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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MLB 첫승 뒷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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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LA 디저스의 스프링 캠프가 끝나던 마지막 날 저는 다저스타디움에 있었습니다. 
마지막 시범 경기가 열리기 전 운동장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다저스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는 복도 끝에서 박찬호가 손짓하며 불렀습니다. 약간 상기된 얼굴의 그를 보는 순간 ‘됐구나!’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박찬호는 흥분된 목소리로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올라가게 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994년 1월 LA 다저스와 전격 계약을 맺었고 마이너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빅리그에 올라가 한국과 미국의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박찬호. 그러나 곧 마이너로 배속돼 2년간 칼을 갈았습니다. 그리고 미국 도전 3년째인 1996년 다시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드디어 빅리그에서 정착할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박찬호는 1994년에는 더블A 샌안토니오에서 20게임에 선발로 나서 5승7패 ERA 3.55에 101.1이닝 동안 100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1995년에는 알바커키의 트리플A 팀에서 22게임에 선발로 나서 6승7패에 4.91, 110이닝 동안 101개의 삼진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1996년 시즌 개막전 진입도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프레드 클레어 단장은 박찬호가 준비가 덜 됐다며 한 시즌 정도는 더 마이너에서 뛰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에이전트이던 스티브 김은 도대체 언제까지 준비를 시킬 것이냐며 강력하게 빅리그 승격을 주장했습니다. 토미 라소다 감독은 박찬호의 편에 섰고, 결국 구단주 피터 오말리가 박찬호의 손을 들어주면서 힘겹게 빅리그에 재진입하게 됐습니다. 박찬호의 스카우트 과정에서 배제됐던 클레어 단장은 늘 박찬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었지만 감독과 구단주는 박찬호를 몹시 아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날이 머지않아 다가옵니다.

 

휴스턴과의 원정 개막 시리즈에 박찬호는 2경기 구원 등판 후 다저스는 시카고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4월 6일(이하 미국시간) 시카고의 리글리필드에서 박찬호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빅리그 승리 투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 시즌 풀타임으로 구원과 선발을 오가며 48경기에 등판해 5승 5패에 3.84의 좋은 성적을 올렸습니다. 108.2이닝 동안 안타는 단 82개만 내줬고 삼진은 119개를 잡았습니다. 볼넷이 71개로 많았지만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의 위력은 빅리그에서 충분히 통함을 입증했습니다. 1996년은 ‘코리언 특급’이 탄생한 뜻깊은 해였습니다.

다시 첫 승 순간으로 가볼까요?!

 

시카고는 겨울이 길고 춥습니다.
드넓은 미시간 호수를 통해 내리꽂는 북풍이 하도 매워서 ‘바람의 도시(Windy City)’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지요.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19세기 후반 신문 기사에서 시카고의 ‘허풍(바람) 심한 정치인들’을 비꼬는 의미로 “Windy City”라고 부른 것이 별명의 기원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두 가지가 혼합된 바람의 도시가 시카고입니다.

 

1996년 4월 6일 그날도 시카고의 리글리필드는 몹시 추웠습니다.
당시는 금연 전이었는데, 낡은 리글리필드 기자실의 문을 열고 나가면 외야로 통했고, 거기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담배를 피고 들어가면 찬바람에 손이 곱아서 곧바로 노트북 자판을 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날 다저스 선발은 에이스 라몬 마르티네스였습니다.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친형입니다.
1회가 0-0으로 지나고 2회초 다저스 공격에서 9번 타자 투수 마르티네스의 타순이 돌아왔습니다. 땅볼을 친 라몬은 1루로 달리다가 허벅지를 잡고 쓰러졌습니다. 라소다 감독은 길길이 뛰면서 화를 냈습니다. ‘이런 날씨에 야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미 라몬은 햄스트링 부상이 심하게 왔습니다.

 

리글리필드는 당시 불펜이 외야 파울라인 안쪽에 있었습니다. 관중석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몇 차례 팬과 충돌 사고 후 2017년 리노베이션 때 외야 뒤쪽으로 옮겼습니다.)
노련한 라소다 감독은 그 와중에도 박찬호에게 재빨리 몸을 풀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심에게 말을 하고는 계속 불펜에서 몸을 풀게 했습니다. 물론, 투수가 부상이면 다음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 원하는 만큼 워밍업을 할 수 있지만, 라소다 감독은 마운드에 오르기 전에 불펜에서 충분히 몸을 풀라고 했습니다.

 

©️루키시절 다저스 매가진에 실린 사진

그리고 롤러코스터 같은 그날의 등판이 시작됩니다.

2회말 박찬호의 첫 상대는 4번 타자 홈런왕 새미 소사! 초구 헛스윙- 2구 볼- 3구 헛스윙 그리고 4구째 강속구로 소사를 서서 삼진으로 잡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타자 5번 루이스 곤살레스는 볼넷, 그런데 곤잘레스가 2루를 훔치다 잡힙니다. 마이크 피아자 포수가 웬일로 정확한 송구력을 과시.
그리고 7번 스캇 서비스를 다시 볼넷을 내보냈지만 8번 호세 에르난데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으면서 첫 이닝을 무실점으로 마쳤습니다.

 

첫 볼넷 후 피아자의 도루 저지도 그렇지만, 그날 경기는 박찬호의 위력적인 구위와 불안한 제구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운도 따르는 경기였습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야구는 특히 운이 많이 작용하지요.

