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빌리 펜의 저주와 2009년 월드시리즈

조회 139

윌리엄 펜은 펜실베니아 식민지를 건설한 인물이다. 펜실베니아의 최대 도시인 필라델피아에는 특이한 신사 협정이 있었다.

 

1894년 필라델피아시는 시청사 꼭대기에 무게가 24톤에 달하는 윌리엄 펜의 동상을 세웠다.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펜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했기 때문에 그보다 높은 건물은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이 불문율은 10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런데 1987년 '원 리버티 플레이스'라는 초고층 건물이 펜의 동상 높이보다 높게 건설됐다. 61층짜리 건물의 높이는 288미터였는데, 윌리엄 펜의 동상 높이인 167미터를 훌쩍 넘어섰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건물이 만들어지고 20년 동안 필라델피아의 스포츠 팀들인 필리스(MLB) 이글스(NFL) 세븐티식서스(NBA) 플라이어스(NHL)가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밤비노의 저주'에 빗대 '빌리 펜의 저주'(Curse of Billy Penn)라 불렀다.

 

2008년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면서 저주는 깨지게 된다. 그리고 이는 2007년에 일어난 일 덕분(?)이었다. 

 

2007년 필라델피아에는 '컴캐스트 센터'라는 새로운 초고층 건물이 완성됐다. 58층짜리 건물이었지만 높이는 297미터로, 61층 288미터인 '원 리버티 플레이스'보다 더 높은 건물이었다. 

 

이때 건축가는 재밌는 아이디어를 낸다. 건물 꼭대기에 윌리엄 펜의 작은 동상을 만들어 올린 것이다. 이로써 윌리엄 펜은 다시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게 됐고, 신기하게도 이듬해인 2008년, 필리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필리스는 다시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필라델피아가 1975-1976년 신시내티 레즈 이후 내셔널리그의 첫 백투백 우승을 기대했던 건 클리프 리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 해 7월29일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데려온 리는 전년도(2008) 아메리칸리그 사이영 수상자였다. 첫 가을 야구였던 리는 무시무시한 피칭을 했다.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9이닝 1실점 완투승, 4차전에서 7.1이닝 1자책, NLCS 3차전에서는 8이닝 10K 무실점 승리를 따냈다(리의 가을 대활약은 2010년 월드시리즈가 시작되기 전까지 8경기에서 7승 1.26을 기록하는 폭주로 이어졌다).

 

필리스에 맞서는 양키스의 에이스는 운명적이게도 CC 사바시아였다. 둘은 클리블랜드에서 같이 뛰었고, 사바시아가 2007년, 리가 2008년에 사이영을 따냈다. 사바시아는 2008년 마감시한 때 클리블랜드를 떠났고, 리는 정확히 1년 후 클리블랜드를 떠났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 동안 네 번을 우승했지만, 2001년과 2003년 월드시리즈에서 패한 양키스는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컸다. 그 해 양키스는 새 양키스타디움을 건설했는데, 보스턴 팬인 한 건설 인부가 땅에 데이빗 오티스의 유니폼을 몰래 묻은 걸 찾아내기도 했다. 시즌을 시작하기에 앞서 양키스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돈인 4억 달러를 들여, 마크 테세이라, CC 사바시아, A J 버넷과 계약했다.

 

에이스인 사바시아는 월드시리즈에 올라오기 전 세 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특히 ALCS 4차전은 3일을 쉬고 나서 8이닝 1실점 승리를 따냈다. 양키스는 3인 로테이션의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필라델피아의 우위를 점쳤다. 

 

드디어 시작된 1차전. 클리프 리가 9이닝 10K 1실점 무자책으로 완투승을 따낸 반면, 사바시아는 7이닝 2실점 패전을 안았다. 하지만 2차전에서 양키스 선발 버넷은 페드로 마르티네스와의 대결을 승리했고, 3차전도 콜 해멀스가 무너지면서 양키스가 승리했다. 해멀스는 필리스의 전년도(2008) 월드시리즈 MVP였다. 

 

사바시아는 다시 3일을 쉬고 4차전에 나섰고, 사바시아가 버티는 동안 타선이 터진 양키스가 또 승리했다. 시리즈 전적은 3승1패. 필리스는 벼랑 끝에 몰렸다. 5차전에서 리는 5실점을 했지만 7이닝을 소화했고, 필리스가 승리했다. 그리고 운명의 6차전이 시작됐다.

 

필리스 선발은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했던 투수 중 한 명이자 밤비노의 저주가 깨지는 현장(2004)에 있었던 페드로 마르티네스였다. 양키스 선발은 우승 반지가 네 개인 앤디 페티트였다. 하지만 경기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마츠히 히데키였다.

 

마츠이에게 2회 투런 홈런, 3회 2타점 적시타를 맞은 마르티네스는 4이닝 4실점으로 교체됐다. 마르티네스의 마지막 등판이었다. 마츠이는 5회 다시 7-1을 만드는 2타점 2루타를 때려냈고, 6타점을 올린 마츠이는 일본 선수 최초로 월드시리즈 MVP가 됐다.

 

필리스는 2년 연속 우승에 실패했지만, 필라델피아 이글스는 2018년과 2025년 슈퍼볼 우승을 차지했다. 필라델피아에는 '컴캐스트 테크놀로지 센터(342미터)라는 새로운 최고층 건물이 2018년에 완공됐는데, 이글스는 윌리 펜의 작은 동상 없이도 건물이 완공된 해에 우승할 수 있었다(다만 플라이어스는 1975년, 세븐티식서스는 1983년 이후 여전히 우승이 없는 상태다).

 

2025년 양키스는 와일드카드 3차전에서 캠 슈리틀러라는 슈퍼 신인이 나타나 포스트시즌 역사상 최초로 8이닝 이상, 12K 이상, 무볼넷 무실점 피칭을 하고 팀을 탈락 위기에서 구했다. 다시 탈락 위기에 몰린 디비전시리즈 4차전. 양키스는 마츠이에게 시구를 맡기고 슈리틀러가 호투했지만, 토론토에게 패해 탈락했다. 이로써 양키스는 베이브 루스가 팀에 온 1920년 이후 두 번째로 긴 16년 연속 우승 실패가 이어졌고, 지난 25년 동안 딱 한 번, 2009년 우승이 전부인 암흑기가 이어졌다. 

 

1883년에 창단했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이 1980년과 2008년 두 번뿐인 필리스는, 2022년 월드시리즈에서 준우승에 그쳤고 3년 연속으로 월드시리즈 진출이 무산됐다. 특히 올해는 카일 슈와버와 J T 리얼뮤토가 팀을 떠나기 때문에 라스트 댄스에 해당되는 시즌이었다. 

 

컴캐스트 테크놀로지 센터의 꼭대기에도 윌리엄 펜의 작은 동상이 필요한 것일까. 

 

이 게시판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