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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 루스의 가장 완벽했던 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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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루이스는 전설의 복서다. 1937년부터 1949년 은퇴까지 252523KO를 달리며 헤비급 타이틀을 12년 동안이나 지켰다(통산 69352KO). 루이스는 인종 차별이 심한 앨라배마 출신의 흑인이었고, 쉴새 없이 나오는 펀치가 폭격기의 융단 폭격을 보는 것 같다고 해 갈색 폭격기(Brown Bomber)로 불렸다.

 

1936619. 루이스는 <라인강의 검은 창기병>으로 불린 독일 출신의 세계 챔피언 막스 슈멜링과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루이스는 이 경기를 패했지만, 2년 후인 1938년 재대결에서는 1라운드 KO승을 거둬 나치 독일의 상징을 무너뜨린 미국의 영웅이 됐다).

 

대결이 펼쳐진 곳은 뉴욕 브롱스에 위치한 양키스타디움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양키스타디움 특설 링에 오른 루이스를 브롱스 폭격기(Bronx Bomber)로 불렀다. 그 날 이후 양키스의 별명도 브롱스 폭격기가 됐다.

 

양키스의 폭격이 절정이었던 해는 1927년이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평가 받는 그 해, 양키스는 시즌 내내 독주를 했고 19경기 차로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월드시리즈에서도 내셔널리그 챔피언인 피츠버그 파이러츠를 네 경기 만에 돌려 보냈다.

 

브롱스 폭격기에 앞서 살인 타선(Murderers' Row)으로 불린 1927년의 양키스는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을 앞세워 158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반면 나머지 아메리칸리그 팀들의 평균은 40개였다. 루스와 게릭은 그 해 아메리칸리그에서 나온 홈런의 24%를 둘이서 책임졌다.

 

반면 1928년은 힘든 시즌이었다. 양키스는 19경기를 남기고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4연전 맞대결에서 3승을 거두며 한숨을 돌렸고, 힘들게 2경기반 차로 우승했다.

 

1927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월터 존슨은 1928년 월드시리즈에서 내셔널리그 챔피언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양키스를 쉽게 이길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존슨은 한 명의 존재를 간과했다. 베이브 루스였다.

 

 

1928년은 루스에게도 힘든 시즌이었다. 1927년 루스는 60개의 홈런을 날렸다. 1921년에 본인이 기록한 59개를 경신한 메이저리그 최초의 60홈런이었다. 1927년이 끝난 시점에서 단일 시즌 홈런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160- 1927 베이브 루스

259- 1921 베이브 루스

354- 1920 베이브 루스

447- 1926 베이브 루스

447- 1927 루 게릭

646- 1924 베이브 루스

 

1928년 루스는 81일에 42호를 날렸다. 1927년보다도 빠른 페이스였다. 하지만 마지막 두 달 동안 극심한 부진에 빠져 54개로 시즌을 마쳤다. 아메리칸리그 2위인 게릭이 27, 3위인 구스 고슬린이 17개였기 때문에, 더블 스코어로 홈런왕이 됐지만, 기록 경신을 기대했던 팬들로서는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루스의 시즌은 이제부터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양키스에게 힘든 시리즈를 예상한 건, 카디널스가 1926년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꺾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28년 월드시리즈는 네 경기 만에 끝났다.

 

루스는 4차전 두 번째 타석에서 동점 솔로홈런(1-1), 네 번째 타석에서 다시 동점 솔로홈런(2-2), 5번째 타석에서 7-2로 달아나는 쐐기 솔로홈런을 날려 5타수3안타 3홈런 3타점을 기록했다. 월드시리즈 3홈런은 루스가 1926년에 기록한 후 역대 두 번째 기록이었다. 루스 혼자 두 번을 달성하고 세 번째 월드시리즈 3홈런 경기가 나온 건 그로부터 49년이 지난 후인 1977년의 레지 잭슨이었다.

 

이 경기의 백미는 7회 타석이었다. 그 해 21승을 거둔 투수였던 빌 셔델은 스트라이크 두 개를 던진 후 루스가 방심하는 틈을 타 재빨리 공을 던졌다. 당시는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의 룰이 다른 부분들이 있었는데, '퀵 피치'는 내셔널리그에서는 합법이었지만 아메리칸리그에서는 불법이었다. 심판은 '노 피치'를 선언했고, 카디널스는 강하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셔델은 계속된 승부에서 루스에게 동점 홈런, 게릭에게 역전 홈런을 맞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루스는 경기가 끝나고 이 경기를 본인 커리어 최고의 경기로 꼽았다. 그 해 루스가 월드시리즈 네 경기에서 기록한 성적은 타율 .625 출루율 .647 장타율 1.375 OPS 2.022였다.

 

1928년은 루스의 마지막 전성기에 해당되는 해였다. 루스는 이후 세 번을 더 추가해 12번의 홈런왕을 하지만, 50개 이상을 친 건 1928년이 마지막이었다.

 

양키스는 1927년에도, 1928년에도, 1932년에도 4연승 우승을 차지해 월드시리즈 12연승을 달렸다. 1932년은 루스의 마지막 월드시리즈였다. 루스는 월드시리즈 통산 41경기에서 OPS 1.214를 기록했다. 이는 게릭과 함께 역대 포스트시즌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본인의 정규시즌 통산 기록인 1.164보다 높았다.

 

1920년에 루스를 데려왔고, 루스가 벌어준 돈으로 1923년에 양키스타디움을 지은 양키스는 1923년 통산 첫 우승을 시작으로 1932년까지 네 번을 우승했다. 하지만 이는 양키스 신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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