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의 개척자 월터 오말리와 다저스
1883년 '브루클린 애틀랜틱스(Brooklyn Atlantics)'로 출발한 현재 MLB의 원조팀 중에 하나로 그 역사가 무려 142년에 이르는 전통의 야구단입니다.
뉴욕 야구의 상징으로 실은 뉴욕 양키즈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뉴요커는 물론 전 미국 야구팬들의 사랑과 증오의 대상이던 팀이었습니다. 당대 뉴욕 자이언츠와 힘께 내셔널리그(NL)를 양분하는 파워로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슈퍼바스' '로빈스' 등 여러 별명으로 불리다가 브루클린 주민들이 전차(tram)를 피해서 다녔다는 'trolley dodgers'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다저스(Dodgers)'라는 애칭이 1900년대 초에 자리를 잡아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Los Angeles Dodgers)의 전신입니다.
1899년과 1900년 NL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1930년대까지는 중위권을 오르내리는 팀이었습니다.
1916년과 1920년 NL 챔피언에 올랐지만 월드시리즈(WS)에서는 각각 패했고, 최정상과는 인연이 없는 구단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43년 브랜치 리키(Branch Rickey) 단장이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변혁의 선봉에 서는 팀이 됩니다. 리키는 MLB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데, 1947년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을 MLB에 데뷔시켜 인종 장벽을 깬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리키가 파격적인 행보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단히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사고를 지닌 월터 오말리(Walter O'Malley)씨가 있었습니다.
박찬호 선수를 영입하면서 우리와도 친숙해진 피터 오말리 전 다저스 구단주의 부친이기도 합니다.

1903년 뉴욕의 브롱스에서 태어난 월터 오말리는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콜럼비아 대학을 나온 수재였습니다. 그런데 1929년 월스티릿가의 증권 폭락 사건으로 집안이 알거지가 되자 포댐 대학의 야간 법학부에 입학해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합니다.
그러나 변호사 업무만큼 사업 쪽에도 수완을 보인 그는 엔지니어링 회사를 차려 상당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1940년 브루클린 다저스의 지분을 구입하면서 다저스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1942년 다저스의 고문 변호사에 임명된 월터 오말리는 1950년 최다 지분을 확보하면서 다저스의 회장이 됐고, 브랜치 리키 단장과 함께 다저스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습니다.
1947년 잭키 로빈슨을 영입해 흑인 출전금지의 벽을 깬 것은 리키 단장과 함께 오말리 당시 고문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리고 1955년 브룩클린 다저스는 마침내 길고 긴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창단 이래 첫 WS 우승도 차지하게 됩니다. 오말리 체제하에서 번번이 덜미를 잡혔던 양키즈를 4승 3패로 꺾고 최초로 첫 우승 감격을 누렸습니다.

월터 오말리는 항상 끊임없는 도전 의식과 창조적인 사고로 야구 역사를 새롭게 써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MLB의 대표적인 구단 다저스를 미국 동쪽 끝 뉴욕에서 서쪽 끝 LA로 옮긴 대사건이었습니다.
1958년 당시 미국의 중심이던 뉴욕에서 개척자의 땅인 서부의 LA로 야구팀을 옮긴다는 것은 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큰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저스 홈구장 에베츠필드의 노후화로 뉴욕시와 새 구장 건축 협상이 계속 무산되자 과감하게 LA 이전을 결정한 오말리는 현재 다저스타디움이 위치한 지역인 '차베스 라빈(Chavez Ravine)'을 LA시로부터 헐값에 사들였습니다. 당시 LA 시장 노리스 풀턴에게서 헐값의 부지와 교통 인프라 제공을 약속받자 이전은 급진행됐습니다. (갑자기 창원시가 떠오르는 건...)
그리고 1962년 2300만 달러를 들여,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다저스타디움을 건설했습니다. 현재의 가치로는 공사비 약 2660억원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런데 오말리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최초의 돔구장 건설을 꿈꿀 정도로 앞서가는 인물이었습니다. (최초의 돔 구장은 1965년 휴스턴의 애스트로돔으로 당시 세계의 8대 불가사의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워낙 날씨가 좋은 서던 캘리포니아였기에 돔구장은 포기했지만, 야구장 디자인에도 누구보다 많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오말리 구단주였습니다.

