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완 에이스 계보의 시작, 레프티 그로브

레프티 그로브 / 출처 - MLB.com
레프티 그로브는 야구 역사상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입니다. 그로브는 1925년부터 1941년까지 통산 300승 141패 3,940.2이닝 2,266탈삼진 평균자책점(이하 ERA) 3.06을 기록했는데요. 표면적인 성적으로는 워렌 스판(363승 2,583탈삼진), 스티브 칼튼(329승 4,126탈삼진), 랜디 존슨(303승 4,875탈삼진)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돋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최고의 좌완으로 꼽히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로브가 전성기를 보낸 메이저리그의 1920-30년대는 역사상 최악의 타고투저 시대로 꼽힙니다. 1920-30년대 아메리칸리그 팀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5.25점이었고, 이는 2020년대 아메리칸리그 팀의 평균 득점(4.8점)보다 무려 0.5점 가까이 높은 수치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타점 1위부터 11위까지 기록은 모두 1920-30년대에 몰려 있죠. 그만큼 투수들에게는 고난의 시대였다는 뜻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그로브는 통산 9번이나 평균자책점(ERA) 1위를 차지했는데요.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기록입니다. 또한 그로브의 조정 평균자책점 148은 월터 존슨(147)을 넘어 통산 300승 투수 가운데 역대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통산 승률 0.680 역시 300승 투수 기준으로 역대 1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로브는 탈삼진 부문에서도 1925년부터 1931년까지 7년 연속 1위로 누구도 넘보지 못할 기록을 세웠죠.
돌멩이를 던지던 메릴랜드의 소년

레프티 그로브의 본명은 '로버트 모세스 그로브(Robert Moses Grove)'로 1900년 3월 6일 미국 메릴랜드주의 로나코닝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로브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석탄 광산에서 일했는데요. 하지만 그로브는 광산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고 방적공과 철도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그로브는 일을 하느라 야구를 할 시간이 많지 않았고, 19세가 되기 전까지 정식으로 야구팀에서 뛴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야구공이 아니더라도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던지곤 했는데요. 그로브는 헛간 옆에 홈 플레이트를 그린 후 틈날 때마다 가능한 한 세게 돌멩이를 던졌고, 그의 아버지는 헛간 옆에 움푹 파인 곳의 크기를 보고 아들의 강속구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세가 되던 해, 그로브는 인근 마을의 준 프로 팀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첫 경기부터 7이닝 동안 15개의 삼진을 잡으며 무실점을 기록했죠.
그로브는 머지않아 인터내셔널리그(AA) 볼티모어 오리올스 구단주 잭 던 시니어의 눈에 띄었습니다. 야구선수 출신인 던은 재능 있는 선수들을 알아보는 뛰어난 눈이 있었는데요. 그가 발굴한 대표적인 선수로는 베이브 루스가 있었습니다. 던은 1914년 세인트메리 공업학교 시절 루스를 만난 뒤 30분 만에 계약을 맺었고, 그 후 반년도 지나지 않아 이적료 25,000달러를 받고 루스를 보스턴 레드삭스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불과 5년 뒤, 그로브를 영입한 것이죠. 그로브는 1920년부터 1924년까지 5년간 108승 36패 1,108탈삼진을 기록하며 소속팀 오리올스의 5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 그로브는 시범경기에서 만난 베이브 루스를 상대로 11타수 무안타 9삼진을 기록하기도 했는데요. 당연하게도 그로브에겐 수많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러브콜이 쏟아졌지만, 오리올스의 구단주 던은 그로브를 놔주지 않았습니다.
메이저리그를 평정하다
레프티 그로브 / 출처 - MLB.com그로브가 오리올스에서 5시즌을 뛰지 않았더라면 빅리그에서 통산 몇 승을 거뒀을 것인지에 대해선 지금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주제입니다. 하지만 마침내, 1925년 던은 오랜 친구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구단주 코니 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데요. 애슬레틱스가 제시한 이적료 10만 600달러는 양키스가 1919년 루스를 영입하기 위해 레드삭스에 준 이적료(10만 달러)보다 높은 역대 최고액이었습니다.
그로브는 빅리그 데뷔 첫해인 1925년 10승 12패 197이닝 131볼넷 116탈삼진 ERA 4.75를 기록했습니다. 탈삼진은 리그 1위였지만, 문제는 볼넷도 리그 1위였다는 점이었는데요. 그로브와 호흡을 맞춘 포수 미키 코크런은 훗날 "그로브의 공을 잡는 것은 조준이 나쁜 소총수의 총알을 잡는 것처럼 어려웠다"라고 회고했습니다. 그로브의 활약에 실망한 애슬레틱스 팬들은 그를 '10만 600달러짜리 불량품'이라고 불렀죠.
절치부심한 그로브는 오프시즌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오후 9시에 잠들기 전까지 훈련에 매진하며 스프링 트레이닝을 준비했고, 이듬해인 1926년 13승 13패 258이닝 194탈삼진 ERA 2.51으로 투수 부문 2관왕(ERA, 탈삼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1927년 20승 13패 262.1이닝 174탈삼진 ERA 3.19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1933년까지 7시즌 연속 20승을 달성하는 등 그야말로 메이저리그를 평정했습니다.
애슬레틱스 시절이었던 1925년부터 1933년까지 그로브는 다승 1위를 4번, ERA 1위를 5번, 탈삼진 1위를 7번(연속) 차지했습니다. 특히 1930년 28승 5패 291이닝 209탈삼진 ERA 2.54를, 1931년 31승 4패 288.2이닝 175탈삼진 ERA 2.06을 기록하며 2년 연속 투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죠. 그의 소속팀 애슬레틱스 역시 1929~31년까지 3년 연속 리그 1위, 1929-30년에는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강속구를 잃어도 변치 않는 실력

