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와이트 구든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1986년 10월28일.
각양각색의 색종이가 뉴욕 하늘을 뒤덮었다. 메츠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축하하는 퍼레이드가 맨해튼, 브로드웨이, 월스트리트 곳곳에서 열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220만 명의 뉴욕 시민들은 메츠 팬, 양키스 팬 너나할 것 없이 <월드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꺾고 우승한 첫 번째 뉴욕 팀>이 된 메츠를 아낌없이 축하했다.
같은 시간, 메츠의 에이스이자 '닥터 K'로 유명했던 드와이트 구든은 초조한 눈빛으로 한 허름한 아파트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코카인 판매업자의 집이었다.
구든은 월드시리즈가 끝나자마자 참석한 파티에서 코카인을 처음 접했다. 마약의 치명적인 유혹은 다음날에 열린 공식 우승 행사를 불참할 만큼 강력했다.
1987년 스프링캠프. 야구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구든에게 코카인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이었다.
역대 최연소 올스타(19세237일)이자 내셔널리그 최연소 신인왕(1984년). 1985년 만 20세의 나이로 통합 트리플 크라운과 만장일치 사이영상을 따낸 천재 중의 천재(Phenom)는 그렇게 몰락했다. 구든은 개막전 선발로 나서는 대신 약물 재활 센터에 입원했다.
첫 3년 간 신인상, 사이영상,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찬란했던 3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985년에 24승4패를 기록했던 구든은 1992년 10승13패에 그쳤고, SI의 표지에는 '천재에서 유령으로'(From Phenom to Phantom)라는 기가 막힌 타이틀의 기사가 실렸다.
1994년 구든은 3승4패 6.31로 부진하던 중 또 코카인 양성 반응이 나왔고, 60일 출장 정지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정지 기간에 다시 검사에 적발돼, 1995년 시즌 전체에 대한 추가 정지를 받았다. 추가 정지를 받은 날, 구든은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있는 모습을 그의 아내가 발견한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1996년 구든은 양키스에 입단했다. 처음엔 부진했지만 5월14일 양키스타디움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이는 1951년 앨리 레이놀즈 이후 45년 만에 나온 양키스 우완 투수의 노히터였다. 그 해 양키스는 베이브 루스가 온 이래 가장 길었던 17년의 우승 가뭄에서 탈출해, 23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구든은 부상으로 가을 야구에 나설 수 없었다.
1999년 구든은 알코올 중독, 코카인 중독과 싸워온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냈다. 구든은 세상에 내가 중독자임을 알림으로써 거짓된 가면을 벗어던지는 것이 극복의 첫 단계라고 했다.
2000년은 구든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1경기,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에서 8경기 만에 방출된 구든은 양키스로 돌아왔다.
두 번째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치른 첫 경기의 상대는 운명적이게도 메츠였다. 구든이 1994년 두 번째 약물 검사에서 적발되고 메츠를 떠난 후, 상대 팀 선수로 셰이스타디움을 방문한 건 처음이었다. 그 경기에서 구든은 5이닝 2실점 승리를 따냈고, 메츠 팬들도 박수를 보냈다.
더 운명적인 건, 그 해 월드시리즈가 양키스와 메츠가 치른 최초의 서브웨이 시리즈였다는 것이었다. 1980년대 메츠의 슈퍼 에이스에서 양키스의 패전처리 투수로 변해 있었던 구든은 월드시리즈 로스터에 포함됐지만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양키스가 시리즈를 4승1패로 조기에 끝낸 탓이었다.
구든에게는 두 번째 우승이었다. 본인이 에이스로서 메츠의 우승을 이끌었던 1986년 이후 14년 만이었다.
2024년 메츠는 구든의 16번을 영구결번으로 정하는 행사를 가졌다. 마이크를 든 구든이 양키스를 언급하자 관중석에서 야유가 나왔다. 구든은 "저는 항상 메츠 선수입니다. 아무 말 안 해도, 저는 항상 메츠 선수입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양키스도 메츠 못지 않게 소중한 팀이었다.
1995년 시즌 전체를 결장하고 은퇴 위기에 몰린 구든에게 플로리다 말린스의 입단 제안이 왔다. 마침 말린스에는 구든의 조카인 개리 셰필드가 뛰고 있었다.
말린스는 윈터리그 참가를 요구했고, 구든은 부상을 걱정해 거절했다. 하지만 말린스가 윈터리그 참가를 원한다는 건 구든의 복귀를 도왔던 레이 네그론이 만들어낸 거짓말이었다.
구든의 팬이자 양키스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특별 보좌역이었던 네그론은 "닥(Doc)에게 핀스트라이프를 입히면 큰 화제가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보스에게 냈다. 이미 양키스에는 메츠의 상징이었던 또 다른 선수가 뛰고 있었다. 구든 못지 않은 천재였지만 역시 약물 남용으로 몰락한 대럴 스트로베리였다. 한때 메츠의 인기에 휘청이기도 했던 보스는 메츠를 밟아주고 싶었다.
역시 구든의 팬이었던 보스는 네그론에게 "닥(Doc)이 계속 깨끗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다. 네그론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구든은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라고 답했다. 보스는 다시 네그론에게 "그렇다면 당신이 계속 돌보며 책임지라"고 했다.
그렇게 성사된 만남에서 보스는 야구 이야기 대신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설교만 30분을 넘게 했다. 구든은 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보스는 이 말을 끝으로 일장 연설을 끝냈다.
"문제 일으키지 말고, 열심히 던져. 그러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거야."
돌아간 구든에게 양키스의 계약서가 도착했다.
19세 시즌부터 28세 시즌까지 154승과 승리기여도(bWAR) 42.2를 기록한 구든은 두 번째 약물 문제가 발발한 29세 시즌부터 35세 시즌까지 40승과 승리기여도 6.0에 그쳤다. 열아홉 살의 구든이 갑자기 등장해 메이저리그를 폭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194승으로 은퇴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든은 중독과의 싸움에서 결국 승리했고, 또 다른 교훈으로 남았다. 비록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2000년 월드시리즈에서 그가 입었던 양키스 유니폼이 그 증거이자 훈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