재밌는 건 뉴욕에서 치열한 라이벌이던 뉴욕 자이언츠도 이때 함께 서부로 이전했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오말리의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자이언츠의 홈구장 폴로그라운드 역시 몹시 낡았고 관중이 점점 줄고 있었습니다. 자이언츠 역시 뉴욕시와의 신구장 건설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당시 자이언츠 구단주 호래스 스톤햄(Horace Stoneham)은 미국 내 다른 동부 도시, 예를 들어 미니애폴리스 이전을 검토 중이었습니다.
이때 오말리가 직접 찾아가 이렇게 설득합니다. "서부 시장을 개척하려면 혼자 가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함께 가면 우리 전통의 라이벌 관계를 그대로 옮길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톤햄은 오말리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이언츠는 샌프란시스코로, 다저스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MLB 사무국도 '두 팀이 같이 가야 서부 리그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대사건을 승인했습니다.
1958년, 두 팀이 동시에 서부에서 첫 시즌을 맞이하며 MLB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서양을 넘어 태평양까지 본격적인 전국구 리그 체제를 갖추게 됐습니다.
이 결정은 MLB의 전국적 확장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 되었고, LA 다저스와 SF 자이언츠의 새로운,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통을 이어간 신흥 '캘리포니아 라이벌'이 탄생합니다.
MLB를 즐기는 분들은 '양키즈와 레드삭스 라이벌' 관계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미국 야구에서 진짜 라이벌을 꼽으라면 단연 '디저스-자이언츠'입니다. MLB를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관중석에서 라이벌 팬들이 치고받고 난투극을 벌이는 경기를 본 것은 다저스-자이언츠전이 유일합니다.
거의 매시즌 마지막 시리즈가 두 팀간의 대결로 펼쳐졌는데 마지막 경기, 혹은 마지막 시리즈에서 상대팀 때문에 포스트 시즌에서 탈락한 경우가 두 팀 모두 몇 차례나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1993년 자이언츠는 103승을 거뒀고,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면 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저스는 12-1로 대승했고, 자이언츠는 '가장 비극적인 103승 팀'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2001년에는 이미 페넌트레이스 탈락한 다저스가 마지막 시리즈에서 자이언츠를 스윕하며 동반 탈락시켰는데, 당시 그 시리즈는 박찬호가 배리 본즈에게 신기록 홈런을 연속으로 맞은 게 1치전이었습니다. (당시 현장 취재를 했는데, 본즈에게 연속 홈런 맞고 교체된 박찬호 선수가 분통이 터져 썼던 헬멧을 바닥에 던져 깨졌는데, 저와 친하던 다저스 클럽하우스 매니저가 그 헬멧을 챙겼다가 저를 줘서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런데 그 경기 역전승을 시작으로 다저스가 스윕을 하면서 자이언츠를 포스트 시즌 탈락시키자, 시즌 3위를 하고도 원정 라커룸에서 파티 분위기이던 것이 지금도 생각하면 웃깁니다.
이 죽일듯한 라이벌 전통은 1951년 뉴욕 시절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동률로 시즌을 마쳐 3경기 플레이오프를 하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니다. 1승 1패 3차전에서 자이언츠 바비 톰슨의 9회말 '세상에 울려퍼진 한방(Shot Heard 'Round the World)' 끝내기 홈런으로 역전 우승하며 다저스가 짐을 쌌습니다.
각설하고 LA로 옮긴 다저스는 월터 오말리의 재임기간 동안 세 번(59, 63, 65년)이나 WS 챔피언에 올라 명실상부한 명문 구단으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1970년 경영권을 아들 피터 오말리에게 넘긴 그는 1979년에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월터 오말리의 개척 정신과 전문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추구하던 경영 방침은 아들 피터 오말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다저스는 MLB는 물론 미국 스포츠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구단으로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피터 오말리는 또한 눈을 세계로 돌려 아시아와의 중남미, 호주 등에서 박찬호, 노모 히데오 등 스타들을 발굴해 야구의 세계화에 큰 몫을 했습니다. 아버지 오말리는 야구가 미국 전역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는데 큰역할을 한 인물이었고, 아들 오말리는 대를 이어 야구를 전 세계의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하는데 큰역할을 한 셈입니다.
1957년 이미 스포츠 조직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스포츠 경영관리자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월터 오말리.
'스포팅뉴스'는 20세기 스포츠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에 월터 오말리를 11위에 선정했고, ABC 스포츠는 비선수 출신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체육계 인물 중에 오말리를 10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오말리 부자가 키운 다저스는 한때 미국에서 100대 기업에 선정될 정도로 성공적인 스포츠 구단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물론 스포츠 시장이 거대해지면서 개인이 끌어가기에는 어려움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간파한 피터 오말리가 1998년 루퍼트 머덕 재단에게 팀을 매각하면서 오말리가의 다저스 운영은 막을 내렸지만 월터 오말리는 미국 야구계의 영원한 개척자로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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