레프티 그로브 / 출처 - MLB.com
통산 3번의 월드시리즈에서 그로브는 8경기 4승 2패 2세이브 51.2이닝 36탈삼진 ERA 1.75를 기록했는데요. 1931년 마지막 월드시리즈에서 팀이 탈락 위기에 몰린 6차전에 등판한 그는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 갔습니다. 그로브는 7차전에서도 불펜 대기 중이었지만 소속팀 애슬레틱스가 경기 초반부터 4실점을 하면서 월드시리즈 3연패를 달성하진 못했습니다.
그로브는 1932년 25승 10패 291.2이닝 188탈삼진 ERA 2.84(1위)를 기록했지만, 소속팀 애슬레틱스는 94승 60패(0.610)로 양키스(107승)에 밀려 4년 연속 리그 우승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1933년에도 그로브는 24승 8패 275.1이닝 114탈삼진 ERA 3.20으로 다승 1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주무기인 강속구의 위력이 감소하면서 탈삼진이 직전 해 188개에서 114개로 줄어드는 이상 징후를 보였습니다.
그러자 1933시즌 종료 후 애슬레틱스의 구단주 겸 감독 코니 맥은 이적료 12만 5000달러를 받고 그로브를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했죠. 보스턴 이적 첫해였던 1934년 그로브는 시즌 내내 팔 통증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8승 8패 109.1이닝 43탈삼진 ERA 6.50을 기록하는데 그칩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35년 20승 12패 273.0이닝 121탈삼진 ERA 2.70으로 반등에 성공하는데요. 3년 만에 되찾은 ERA 1위는 덤이었습니다.
그로브의 반등 비결은 커브와 제구였습니다. 그로브는 강속구를 잃어버린 대신에 그동안 잘 쓰지 않았던 커브를 결정구로 구사했는데요. 또한, 완급조절을 통해 패스트볼을 실제보다 빠르게 보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로브는 인터뷰에서 "투수는 스피드를 잃어버린 후에도 충분히 똑똑해질 시간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로브는 1935년부터 1939년까지 5년간 4번의 ERA 1위를 차지합니다.
은퇴 후의 삶

레프티 그로브 / 출처 - MLB.com
1940년 40세의 그로브는 7승 6패 153.1이닝 62탈삼진 ERA 3.99에 그쳤지만 통산 293번째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듬해 그가 300승을 달성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그리고 1941년 7월 25일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완투승을 거두면서 그로브는 메이저리그 역대 12번째이자, 1926년 피트 알렉산더 이후 처음으로 통산 300승을 달성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뒤 그해 겨울 조용히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현역 시절 그로브의 성격은 강속구만큼이나 불같았는데요. 그로브는 아쉬운 패전을 당할 때마다 클럽하우스에서 난동을 피웠습니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집어던지는 그를 선수는 물론 감독조차 말리지 못했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친절하고 온화해졌습니다. 은퇴 후 그로브는 고향인 로나코닝 지역의 청소년 야구선수들에게 꾸준히 장비를 기부하고, 장학금을 후원하는 선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로브는 1947년 MLB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1950년대에는 로나코닝 시의회 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1960년 아내와 사별한 후 오하이오주 노위크에 있는 아들 내외의 집으로 이사했는데요. 그리고 1975년 5월 22일, 야구 경기를 시청하던 중 심장마비로 만 7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1년 '세이버매트릭스의 대부' 빌 제임스는 그로브를 월터 존슨에 이어 MLB 역대 투수 2위로 선정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