 

다저스는 3회초 선두 타자 1번 드쉴즈가 컵스 선발 나바로에게 볼넷으로 나간 후 2루 도루 그리고 2번 버틀러의 3루 땅볼 때 송구 실책이 나오며 선취점을 뽑았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3회말 큰 위기가 왔습니다.
8번 산체스를 좌익수 뜬공으로 잡은 박찬호는 투수 나바로에게 좌전 안타를 맞습니다. 커리어 동안 투수를 만나서 흔들리는 모습이 가끔 있던 박찬호를 기억하실텐데요, 이때가 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번 맥크레이에게 볼넷을 주고 후에 명예의 전당 맴버가 된 2번 라인 샌버그에게 내야안타를 맞으며 1사 만루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커리어 내내 박찬호를 꽤나 괴롭혔던 정교한 좌타자 3번 마크 그레이스를 만납니다. 그레이스는 볼카운트 3-1 기회에서 우중간 깊숙한 플라이를 때렸습니다. 싹쓸이 2루타성 타구 내지는 담장을 넘어갈 듯한 기세의 타구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낮 경기였음에도 기온은 섭씨 3도에 불과했고, 외야에서 홈플레이트 쪽으로 시속 16km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리글리필드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야구장입니다. 수십번 취재를 갔지만 그때 마다 바람의 방향도, 강도도 늘 차이가 심했습니다. 외야로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면 ‘공만 띄우면 넘어간다’며 투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 바람이 안으로 불면 비거리가 8~12m 정도 짧아질 수 있는 꽤 강한 바람입니다. 거기다가 이렇게 저온이면 공기 밀도가 높아져서 저항이 강해져 비거리가 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조건들을 모두 감안했을 때 그레이스의 타구는 운좋게 야구장에 머물렀고, 거기다가 우익수 라울 몬데시가 그림 같은 수비로 이 공을 낚아채기까지 했습니다.
3루에 있던 투수 나바로는 공이 빠지는 줄 판단했다가 몬데시가 이 타구를 잡자 우왕좌왕 태그업도 제때 못했습니다. 조깅해서 홈으로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깊은 타구였습니다.
이어진 2사 만루 위기에서 박찬호는 다시 소사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으며 큰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겼습니다. 당대 최고 거포 중 하나였던 소사는 후에도 박찬호를 만나면 고전하는 징크스가 생겼습니다. 통산 42번이나 박찬호와 대결했는데, 타율이 .194에 그쳤고 삼진 13번을 당했습니다. 물론 3홈런에 5볼넷도 있었지만 박찬호를 만나면 꽤나 힘들어했습니다.

 

야구의 신이 박찬호에게 미소를 던진 경기였음은 분명합니다.

 

박찬호는 4회말에도 볼넷과 안타를 내주기는 했지만 서비스, 산체스, 나바로를 모두 삼진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5회말에는 1-2-3번을 가볍게 삼자범퇴로 처리하고 이날 등판을 마쳤습니다.
4이닝 무실점, 3안타와 4볼넷이 있었지만 삼진을 7개나 잡으며 고비고비 넘어가는, 어찌 보면 ‘전형적인 박찬호표 피칭’으로 한국 선수 최초의 MLB 승리 투수가 된 기념비적인 경기였습니다. 다저스는 이날 3-1로 승리했습니다.

 

간혹 흔들리는 제구로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158km를 넘나드는 불같은 강속구로 연신 삼진을 잡는 그의 폭발적인 피칭에 한국의 야구팬과 현지 교민들 그리고 많은 다저스 팬들이 열광하게 됩니다.
요즘이야 강속구가 160km를 넘기는 투수들도 꽤 있지만 당시 박찬호의 160km 육박하는 구속은 압도적이었습니다. 덴버의 쿠어스필드에서는 160km를 실제로 찍은 적도 있었습니다.
 


경기 후 그 비좁은 리글리필드 클럽하우스는 들썩였습니다.
젊은 유망주 투수의 첫 승리에 특히 그를 아끼던 라소다 감독은 그날의 라인업 카드를 박찬호에게 넘겨주며 포옹하고 이마에 키스해주기도 했습니다. (라인업 카드를 주는 건 훈장 같은 의미입니다.)

한국 날짜로는 4월 7일이던 그날 경기 후 박찬호를 만났을 때의 그 상기된 표정이 떠오릅니다.

박찬호는 인터뷰에서 “갑자기 등판한다는 말을 듣고 불펜으로 달려가는데 숨이 가빴다. 라소다 감독이 와서 충분히 몸을 풀 시간을 주겠다고 해서 안심이 됐다. 마운드에 올라가니 더 추웠다. 손등이 얼어 체인지업이나 낙차 큰 커브를 제대로 던질 수가 없었다. 주로 직구와 빠른 커브로 상대했는데 컨트롤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2,3회를 힘들게 막고 나니 이것이 다른 투수들이 이야기하던 승리의 기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타자에게만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라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한국 날짜로는 제 생일이 그날이라는 말을 듣고 축하를 주고받기도 한 기억도 납니다. ^^ 

 

그리고 경기 후 또 한 번의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경기는 마무리 토드 워렐이 세이브를 하면서 끝났는데, 경기 마지막을 끝낸 공이 박찬호 승리 경기의 공인구가 되는 상황.
그런데 워렐은 박찬호가 이미 몇 승은 거둔 투수라고 생각해 그 공을 관중석의 꼬마에게 던져준 것이었습니다. 급히 클럽하우스 직원이 관중석으로 뛰어가서 그 공을 다시 찾느라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되찾은 공은 박찬호가 아버지 박정근씨에게 선사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MLB 도전은 숱한 어려움과 부상을 겪으면서도 도전이 시작된 지 17년 후인 2010년 124승 후에 끝났습니다.
여전히 동양계 투수 최다승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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