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브래트 대폭발 사건(Pine Tar Incident)
미국 미주리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캔자스시티(KC)입니다.
그런데 시의 인구는 50만 명이 약간 넘어 미 전역 도시 중에서는 38번째에 불과합니다.
물론 도시권 인근 지역의 인구를 다 합치면 225만 명으로 불어나지만, 이 역시 미국 대도시권 인구로는 31번째에 불과합니다.
커다란 미국 땅 딱 가운데서 약간 동쪽에 위치만 미주리주의 이 도시에 가면 일면 썰렁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다운타운을 제외하면 높은 빌딩도 찾기 힘들고, '참 넓게도 퍼져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렇지만 외부인이 보면 조금 황량해 보일 수 있는 KC이기도 하지만, 이곳의 야구와 풋볼 등의 열기는 미국 어느 지역 못지않게 뜨겁습니다.
프로야구팀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시장 규모 등으로는 변방의 팀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실제로 커프만 스타디움에 가보면 그 열기는 정말 엄청납니다,
52년이나 된 낡은 야구장이지만 계속 개보수를 하면서 잘 관리돼 있고, 특히 우측 외야의 폭포수는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저도 몇 차례 취재를 갔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텍사스 레인저스 박찬호 등판 취재를 갔을 때 폭우가 쏟아지면서, 끝없이 밤하늘을 때리던 미국 중부 평야 지역의 천둥 번개가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넋을 잃고 바라다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캔자스시티는 또한 '니그로리그 박물관'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설명이 장황해졌는데, 1969년 뒤늦게 아메리칸리그(AL)에 뛰어든 이 팀은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도 월드시리즈 우승 2번과 AL 우승 4차례를 차지한 무시할 수 없는 명문팀입니다.
그리고 56년 역사상 4명의 은퇴번호 선수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재키 로빈슨의 전구단 은퇴번호인 42번이고, 선수와 코치, 감독까지 지낸 리차드 하우저의 10번, 전 로열스 선수 프랭크 화이트 주니어의 20번 그리고 오늘 소개하려는 주인공인 5번을 달고 21년간 로열스에서 뛴 조지 브레트입니다.
역사상 첫손에 꼽는 3루수였던 브레트는 선수 생애 후반기에는 1루수와 지명 타자로도 뛰었는데, 발군의 타격 능력으로도 로열스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당대 KC 최고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MLB 역사상 정말 보기 드문 홈런 취소 해프닝과 폭발한 항의 사태로 지금도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 사건 먼저 살펴볼께요.
KC 로열스의 간판타자 브레트와 양키즈 빌리 마틴 감독이 얽힌 '송진가루 사건(Pine-Tar Incident)'은 요즘도 MLB 하이라이트를 종종 장식하는, 치열하면서도 낭만적인 해프닝이었습니다.
1983년 7월 24일 양키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로열스와 양키즈 경기 9회초.
3-4로 로열스가 뒤진 가운데 2아웃 주자 1루에서 브레트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양키즈의 철벽 마무리 구스 고시지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 투런포를 터뜨렸습니다.
그런데 브레트가 여유롭게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던 순간 양키스 더그아웃에서 마틴 감독이 구심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갑니다. 그리고는 홈플레이트 근처에 떨어져 있는 브레트의 방망이를 들더니 구심 팀 맥클랜드에게 뭔가 항의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틴 감독의 주장은 브레트가 방망이에 송진가루를 너무 많이 발라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규정 중에 '타자는 배트 손잡이 부분에서 18인치까지만 송진을 바를 수 있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양키스 스카우트는 1983년 시즌 초반에 브레트가 송진 가루를 지나치게 많이 바르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코칭스태프에게 그 사실을 귀띔했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했던 마틴 감독이 결정적인 순간에 브레트가 규정 위반을 했다며 항의를 한 것이었습니다. 구심이 측정한 결과 브레트의 배트에는 24인치 부분까지 송진 가루가 묻어 있었고, 심판들은 상의 결과 홈런은 무효이고 브레트를 아웃으로 선언이 됐다.
승부욕이 강했지만 평소애는 유쾌하고 코믹한 브레트였지만 느닷없이 아웃 선언이 되자 대폭발했습니다. 마치 투우사를 향해 달려드는 황소처럼 더그아웃에서 질풍처럼 홈플레이트 쪽으로 질주했습니다. 심판, 선수들이 모두 모여 말리고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브레트는 퇴장당했습니다.
일단 경기는 그렇게 브레트의 홈런 대신 마지막 아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로열스는 곧바로 리그사무국에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리 맥파일 AL 회장(양키스 부회장 출신)은 '규정 위반은 맞지만 송진 가루가 공의 비거리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며 홈런 무효는 인정할 수 없으므로 경기를 속개하라고 판단했습니다.
8월 18일에 9회초 투아웃부터 경기가 속개됐고, 양키스는 9회말 득점하지 못해 로열스의 5-4 승리로 결판이 났습니다.
그런데 알려지지 않은 해프닝이 또 있었습니다.
8월 18일에 경기가 속개되자 마틴 감독은 곧바로 구심에게 다가갔습니다.
홈런으로 다시 인정된 마당에 이번에는 브레트와 다른 주자가 모든 베이스를 밟았는지 심판들이 어떻게 증명을 할 수 있느냐며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구심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리 서명한 진술서를 내밀어 마틴 감독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엉뚱하기로 유명한 마틴 감독의 술책을 MLB 사무국이 예상한 것입니다. MLB 사무국은 경기 속개 전날, 브레트와 윌리 윌슨 등이 모든 베이스를 제대로 밟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서명한 서류를 만들어 미리 심판들에게 전달해 대비하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 일이 야구장에서 실제로 발생했다니 어찌 보면 참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
타자 브레트와 투수 고시지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고 빌리 마틴 감독은 이제 고인이 됐습니다.
