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야구와 마무리의 운명, 롤리 핑거스
올 시즌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4차전에서 나왔던 필라델피아 투수 오리온 커커링의 ‘끝내기 실책’이 떠오릅니다.
1 대 1로 맞선 연장 11회말 투아웃 만루. 실점하면 탈락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커커링은 시속 96마일의 싱커를 던졌고, LA 다저스의 앤디 파헤스가 때린 타구는 투수 앞으로 굴렀습니다. 평범할 것 같던 순간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습니다. 타구를 잡다 놓친 커커링이 다급한 마음에 홈으로 공을 던졌는데, 이것이 허공으로 날아가면서 3루 주자 김혜성이 득점해 LA 다저스가 극적으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실책이었습니다. 커커링이 공을 한번에 잡지는 못했지만, 1루에 던지면 충분히 아웃이 될 만큼 여유 있는 타구였습니다. 포수 리얼무토 역시 커커링에게 1루로 던지라고 수신호를 보낸 상황이었습니다. 따지면 따질수록 필라델피아의 아쉬움은 컸습니다. 우승 후보라던 필라델피아가, 흔히 말해 ‘역대급 황당 실책’으로 시즌을 마감해야 했던 비현실적인 순간. 다시 봐도 충격적인 플레이인 것은 분명합니다.
상황이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다저스 관중의 함성 속에서 무릎을 짚은 채 서 있던 커커링은 굳은 얼굴로 더그아웃을 향했습니다. 그때 롭 톰슨 감독은 커커링을 멈춰 세우고 고개 숙이지 말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리얼무토, 카스테야노스, 슈와버 등 팀의 주축 베테랑들이 커커링을 격려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경기 후에는 예전 팀 동료 제프 호프먼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커커링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필라델피아 구단도 움직였습니다. 워낙 치명적인 실수였기 때문인지 돔브로스키 사장이 직접 나서 커커링을 위한 심리 보호 조치를 지속해서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진 구원 투수의 역사는 길고 다양합니다. 88년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의 커크 깁슨에게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은 오클랜드의 데니스 에커슬리. 93년 월드시리즈에서 토론토의 조 카터의 끝내기 홈런에 조연 역할을 했던 필라델피아의 미치 윌리엄스. 2005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전성기의 푸홀스에게 역전 홈런을 내주고 놀라버린 휴스턴의 브래드 릿지. 우리에게는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맞고 주저앉았던 김병현의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무리 투수는 강심장이 필수인 보직으로 인식됩니다. 가을야구에서는 그 면모가 더 강조됩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의 실패가 극단적으로 부각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86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마무리 투수 도니 무어는 스트라이크 하나만 던지면 팀의 창단 첫 리그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에서 데이브 헨더슨에게 역전 홈런을 허용했습니다. 에인절스는 잠시 동점을 만들긴 했지만, 이어진 연장전에서 패했습니다. 그리고 6, 7차전을 모두 내줘 탈락했습니다.
무어가 혼자 시리즈를 망친 것이 아니었음에도 한동안 비난의 화살은 무어에게 향했습니다. 큰 후유증을 감내하면서 무어는 두 시즌을 더 뛰고 은퇴했습니다. 공교롭게 이후 무어에게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정불화와 경제적 문제, 심리 불안 등 악재가 겹친 끝에 권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큰 비난을 받던 선수가 충격적으로 세상을 떠난 탓에 지금도 무어가 86년의 그 홈런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입니다. 앞서 언급한 커커링의 사례를 보면, ‘블로운 세이브’를 대하는 세상의 태도가 꽤 달라진 것 같습니다.
반대로 독보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마리아노 리베라 이전에 강심장 마무리 투수로 가을 야구를 지배했던 선수, 바로 롤리 핑거스입니다. 70년대에 주로 뛰며 통산 341세이브를 기록한 핑거스는 현대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라는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1968년 오클랜드에서 선발 투수로 데뷔한 핑거스는 1971년부터 전담 마무리로 자리를 굳혀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핑거스가 구원 투수로 전환한 이유는 대체로 딕 윌리엄스 감독의 결단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핑거스가 선발 투수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해 ‘강등’시켰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핑거스도 불펜으로 보직을 옮기면서 이제 자칫하면 은퇴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다만 단순히 성적이 나빠 구원 투수를 맡은 것으로 정리하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지난 2000년 발간된 메이저리그 선수 백과사전 (Baseball : The Biographical Encyclopedia)에는 핑거스가 구원 투수를 맡게 된 구체적인 정황이 소개돼 있습니다.
