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관제센터, 랜디 존슨을 쏘아 올리다
로저 클레멘스(63)와 랜디 존슨(62)은 묘한 관계다.
놀란 라이언(5714)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제외하면, 존슨은 탈삼진 1위(4875)와 사이영 2위(5회)이고, 클레멘스는 탈삼진 2위(4672)이자 사이영 1위(7회)다.
1997년 클레멘스는 다승 ERA 탈삼진에서 1위에 오르는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고 4번째 사이영을 수상했다. 2위는 다승 ERA 탈삼진에서 모두 2위를 한 존슨이었다.
2004년 클레멘스는 7번째 사이영을 수상했다. 이번에도 2위는 존슨이었다. 존슨은 클레멘스보다 31이닝을 더 던지고 72개의 삼진을 더 잡아냈으며 ERA도 더 좋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전가의 보도였던 투승타타에 막혔다. 92승 팀에서 뛴 클레멘스는 18승4패 2.98, 111패 팀에서 뛴 존슨은 16승14패 2.60이었다. 승리기여도(bWAR)는 존슨 8.4, 클레멘스 5.4였다.
훗날 클레멘스에게는 약물 사용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마지막 사이영 세 개를 약물 사용 추정 시점 이후에 따냈기 때문에, 클레멘스가 약물을 쓰지 않았다면 최다 수상자는 존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존슨이 2015년 97.3%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반면, 클레멘스는 탈락함으로써 사필귀정이 이루어졌다.
놀란 라이언으로부터 시작해 로저 클레멘스로 이어지는 텍사스 파워피처 계보는 엄밀히 말하면 휴스턴 파워피처 계보다. 라이언과 클레멘스는 모두 휴스턴 출신이다.
드와이트 구든이 1980년대 내셔널리그의 투수였다면, 클레멘스는 같은 시기 아메리칸리그의 투수였다. 하지만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사이영 세 개를 따내고 136승을 쓸어담았던 클레멘스는 1993년부터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보스턴은 클레멘스를 그의 고향인 휴스턴으로 보내는 데 합의했다. 9명이 움직이는 초대형 트레이드였다. 휴스턴이 주기로 한 주요 선수는 크레그 비지오와 스티브 핀리였다. 하지만 휴스턴의 구단주가 비지오의 이적을 반대하면서 없었던 일이 됐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비지오는 휴스턴에서만 20년을 뛰었고 영구결번(7번)도 얻었다.
1997년 토론토 입단한 클레멘스는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과 2년 연속 사이영으로 완벽한 부활을 했다. 하지만 우승 전력을 갖추지 못한 토론토를 답답해했고, 1998년 시즌 중반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휴스턴은 시애틀에서 랜디 존슨을 데려오기로 한 상태였다. 만약 휴스턴이 존슨이 아니라 클레멘스를 데려갔다면, 클레멘스가 양키스 유니폼을 입게 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존슨은 어떻게 휴스턴으로 가게 됐을까

1998년 여름에 벌어진 존슨 쟁탈전은 클리블랜드, 양키스, 휴스턴의 3차전이었다.
1997년 월드시리즈에서 통한의 패배를 당한 클리블랜드는 누구보다도 에이스 영입이 간절했다. 휴스턴 역시 애틀란타 사이영 트리오를 넘기 위해서는 특급 에이스가 필요했다. 반면 양키스는 존슨이 클리블랜드로 가는 걸 막기 위해 참가했다.
시애틀은 클리블랜드에게 브라이언 자일스를 요구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존 하트 단장은 자일스만큼은 절대 줄 수 없다고 했다. 클리블랜드는 1년 전에도 자일스를 마크 맥과이어와 바꾸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훗날 하트는 그토록 아꼈던 자일스를 피츠버그의 불펜 투수인 리카르도 링콘과 바꾸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클리블랜드가 존슨을 포기하자, 클리블랜드로 가지만 않으면 됐던 양키스도 협상 테이블에서 철수했다. 휴스턴만 남게 되자 존슨의 가격은 크게 떨어졌고, 휴스턴은 프레디 가르시아, 카를로스 기옌, 존 할라마를 주고 존슨을 얻었다.
휴스턴은 존슨 효과를 보지 못했다. 존슨이 못해서가 아니었다. 시애틀에 있을 때 부진했던 존슨은 휴스턴 유니폼을 입고 11경기에서 10승1패 1.28을 기록했다. 휴스턴 데뷔전에 나선 존슨이 1구를 던졌을 때, 존슨의 뒤에 있던 3루수 제프 배그웰은 '신이여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하지만 휴스턴이 존슨을 데려온 건 가을 야구를 위해서였다.
시애틀에 있을 때 존슨은 호투해도 팀은 패하는, 가을 징크스를 가지고 있었다. 존슨은 디비전시리즈 1차전과 4차전에서 8이닝 9K 2실점과 6닝 8K 1자책으로 호투했다. 하지만 두 경기 모두 패전 투수가 됐다. 샌디에이고의 선발이었던 케빈 브라운이 8이닝 16K 무실점과 6.2이닝 6K 1실점으로 존슨보다 잘 던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브라운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은 TV로 그 경기를 본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투수의 꿈을 가지도록 만든 역사적인 피칭이었다.
존슨은 정규시즌 11경기와 포스트시즌 2경기 후 FA가 됐고, 다저스와 애리조나의 영입 경쟁 속에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2001년 월드시리즈 MVP가 됐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05년, 휴스턴은 창단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NLCS 5차전에서 8회말까지 4-2로 앞섰던 휴스턴은 월드시리즈 1차전 선발로 로이 오스왈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9회초에 터진 앨버트 푸홀스의 역전 스리런으로 인해, 오스왈트를 6차전에 써야 했다.
대망의 월드시리즈 1차전 선발은 그로 인해 클레멘스로 바뀌었다(클레멘스는 2004년 양키스에서 휴스턴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피로가 누적되어 있던 클레멘스는 2이닝 3실점으로 교체됐다. 휴스턴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4연패를 당했다.
휴스턴이 랜디 존슨과 함께 시작한 1998년 포스트시즌에서 광탈을 하게 된 건 존슨의 탓이 아니었다. 다른 휴스턴 선수들의 탓도 아니었다. 당시 야구공이 아니라 볼링공을 던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1998 케빈 브라운'이라는 자연재해를 만난 탓이었다.
휴스턴의 진짜 잘못은, 존슨을 데려온 게 아니라, FA가 된 존슨을 잡지 못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