그래서 '송진 가루 사건'이 벌어졌고 클럽하우스 직원이 들고 튀었던 배트는 양키스타디움 보안 직원에게 결국 압수돼 AL 사무국으로 보내졌다가 현재는 명예의 전당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 경기가 속개됐을 때 마틴 감독은 경기 속개는 웃기지도 않는 일이라며 론 기드리 투수를 중견수에, 왼손잡이 1루수 단 매팅리를 2루수에 기용하기도 했습니다.
재개된 경기는 로열스 타자 한명과 양키스 타자 세명이 차례로 아웃되면서 약 4분만에 끝났습니다.
원래 경기에서 퇴장당했던 브레트는 아예 그 경기에 오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그 배트가 명예의 전당으로 간 여정도 만만치 않았더군요.
AL 사무국에서 검사를 하고 약 2주 후쯤에 브레트는 그 배트를 다시 받았습니다.
그는 정확히 18인치 되는 지점에 빨간 줄을 그어놓았답니다, 다시는 반칙을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두 경기 정도 그 배트를 사용했는데 동료 게이로드 페리가 '그 역사적인 배트를 왜 사용하냐면서, 만약 부러지기라도 하면 가치가 전혀 없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브레트는 그 배트를 사용하지 않고 가방에 넣어 두었다가 야구 기념품 수집가인 배리 할퍼가 팔라고 해서 2만5000달러를 받고 팔았습니다.
그러나 몇 주 후에 아무래도 팔아버릴 방망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브레트는 2만5000달러를 돌려주고, 덤으로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양키스의 캣피시 헌터에게 홈런 3개를 때린 배트까지 주고서야 그 방망이를 돌려받았습니다.
결국 그 방망이는 명예의 전당으로 갔습니다.

고시지는 "당시는 정말 황당했지만 이젠 즐거운 추억이다. 수많은 홈런을 맞았지만 그 홈런만큼 기억이 생생한 것은 없다."며 웃었습니다. (통산 310피홈런 중 하나)
'Pine Tar Guy'로 기억되는 브레트 역시 "20년 넘게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그 사건이다. 뉴욕(마틴 감독)이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었던 그런 일이었다."며 너털웃음을 웃었습니다.
이렇게 낭만의 시대를 풍미한 조지 브레트는 로열스의 간판 타자로서 세운 위업도 대단했습니다.
그의 로열스 시절과 생애를 간략히 정리하며 마치겠습니다.
- 1953년 5월 15일생인 브레트는 MLB 역사상 가장 뛰어난 3루수 중의 한명으로 존경 받아
- 4형제 야구 선수의 막내로 큰형 켄 브레트는 19세의 나이에 1967년 월드시리즈에 등판하기도 한 빅리그 투수, 다른 두 형은 마이너리그에서 야구 생애 마쳐
- 1971년 드래프트에서 브레트는 29번째로 로열스에 뽑혀.
흥미로운 것은 브레트와 사상 최고의 3루수 자리를 다투는 마이크 슈미트가 같은 해 브레트 바로 다음인 30번째에 필리스에 뽑혀
- 1974년부터 로열스의 주전 3루수로 뛴 브레트는 2년째에 3할8리를 치더니 3년째인 1976년에는 3할3푼3리로 타격왕 (6경기 연속 3안타 기록도 세워, 1923년 지미 존스턴과 동률 1위 기록)
- 1978년 ALCS에서는 양키스의 캣피시 헌터를 상대로 한 경기 홈런 3개
- 1979년 빅리그 사상 6명밖에 없는 20-20-20 클럽 멤버, 브레트는 2루타 42개 3루타 20개 그리고 홈런 23개를 쳐
- 1980년 4할 도전 아쉽게 무산, 브레트는 9월19일까지도 4할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결국은 현대 야구 3루수 최고 기록인 3할9푼으로 시즌 마쳐. 리그 MVP
- 1985년 치질 수술 등 부상에서 돌아온 브레트는 10개 주요 공격 부문에서 모두 리그 10위권에 오르는 활약으로 로열스를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어
특히 시즌 마지막 주 6게임에서 4할5푼, 5홈런, 9타점, 7득점 활약으로 5승1패 성적을 끌어내며 로열스가 AL 서부조에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1게임차로 제치고 역전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활약
ALCS에서 토론토를 제치는 최고 수훈으로 MVP 수상 후 WS에서도 3할7푼을 기록하며 1승3패를 뒤집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격파하는 선봉장
로열스 사상 최초의 WS 트로피
- 1992년 시즌 3000안타 돌파
- 1993년 마지막 시즌 마지막 타석에서 레인저스 마무리 톰 행키를 상대로 안타 치며 화려한 야구 생애 마무리
- 3154안타는 3루수 사상 최다였고, 1999년 98.2%의 득표로 명예의 전당 (아드리안 벨트레가 3166안타로 3루수 최다 안타 기록 넘어서)
- 브레트는 행크 애런, 스탠 뮤지얼, 윌리 메이스 등과 함께 MLB 역사상 3000안타- 300홈런- 3할 타율 이상을 기록한 4명 중에 한명
- 전설적인 감독 화이티 허조그는 '1월1일 아침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곧바로 타석에 나서 안타를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타자'라고 브레트를 표현
MLB.com의 파인타르 사건 영상 주소 첨부합니다 ^^
https://www.mlb.com/video/7-24-83-the-pine-tar-incident-c3180386