핑거스는 근심이 많고 지나칠 정도로 계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선발 등판을 통보받으면 며칠 전부터 노심초사하며 자신의 투구에 대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예민하다 보니 경기 전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일상이 버거울 정도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코칭스태프와 상의한 끝에 구원 투수를 맡아보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는 겁니다.
그때가 1971년이었습니다. 선발 투수로 시즌을 시작한 핑거스는 4월에 완봉승을 기록한 적도 있지만 기복이 심했고, 문제의 수면 장애 이후 5월 말부터 전담 구원 투수를 맡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보직 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펜 투수’ 핑거스는 밤잠을 설치던 시절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직 1이닝 마무리가 정착하기 전이어서 2이닝 이상 던지는 일이 흔했고 등판 일정도 불규칙했지만, 핑거스는 새로운 역할에 빠르게 적응해 70년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거듭났습니다. 메이저리그 선수 백과사전은 “핑거스가 걱정 많고 예민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평범한 선발 투수로 사라졌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가을 야구에서는 더 돋보였습니다. 특히 1972년 신시내티와의 월드시리즈 3차전 일화가 유명합니다. 8회초 주자 2, 3루 풀카운트 상황에서 강타자 조니 벤치를 상대하게 되자, 윌리엄스 감독은 마운드를 방문해 핑거스에게 고의 4구를 지시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그리고 포수도 일어서서 공을 받으려고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실은 조니 벤치를 속여 삼진을 노린 시도였습니다. 핑거스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자, 고의 4구를 받는 척했던 포수는 곧바로 제자리에 앉았습니다. 핑거스의 빠른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을 찌르면서 벤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삼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잡아낸 삼진 하나가 핑거스에게는 남은 시리즈를 편하게 치르도록 해준 전환점이라고 했습니다. 상황 자체는 조금 희극적이지만, 핑거스의 제구력과 대담함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핑거스의 든든한 마무리 속에 오클랜드는 1972년부터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습니다. 핑거스는 73년 월드시리즈에서 6경기에 출전해 13.2이닝을 던지면서 캣피시 헌터, 바이다 블루 등 선발 투수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도 했습니다.
1981년에는 밀워키로 이적해 47경기에서 1.04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팀을 창단 후 첫 월드시리즈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구원 투수 최초로 사이영상과 MVP를 동시에 석권한 선수가 됐습니다. 2이닝 이상 던져 세이브를 얻은 이른바 ‘롱 세이브’는 역대 최다인 135개입니다.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현대 야구에서는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숫자입니다. 1985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핑거스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것은 물론, 두 팀 이상에서 영구 결번된 유일한 구원 투수로도 기록됐습니다.
마무리 투수는 지금도 가을야구를 뒤흔드는 요소입니다. 올해 창단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꿈꾸던 시애틀은 결정적인 순간에 마무리 투수 안드레스 무뇨스를 아끼다 역전 홈런을 맞고 탈락했습니다. KBO리그에서는 한화 김서현이 화두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마무리 투수의 존재 가치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던 시대도 있었지만 ‘구속 혁명’ 이후 선발 투수의 이닝 소화 능력이 줄면서 마무리 투수의 가치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핑거스는 마무리 투수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제구력을 꼽았습니다.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초구 스트라이크와 첫 아웃카운트에 집착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명장’ 스파키 앤더슨은 핑거스가 나오는 경기는 매번 어떤 결과가 나올지 너무나 명확하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더 강한 공을 던지는 마무리 투수는 나올 수 있지만, 여전히 많은 야구인들은 월드시리즈에서 가장 확실한 마무리 투수로 롤리 핑거스로 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