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사랑한 대통령 IKE
캔자스에 살던 어린 시절, 나는 친구와 낚시를 갔다. 우리는 여름 오후의 따스한 강가에 앉아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호너스 와그너 같은 진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둘 다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의 34대 대통령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1890년 출생, 1969년 사망)는 야구와 스포츠를 사랑했다.
아이크(아이젠하워)는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야구 선수의 꿈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야구 선수의 재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아이젠하워의 집은 가난했다. 아이크가 돈을 벌어 형 에드가의 학비를 댔고 형은 미시건대학에 진학했다. 이번에는 형이 학비를 벌 차례였지만, 아이크는 학비가 들지 않는 웨스트포인트에 진학했다.
돈이 필요했던 그는 캔자스주의 세미 프로 리그 팀에서 중견수로 뛰면서 '윌슨'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대학 선수가 돈을 받고 뛰면 아마추어 자격이 박탈됐기 때문이었다. 자칫하면 퇴학도 될 수 있었다. 훗날 아이젠하워는 '내가 아니라 형'이라고 둘러댔지만, 처음 이 사실을 뉴욕 자이언츠 멜 오트 감독에게 말한 건 본인 자신이었다.
웨스트포인트의 야구 팀에 선발되지 못한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일로 꼽았던 아이젠하워는 대신 미식축구 팀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무릎을 크게 다쳐 야구와 풋볼을 모두 포기했다. 아이젠하워는 이후 미식축구 팀의 응원단장으로 펄펄 날았고, 프레데릭 펀스턴 장군의 눈에 띄었다.
아이젠하워는 소위 임관 후 16년 동안 영관급으로 진급하지 못했다. 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진급이 정체되어 있었다. 펀스턴 장군은 아이젠하워가 웨스트포인트에서 응원단장으로 활약하면서 보여준 조직 장악력과 리더십을 기억했고, 자신의 부대로 불렀다.
아이젠하워는 펀스턴 밑에서 뛰어난 참모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폭스 코너 장군을 만났다. 코너는 아이젠하워에게 야구 잡지는 그만 읽고 전쟁사를 공부하라고 했다. 그를 육군참모대학에 보내 엘리트 코스를 밟게 했고, 아이젠하워는 245명 중 수석으로 졸업했다. 2차 대전의 연합군 총사령관이 되고, 1952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는 시발점이었다.
선거 슬로건이 'I Like Ike'였던 아이젠하워는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당선 직후인 1952년 12월, 한국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아이젠하워는 대규모 환영 행사를 거부하고 최전방을 방문해 병사들과 똑같은 식사를 했다. 고지전을 이어가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한국 전쟁 휴전을 이끌어냈다.
아이젠하워는 전쟁 영웅이었지만 무력 사용을 극도로 자제했고 이는 미국의 경제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재임 기간 8년(1953-1961)은 미국 최고의 황금기에 해당됐다. 그가 2차 대전 때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영감을 받아 건설한 주간 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는 미국의 물류 혁명을 일으켰다.
2차 대전을 승전하고 돌아오마자마자 폴로그라운드를 방문해 뉴욕 자이언츠와 보스턴 브레이브스의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던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야구에 빗댄 경우가 많았다.
번트로는 홈런을 칠 수 없다. 타석에 들어서면 방망이를 휘둘러야 한다. 적이 당신을 두려워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아이젠하워가 말한 '번트로 홈런을 칠 수 없다'(You cannot hit a home run by bunting)는 가장 유명한 인용문 중 하나가 됐다.
1956년 아이젠하워는 뉴욕 브루클린의 에베츠필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1차전에 등장해 시구를 했다. 1956년 월드시리즈는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였고, 양키스 투수 돈 라슨은 5차전에서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아이젠하워는 돈 뉴컴과 브루클린 다저스를 응원했지만, 우승 팀은 뉴욕 양키스였다.
미국 대통령이 월드시리즈에서 다시 시구를 하는 건,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2001년이었다.
아이젠하워만큼이나 야구를 사랑했으며, 야구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지 W 부시는 46일 전에 일어난 9.11을 수습해야 했다.
부시는 뉴욕 소방대원의 재킷을 입고 등장했고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애리조나 뱅크원볼파크(현 체이스필드)의 전광판 부근엔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현장에서 수거된 찢어진 성조기가 내걸렸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였던 부시는 양키스를 싫어했다. 9.11이 일어나기 몇 달 전에는 "양키스만 아니면 누가 우승해도 상관없다"고 해 뉴욕 팬들의 원성을 샀다.
2001년 월드시리즈는, 1956년과 마찬가지로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였다. 우승 팀은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 김병현이 있는 애리조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