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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 퍼펙트 그리고 빅게임 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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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중의 천재로 꼽히는 미키 맨틀은 커리어 내내 부상에 시달린 것으로 유명했다. 1961년 로저 매리스와 홈런 대결을 패한 것도 부상 때문이었다.

 

맨틀의 집안에는 호킨스병이라는 유전병이 있었고, 그로 인해 할아버지와 39세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포함한 일가 친척 거의 전부가 40세 이전에 사망했다. 맨틀은 자신 또한 마흔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

 

경기에 나선 맨틀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플레이했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파티를 즐겼다. 경기 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드는 맨틀에게 있어 술은, 다음 경기까지 버티게 해주는 소중한 친구였다.

 

1963년 맨틀은 술에 찌든 상태에서 대타로 나서 홈런을 날렸다. 놀란 동료들에게 맨틀은 이렇게 말했다. "타석에 들어섰더니 공이 세 개로 보이지 뭐야. 그래서 가운데 공을 골라 강하게 휘둘렀어."

 

비슷한 일이 1998년에 일어났다.

 

데이빗 웰스는 사고뭉치로 유명했다. 베이스 루스의 광팬이었던 웰스는 1997년 루스의 실착 모자를 쓰고 나왔다가 1회가 끝난 후 조 토레 감독의 눈에 포착됐다. 웰스가 경매에서 35000달러에 산 모자였다.

 

토레 감독은 공식 모자를 쓰지 않고 유니폼 규정을 위반한 웰스에게 25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웰스는 1이닝이라도 루스의 모자를 쓰고 공을 던졌다는 사실에 싱글벙글했고, 벌금을 1달러 지폐 2500장으로 납부했다.

 

양키스는 군사학교 출신인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엄격한 규율과 복장을 요구했다. 보스(Boss)라는 별명이 그의 완고함을 말해줬다. 하지만 구단주가 뭐라 하든 말든 유니폼 상의의 단추를 풀고 공을 던지는 웰스는 보스에게 눈엣가시였다.

 

1998517. 웰스는 5만 명 가까운 관중이 운집한 양키스타디움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역대 15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1994년 케니 로저스(텍사스) 이후 4년 만에 나온 대업이었지만, 양키스를 기준으로는 역대 두 번째이자 정규시즌 최초였으며, 1956년 월드시리즈에서 달성한 돈 라슨 이후 43년 만의 퍼펙트게임이었다(이듬해 양키스는 라슨이 시구를 한 경기에서 데이빗 콘이 팀 3호 기록을 달성한다).

 

라슨은 샌디에이고 출신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웰스는 라슨의 고등학교 후배였다. 하지만 더 놀라자빠질 일은 이제부터였다.

 

 

<퍼펙트게임을 던진 선수는 역사상 15명뿐이다. 그들 중 오직 한 명만이 거의 취한 상태(half-drunk), 충혈된 눈, 끔찍한 입 냄새, 머리가 깨질 듯한 극심한 숙취를 안고 달성했다. 그게 바로 나다(That would be me)>

 

데이빗 웰스의 자서전 『Perfect I'm Not!』 중에서

 

퍼펙트게임을 달성하기 전날. 웰스는 코미디 쇼인 Saturday Night Live의 뒷풀이 파티에 참가해 술을 진탕 마셨다. 웰스는 얼굴만 비추고 갈 생각이었지만, 양키스 팬으로 유명한 지미 팰런과 의기투합해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훗날 팰런은 자신은 5시반에 파티장에서 나왔는데, 웰스는 그때까지도 있었다고 했다.

 

웰슨은 2003년에 출간한 자서전에서 한 시간 만 자고 집에서 나와야 했고, 불펜에서 몸을 푸는 내내 극심한 숙취에 시달렸다고 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일어나 5시간도 지나기 전인 오후 1시반에 시작한 경기에서 역사상 14번밖에 없었던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가장 까무라친 사람은 웰스와 술을 대적한 팰런이었다.

 

웰스의 자서전이 공개되고 나서 가장 분노한 사람은 보스였다. 보스는 팀의 간판인 데릭 지터가 파티에서 만난 스타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마침 웰스의 이실직고로 퍼펙트게임의 실체가 알려진 순간은 "지터가 사교 활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느라 경기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보스가 지터를 비난한 직후였다(훗날 둘은 이와 같은 콘셉트로 Visa 카드 광고를 찍었다).

 

분노한 보스는 양키스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1998년의 웰스'에게 10만 달러의 벌금을 매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웰스는 책이 발간된 2003년 당시 샌디에이고 소속이었고, 보스가 웰스에게 벌금을 부과할 권리는 없었다.

 

웰스는 기행과 음주 퍼펙트 외에도 빅게임 피처로 유명했다. 퍼펙트게임을 달성하고, 로저 클레멘스와 페드로 마르티네스에 이어 사이영 3위에 오른 1998년은 최고의 해였다.

 

그 해 웰스는 양키스의 1선발로서 디비전시리즈 1차전(8이닝 9K 무실점), ALCS 1차전(8.1이닝 7K 2실점), 월드시리즈 1차전(7이닝 5실점)에서 모두 선발승을 따냈다. 웰스는 포스트시즌 4경기에서 4승을 따내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하지만, 시즌이 끝나고 토론토로 트레이드됐다. 상대는 로저 클레멘스였다.

 

웰스는 지나친 음주가 경기력에 피해를 주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신 해가 내 최고의 해였다"고 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웰스 같은 괴짜도 다시 나오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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