비는 '그가 땅볼을 잡으면 1루로 뛰지 말고 그냥 덕아웃으로 들어가면 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2루수로서 기록한 통산 1706의 더블플레이 성공은 역대 최고에 해당되며, 불멸의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
어린 시절 마제로스키는 지독한 가난과 싸웠다. 아버지는 메이저리그 선수를 꿈꿨지만 탄광에서 당한 사고로 꿈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아들을 선수로 만들기 위해 벽돌 벽에 테니스 공을 던지고 잡게 하는 훈련을 시켰다. 피츠버그의 홈구장인 포브스필드는 불규칙 바운드가 많기로 유명했는데, 테니스 공 훈련으로 다져진 마제로스키에게는 문제될 게 없었다.
어린 시절 마제로스키는 친구들에게 메기(catfish)로 불렸다. 명예의 전당 투수인 제임스 '캣피시' 헌터가 있긴 하지만(헌터의 스토리는 다음에 소개도록 한다), 마제로스키가 메기로 불린 건 그가 생계를 위해 메기를 잡으러 다녔기 때문이었다. 마제로스키는 어렸을 때부터 공사장 일을 했고 그 돈으로 글러브를 샀다.
마제로스키는 원래 유격수였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93경기 31실책을 기록하고 방출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선수를 보는 눈이 워낙 뛰어났던 피츠버그 단장 브랜치 리키는 마제로스키가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동작이 유독 빠른 점을 관찰하고 2루수로 전향시켰다. 메이저리그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마제로스키는 단 하나의 병살타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이 동작을 극한까지 연마했고, 공을 쉽게 빼낼 수 있도록 가장 작은 글러브를 사용했다. 또한 공을 잡아서 빼내기보다는 공이 미끄러져 나와 오른손에 쥐어질 수 있도록 글러브를 완전히 오므리지 않았다. 마제로스키의 더블플레이 동작은 2루수의 교본이 됐다.
마제로스키의 명전 입성은 쉽지 않았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를 만들어냈고, 2루수 역사상 최고의 수비를 했지만 공격 성적이 크게 부족했다. 마제로스키는 17년 동안 138개의 홈런에 그쳤고 출루율은 .299였다. 마지막 15번째 투표에서 얻은 득표율은 통과 기준인 75.0%보다 한참 낮은 42.3%였다.
하지만 9년 후 열린 베테랑 위원회(2001)를 통해 마제로스키는 기자 투표를 통과한 데이브 윈필드, 커비 퍼켓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이 투표에서 위태커는 2.9%의 득표율을 얻어 한 번 만에 탈락했고, 베테랑 위원회의 구제도 받지 못하고 있다).
1월 발표 후 7월에 열린 입회식에서 마제로스키는 12분짜리 원고를 들고 단상에 올랐다. 하지만 감정에 복받친 나머지 2분 동안 울다가 그냥 내려왔다.
그 때 마제로스키가 울면서 간신히 말한 'Thanks'는, 한 마디에 불과했지만 자신의 감정을 모두에게 전달했기 때문에, 명예의 전당 입회식에서 가장 손에 꼽히는 명연설로 인정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